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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는 거의 20년간 중앙아시아의 산, 스텝, 사막을 조사했다. 중앙아시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으로 프르제발스키 이전까지는 유럽인들 중 그 누구도 방문한 적이 없는 곳이다. (역자주: 사실 스웨덴 사람인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가 1700년대 초반에 이미 준가르에 볼모로 잡혀서 로프 노르 인근에 간 적이 있다. 태그 누르면 이전글 확인 가능.) 네 번의 탐험 동안 프르제발스키는 말 위에서, 그리고 도보로 3만km 이상을 소화해 냈다. 세묘노프의 추천 프르제발스키는 군인이었다. 어렸을 때는 보병 연대에 복무했지만 탐험을 꿈꿨다. 1861년에 합동군사참모대학에 입학하여 첫 번째 지리학 저작인 《아무르 지방의 군사통계학적 개설》을 썼다. 이 저술 작업을 하면서 프르제발스키는 도서관에서 찾을 수..
지질학자 이반 무쉬케토프(Иван Васильевич Мушкетов) 또한 중앙아시아 연구자 중 하나였다. 그의 탐험은 지질학적 발견뿐 아니라 여러 흥미롭고 중요한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이반 무쉬케토프 은메달페테르부르크에서 산림 학원을 막 끝낸 22세의 무쉬케토프는 1872년에 첫 번째 탐험을 떠났다. 그는 우랄 지방에서 기존에 러시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광물 세 가지를 발견했다. 그는 곧 투르키스탄으로 떠났는데, 투르키스탄은 당시 중앙아시아 전체를 일컬었다. 무쉬케토프는 1875년에 서부 및 중부 톈산을 넘었으며, 이식 쿨 호수에 들렀고, 고산 지대에 위치한 송쿨 호수에 도달한 다음 산골짜기를 따라 내려왔다. 그는 고대 후잔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유연탄 산지를 조사하여 산업용으로 적합하다..
표트르 세묘노프-톈산스키에 의해 시작된 중앙아시아 연구는 다른 탐험가들이 계속해 나갔다. 니콜라이 세베르초프(Никола́й Алексе́евич Се́верцов)와 알렉세이 페드첸코(Алексе́й Па́влович Фе́дченко)는 1870년대에 많은 업적을 세웠다. 목숨을 걸고니콜라이 세베르초프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학에 가장 관심을 가졌다. 모스크바 대학의 자연과학부에서 수학하던 당시, 논문 주제도 고향인 보로네쉬 지역의 동물군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젊은 학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앙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57년에 톈산을 따라 여행하던 당시, 세베르초프는 아랄 해와 시르다리아 강 하류 지역을 연구하는 탐험대를 이끌었다. 이 지역은 코칸드 칸국에 속했다. 코칸드 칸국은 ..
8월 마지막주였던 이번 여름 휴가에 나는 아무 여행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러시아어 학원을 빠지지 않고 다녔는데, 대신 나름대로 휴가를 기념한다고 읽고 싶은 텍스트를 직접 가져가서 선생님이랑 같이 읽었다. 지금 학생이 나밖에 없고 선생님이랑 친해서 가능했다.201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돔 크니기에서 초등학생용 얇은 백과사전 시리즈인 《마하온(МАХАОН)》 몇 권을 사왔었다. 그 중 러시아 여행가들(Русские Путешественники)에서 중앙아시아 탐험 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다. 혼자는 영 안 읽혀서 3년째 방구석에 박혀 있다가 선생님이랑 같이 읽으니 금방이었음. 단어가 지형에 대한 게 많아서 좀 어렵긴 했다. 책 전체는 정말 알차고 특별한 것이 시베리아, 북극, 알래스카, 캄차트카 반도, 중앙아..
티베트 통사에는 여인국 이야기가 두 번쯤 등장한다. 이런 희귀하고 신비한 것에는 혹할 수밖에 없다. 서구 오리엔탈리스트와 별다를 것 없는 시각이지만 나는 이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테마에 별수없이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티베트 여인국 첫 번째는 좀 앞부분에 일찍 나오는 숨파(수피), 두 번째는 동녀국이다. 숨파는 티베트 극서부 아리 지역, 그러니까 무려 신장 호탄 근처에 있었다. 송첸감포 시기쯤을 읽다 보면 나오는데 아마 송첸감포 아버지 때쯤 토번에 흡수가 됐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현재의 강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숨파는 옛 중국 역사서에는 등장하는데 아마 고고 발굴이 안 된 걸로 기억한다. 창탕고원이 바로 여긴데 엄청난 고지대에 거친 황야인데다 토번에 일찌감치 동화가 돼놓으니.. 글에서 다룰 동녀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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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 때 동중서의 활약으로 유교가 관학으로 확립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유가사상은 군주제도를 정당화하면서도 진나라 때의 가차없는 법가사상보다는 말랑말랑해 보인다. 한 마디로 착한 척 하면서 점수 따기에 딱 좋다. 유비생각나넼ㅋㅋ 이렇게 겉으로는 유교를 내세우면서 야금야금 법가적인 통치를 실시하는 간특한 꼼수를 외유내법이라고 부른다. 한무제 신하 중 급암이라는 자가 그 꼼수를 꿰뚫는 사이다 발언을 했다. "속마음에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는 인의를 행하는 척 하십니다 그려." 놀라운 것은 무제가 이런 급암을 두고 사직을 지탱하는 신하라며 중용했다는 것이다. 둘다 기개가 있다. 난 중국사를 좋아하지만 전형적인 한족 왕조들은 따분해 하는데, 아직 푸릇푸릇한 신생 제국이었던 한나라의 이런 간특하다거나 유연하..
《만주족의 청제국》은 신청사(New Qing History) 분야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청조사 딱 펴면 제일 처음 나오는 개념이 팔기제라 수업 들으면 시험에도 지겹게 나왔지만 팔기 기인들 생활이 실제 어땠는지, 만주족 정체성이랑 왜 그렇게 밀접하다고 하는지는 몰라서 한번 읽어봤다. 저자 마크 엘리엇은 청조의 근간이었던 팔기제도(八旗制度)를 분석하여 만주족이 한족에 동화되었다는 한화이론에 도전한다. 또한 대청제국의 중국 지배에 있어 팔기제를 바탕으로 한 만주족 정체성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강조한다. 신청사 연구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1. 청조 내내 한인과 만주족 간에는 차별성이 유지됐다. 후기로 갈수록 만주족은 문화 변용을 겪기는 했으나 중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다. 2. 민족성에 대한 ..
홍타이지의 부인이자 순치제의 어머니, 강희제의 할머니인 효장태후(孝庄太后)는 중국사상 대표적인 여성 정치가이다. 지혜와 강단을 겸비한 여걸로, 자신이 직접 권력을 휘두르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황제 셋을 성실히 보필하여 신생 청조의 기틀을 다졌다. 본명은 보얼지지터 부무부타이(博尔济吉特·布木布泰)로 호르친 몽골 부족(科尔沁部) 태생이다. 호르친 부는 청조 초기부터 결혼 동맹을 통해 아이신 기오로 가문에 적극 협력했으며 북방 수비 역할을 담당했다. 효장태후(孝庄太后) 내몽골 자치구 초원 분포 - 호르친 초원의 위치 17세기 초 명말 시기의 후금과 호르친 부 위치. 오른쪽 아래 지도는 명 초기의 여진족 각부 분포. 헤이룽장강 근처 가장 추운 지역이 야인여진, 그 아래가 해서여진, 그 아래가 건주여진으로, 청조..
2014년 겨울에 모스크바 갔을 때 칼미키아 사람들을 몇 알게 되었다. 어떤 바에 1주일 간격으로 두 번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마주쳤던 한 그룹의 친구들이었다. 생긴 게 내 친구랑 너무 닮아서 고려인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칼미크족이란다. 와, 오이라트 후손 아니냐고, 너무 반갑다고 반색을 했더니 그 쪽에서 더 놀라고 반가워 했다.이 사람들은 한 무리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대여섯 명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덕분에 2015년에 다시 한번 모스크바를 갔을 때 또 만날 수 있었다. 이 중에 한 분이 몇 개월 전 내가 마침 핀란드 여행을 준비중일 때 만네르하임 사진을 올렸다. 중앙아시아 탐험 중에 찍은 오이라트인 사진들! 이 사진들을 다시 웹검색해서 러시아 블로그들을 찾아냈다. 원글 캡션에는 전부 칼미크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