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복스 2024... 레전드
https://youtu.be/m762kNsaMYI?si=umvPjKE_ugA6klbU
레전드...
진짜 대단한 무대이고 감격스럽네. 현재 목소리로 재녹음했는데 가창력은 여전하고 목소리는 옛날보다 더 매력적이다. 노래는 애초에 좋았고 제대로 리마스터링된 느낌.
SES 데뷔 20주년 콘서트 가서 첫곡 Dreams Come True 시작할 때 눈물 떨어지던 거랑 비슷한 심정.
1999년에서 2000년이 되던 겨울에 처음으로 서울을 와봤다. 무궁화 기차 타고 오면서 63빌딩을 보며 서울인 걸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은평 큰이모 댁에 지냈는데 서초 이모할머니 댁에 다니느라 엄마랑 동생이랑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오갔다. 당시 옥수역인가의 내부에 있었던 레코드점에서 베이비복스 팬 싸인회가 있단 현수막을 보고 엄마 졸라서 시간 맞춰 기어이 갔음.
옥수역쯤이었던 걸 기억하는 이유는 지상역을 처음 본 경험이어서다. 당시 대구엔 지하철 자체도 신문물이었는데 서울엔 지하철이 심지어 지상으로, 강 위로 다닌다는 게 개념적으로 충격이었다. 이런 것도 지하(?)철?
이때 싸인을 다섯 명 전부한테 받을 순 없었고 멤버 한두 명 골라서 줄을 서야 했었다. 보디가드 아저씨들이 무서웠지만 팬 중에 제일 어리고 작아서 언니팬들 뒤에 너끈히 숨을 수 있었던 난 근성있게 모두에게 한 번씩 줄을 서서 전원의 싸인을 받아냈다. 심은진 언니한테는 우리 공통점이 좀 있다고 어필도 함.
그때 베이비복스는 겟업, 킬러, 미싱유 등으로 활약했던 3집 활동 중이거나 직후였었고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대구로 돌아왔을 때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기억이 역력하다. 이 겨울이 나는 잘 잊히지 않는 게 이땐가 그 전해인가 아마 우리집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PC가 생기고 인터넷이 깔리고 겨울방학 때 방과후 수업으로 컴퓨터를 배웠던 시절이다. 그 시절 브금 그 자체인 SES 3집 나오고... 오늘도 들은 러브, 트와일라잇존...... 다음 카페도 가입하고 이메일도 쓰고 세이클럽도 하고 인터넷에서 십자수 도안 받아서 십자수도 열심히 했다 ㅋㅋㅋㅋ 98-99년도 이 무렵 포토 스티커 찍는 것도 좋아했는데 키가 작아서 발돋움을 해도 힘들었다. 이모가 콧구멍 찍으러 가는 거냐고 놀렸던 기억이...
당시에 베이비복스 모두를 좋아했지만 아마 간미연을 제일 좋아했던 거 같다. 예쁘고 노래도 잘하는 확신의 센터 ㅋㅋ 그리고 마찬가지로 노래 진짜 잘 부르는 이희진도! 근데 당시에 이희진이나 김이지 언니는 초딩 눈엔 약간 생소한 좀 센 언니 느낌이었다. 지금은 김이지 언니한테 제일 눈이 간다. 중학생 어머님 진짜... 진짜 늘씬하고 고우시다 ㄷㄷ
우연 이 노래는 진짜 2002년 월드컵 전국민 대축제 당시를 떠오르게 한다. 그때가 진짜 너무 그립다. 난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그때 그 시절이 항상 너무나도 그립다. 그때 살았던 고향 동네가 우선 너무 그립고 길거리에 들려왔던 유행가, 봤던 TV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프로 같은 것도 너무 아련하다. 그땐 그렇게 가져보고 싶었던 핸드폰이 없었다는 것도. (첫 핸드폰이 수능 끝나고 받은 슬라이드폰이다.) 난 이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2004년에 서울로 온 가족이 이사를 왔고 그 무렵부터 TV가 고장나서 이후로는 연예인이나 유행가를 모른다. 대중예술을 매개로 한 한국인 집단기억이 내 뇌에는 딱 그 이전인 2000년대 극초반까지만 탑재돼 있다. 어느 정도냐면 난 무한도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간첩이 아닌지 의심해보는 게 합리적일 정도이다. 그 와중에 베이비복스 3집은 내가 테이프도 사서 앨범커버 고이고이 모셔가며 들었고 언니들 진짜 좋아했어요... 그리고 그때 그 시절 안티 진짜 악랄했는데 이렇게 꿋꿋이 잘 지내주고 현직이라 해도 믿을 만큼 위용을 떨쳐주다니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베이비복스를 영접한 그때 그 날 이래로 스물 대여섯 번쯤의 겨울을 보내고 지금은 나이가 3배 이상 되었다. 언니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노랠 불렀던 옥수역 그 근방은 매우 먼 통학길이자 출근길이 되어 버려 아무런 감흥도 없어졌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그 겨울에 지금은 내 모교가 된 학교도 가봤었다. 친척 댁에서 멀지 않아서 엄마가 구경시키러 데리고 간 것 같은데 대학생들이 뭔 초딩이 굳이 여기 왔냐는 식으로 쳐다봐서 부끄러웠다. 정문 가까이 있는 단과대학은 컴샛 스테이션이나 뉴클리어 사일로가 붙어 있는 테란 커맨드 센터처럼 생겼었는데 난 정확히 거기로 입학을 하게 된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지금은 통근길이 바뀌어서 아예 옥수역 무렵을 지나갈 일 자체가 거의 없다. 그래도 이번에 세밑이라고 부모님 집에 오면서 3호선을 타서 베이비복스 언니들을 만났을 곳쯤을 지나왔다. 오면서 2024년 이 kbs 공연 영상을 들었고.
이 모든 내용이 나이의 방증이지만 세월이 피해간 듯한 베이비복스의 완전체 공연을 보게 되다니 감개 무량하다. 나에게는 참 그리운 시절이지만 광기어린 팬덤에게 오랫동안 고초를 겪은 미연이 언니는 아예 기억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는 험한 시절... 다들 너무 예쁘고 개성 넘치고 실력 있었고 이래저래 가슴아픈 사연도 많았던 베이비복스를 거쳐간 모든 멤버들, 그리고 그 어렸던 시절이 그리운 대한민국 대들보 30-40대 장년층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