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남아시아

보헤미안 랩소디, 이방인, 카트만두 타멜

bravebird 2025. 2. 5. 21:53

 

 

작년 여행을 떠올리면 유난히 기억이 많이 나는 부분이 있다. 

 

작년에 네팔에만 2개월을 있었고 카트만두 타멜에 오래 지냈다. 포카라와 룸비니 일정이 다 끝나고 카트만두로 돌아왔을 때 타멜에 짐을 풀었었다. 그러다 랑탕 트레킹을 다녀와서 쉬다가 또 쿰부 트레킹을 다녀와서 쉬었다. 그러니까 타멜에 꽤 오래 있었는데 그때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다. 그 생각이 무척 많이 난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알게 된 것은 한 2~3년 전으로 노래의 명성에 비하면 너무 최근이다. 작년 타멜에서 불현듯 이 노래가 생각나서 듣기 시작했다. 내용이 마치 카뮈의 이방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웃긴 것은 난 보헤미안 랩소디는 정말 좋아한 반면, 대학교 때 읽은 이방인은 뭐 이런 이상한 책이 있냐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이걸 명작이라면서 뫼르소한테 이입할 수 있는 사람은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니냐면서.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도 그제서야 찾아서 봤다. 이 노래가 이방인이랑 관련이 있고 없고, 프레디 머큐리의 성 정체성에 대한 것이고 아니고를 알아보는 것만도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고, 이 노래는 나의 개인사 속에서 매우 특이했던 시절을 온통 차지했다는 것이다. 

 

완전히 일상 세계로 돌아온 지금 와서 회상하면 작년 여행은 약간 꿈 내지 신기루 같았던 시간이다. 레이오프를 당해서 내 인생에 앞으로 무엇이 닥칠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고 그 다음날에 뭘 할지조차 몰랐다. 랑탕과 쿰부에 간 것도 그냥 거기서 결정한 것이지 아마 미리 상상한 적조차도 없었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일상을 완전히 떠난 이방인이었으며 절대 고독 속이었고 문자 그대로 한치 앞을 몰랐다. 레이오프도 어쩌면 참다 못한 내가 방아쇠를 당겨서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 후에 일어난 이 일련의 사태를 그냥 겪어 보겠다고 생각하며 떠난 여행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뭐가 어떻게 되든 받아들일 것이니 관계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 타멜에서 끝도 없이 들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래서 잊히지가 않는다. 내가 지금 휴가를 일주일 내고 똑같은 타멜에 가서 똑같은 이 노래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거랑 이거는 그냥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인 것이다. 

 

Any way the wind blows doesn't really matter to me. 

어쨌든 바람은 불고, 상관 없다, 는 오역이며, 원래 바람이 어디로 불든 간에 상관이 없다, 라는 뜻이다. 

 

이것이 내가 작년에 레이오프와 여행을 통해 경험한 것 바로 그 자체다. 매일이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실수 안 하려고 잘 하려고, 혹은 속마음을 안 들키려고 애쓰는 지금도 안 잊으려고 하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