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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 縄文時代일본의 신석기 시대. 한국의 신석기 시대와는 달리 농경이 시작되지 않았다. 수렵·채집을 기본으로 한 사회였고 빗살무늬 토기가 제작되었다. ■ 弥生時代일본의 청동기-철기 시대. 한반도 출신의 도래인을 통해 농경 문명이 전래되었으며 아시아 대륙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민무늬 토기가 만들어졌고, 청동제 무기와 제사도구가 출현하였다. 신도가 성립 발전하였다. ■ 古墳時代대규모 고분이 건립된 것을 보아 분명한 사회계급이 존재했던 시대. 선사시대가 끝나고 역사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대의 일부와 뒤의 아스카 시대 일부를 합해 야마토(大和) 정권의 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 飛鳥時代현재의 나라에 위치하는 아스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6세기-8세기 무렵의 역사 시대이다. 한반도에서 불..
제9장: 메이지 초기의 대외관계와 청일전쟁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의 직접적 계기는 조선의 동학농민전쟁 발발이었다. 조선 정부는 동학전쟁 진압을 위해 청에 원군을 요청했는데, 일본은 톈진조약의 동시출병 조항을 근거로 즉시 파병하여 조선을 군사적으로 장악하였다. 이어서 청의 북양함대를 완전히 궤멸시키는 등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점한다. 일본이 요동반도를 점령하기에 이르자 청은 직예총독이자 북양대신인 이홍장으로 하여금 대일 회담에 임하게 한다. 이 협상 결과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는데, 이는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조약이었다. 우선 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해야만 했으며 이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조공질서의 와해를 의미하는 동시에 일본의 대조선 영향력이 확대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청은..
제5장: 통일정권의 수립과 위로부터의 근대화 메이지유신 직후 번사 출신 도막파 인사들에 의해 중앙집권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도막파가 주도한 신정부는 1871년 폐번치현을 강행하여 정치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이와 동시에 도막파 공경이나 다이묘들이 점차 정부 요직에서 배제되고 사쓰마, 조슈 출신의 번사들이 권력을 독점했다. 1873년 정한논쟁 이후에 성립된 오오쿠보 도시미치 정권은 그 정점에 있었다. 유신 직후 도막파와 공의정체파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도막파의 중심인 사쓰마와 조슈는 막부 폐지에 그치지 않고 도쿠가와가의 세력을 대폭 축소하여 신정부에서 배제하고자 했다. 반면 삼직회의의 다수를 장악한 토사, 에치젠, 오와리, 아키의 공의정체파는 쇼군을 포함한 웅번연합정체를 지지했으며 도쿠가와 가문과 번..
제3장: 하급무사에서 '지사'로 사쓰마와 조슈 등 웅번의 하급 무사들은 존왕양이 및 도막운동 노선을 형성함으로써 점차적으로 번정부를 장악하였다. 이처럼 도쿠가와 체제의 주변부에 속했던 하급 무사는 어떻게 새로운 정치체제 구축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는가? 존왕양이론은 도쿠가와 후기 미토번에서 성장한 존왕론의 영향을 받아 쇄국체제의 유지를 주장하는 사상이었다. 특히 1858년 이이 나오스케의 통상조약 체결에 대해 코오메이 천황과 미토번주인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강하게 반발한 것을 계기로 막부비판 논리로 자리잡았다. 교토에서는 천황과 양이파 공경들이 막부를 비판했으며, 다이묘 중에는 히토츠바시파 인사들이 항의했다. 지방에서는 조슈번과 미토번이 양이론을 번의 공식입장으로 채택했다. 일부 무사 중에서도 조슈번의 요..
제1장: 페리 내항과 막부의 개국정책 1853년 페리 함대(흑선)가 에도 앞바다에 나타나 무력시위를 벌인 이듬해, 미국과 일본은 미일화친조약(카나가와조약)을 체결한다. 1858년에는 미일수호통상조약이 조인되면서 개항장이 카나가와, 하코다테, 니가타, 효고, 나가사키의 5개로 늘어난다. 에도와 오사카는 개시장으로 정해졌으며, 에도에는 공사, 개항장에는 영사 주재를 허용하게 되었다. 외교대표의 국내여행과 외국인의 개항장 거류 및 개시장 체재 역시 허용된다.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이 시행되었으며, 협정관세를 채택하고 외국화폐가 자유로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특히 영사재판권, 협정관세율, 편무적 최혜국대우 등의 불평등한 규정이 성문화된다. 이처럼 막부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굴복하여 2차례에 걸쳐 개국조약을 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