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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비올라

bravebird 2025. 7. 19. 21:58

올해 1월부터 비올라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오케스트라 합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잠깐 만져는 봤었기 때문에 현악기 중에서 하나 골라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부는 악기는 오래 하면 왠지 어지럽고 많이 피곤할 것 같다. 물 고이는 것도 싫음. 이게 결정적.) 근데 어릴 때 그래도 조금이라도 접해 봤었던 바이올린보다는 왠지 저음 악기를 하고 싶었다.
 
우선 난 낮은 소리가 더 듣기 좋다. 나 자체도 목소리가 낮다. 바이올린은 음역대가 너무 높아 내 귀엔 편안하지는 않다. 
그리고 주선율보다는 화음이나 리듬의 뼈대를 만드는 쪽에 좀더 가까운 그런 악기를 원했다. 
또한 애초부터 합주가 목표이기 때문에 합주에 빠르게 합류할 수 있고 실제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랐다.
그리고 내겐 디바 성향이 별로 없다. 그냥 전체 곡이 잘 되어가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면 된다.
또 기동성이 있어야 한다. 음량이나 크기상 집에서도 연습이 가능해야 하고, 밖에 가지고 다니는 데도 부담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습량을 확보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에 딱 어울리는 것이 바로 비올라였다. 
비올라는 소리도 좋지만 이 악기 그 자체가 내 성향에 잘 맞는 거 같다. 나라는 사람이 집단 내에서 추구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역할이 아마도 비올라랑 비슷한 거 같다. 뭔가 나랑 여러 모로 특성이 잘 맞는데 도무지 이렇게까지 맞을 수가 없다 싶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비올라 주자는 언제나 귀해서 내가 아직 잘 못해도 오케스트라에서 귀하게 쓰인단 점이다. 
뭐든 잘하려면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하는데 비올라 주자는 합주 기회를 충분히 얻을 수가 있다. 환영받는다. 
이미 6월에 드보르작 곡들로 현악 합주를 한번 마쳤다. 
12월엔 비발디 사계를 현악 합주로 하게 될 것 같고, 하반기에 오케스트라 참여도 고민해보고 있다.
하반기 오케스트라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폴로네즈가 포함이 되어있다.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든든하게 중간을 잘 잡아준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주선율을 주고받을 때 중간에서 마치 메트로놈처럼 비트를 잡아주기도 하고
또 가끔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나누어 주선율을 맡기도 하고 많은 순간은 화음의 중음역대를 탄탄하게 받쳐준다. 철근 콘크리트 같은 역할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전면에 크게 부각되지 않으면서 곡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볼 수 있는 것, 
곡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전반적으로 조화롭게 잘 돌아가는 데 필수적인 도움을 묵묵히 줄 수 있다는 것,
환영받으며 감사한 연주 기회를 받을 수 있고, 몇 명 되지 않는 주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임할 수 있다는 것이 전부 다 마음에 든다. 
 

상반기에 비올라 연습 열심히 해서 음정 테이프가 마찰로 끊어졌다

 
사실 비올라만 하지는 않고 바이올린과 병행을 한다.
나는 비올라 메인이지만 두 악기를 병행하는 것은 정말 훌륭한 전략이라고 생각하므로 한번 이야기해 보겠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기본 연주 원리와 자세가 같다. 노력이 분할된다기보다 서로 시너지를 낸다. 
비올라는 일단 바이올린보다 3차원적으로 크기 때문에 왼손 손가락 간격도 더 멀다. 그래서 왼손 훈련이 더 고강도로 된다. 비올라로 세프치크 손가락 연습을 하다가 바이올린을 잡으면 왠지 그저 편-안하다 ㅋㅋ 
바이올린은 비올라보다 고음역대를 맡으므로 3포지션 이상의 포지션 이동이 잦다. 또 악기가 작고 가볍고 주선율 담당이다 보니 기교적으로도 더 복잡하고 화려하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음이 제일 많은 악기가 바로 바이올린이다. 즉 손이 제일 바쁘다. 이런 부분이 비올라 연주에 응용이 가능하고 도움이 된다. 또 솔로 레퍼토리도 풍부하다. 스킬을 뽐내는 독주가 좋다면 단연 바이올린.
바이올린의 난점은 고음역대의 콩나물 음표를 읽는 게 복잡하다는 점. 차라리 난 비올라의 가온음자리 읽는 게 더 쉽다. 
비올라의 난점은 처음 합주곡 연습을 시작할 때 총보를 보고 영상을 보면서 악곡을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시간이 특히 좀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 비올라 파트 악보만 보면 주선율이 아니다 보니 곡의 어느 부분인지 잘 모르겠어서 혼자 연습하기가 좀 막막하고 지루할 수 있다는 점 ㅋㅋ 일단 합주를 다녀온 다음 이 부분이 전체 곡에서 어떤 부분인지 인지가 되고 나면 차차 괜찮아진다. 
 
나는 메인을 비올라라고 생각하고 있고 바이올린도 비올라를 잘하기 위해서 병행하는 거지만 
언젠가는 바이올린으로도 합주에 참가해보고 싶다. 이미 비올라로 해본 곡을 악기만 바꿔서 다르게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또 예컨대 비발디 겨울 1악장이라든지 이런 건 언젠가 바이올린으로 한번 해보고 싶다. 
물론 장영주의 사계로 익숙해진 내 귀에.. 내 바이올린 소린 절대 성에 차지 않겠지만..
 
악기를 연주할 땐 어떻게 하면 더 소리를 잘 낼지 그 생각만 한다. 다른 잡념이 일체 사라진다. 
올해 상반기에 레슨을 시작해서 벌써 200시간 가까이 연습 시간을 채웠다.
지금까지 그 어떤 취미도 이런 페이스로 재미 붙이고 시간투자 한 적 없었는데 조금 더 일찍 시작할 걸 그랬다. 
어릴 때 엄마가 피아노 학원 보내줬을 때는 왜 그냥 그저 그랬을까?
시켜줄 때 할걸 ㄹㅇㅋㅋ 남이 돈 내주고 하라고 시키면 도무지 소중한 줄을 모른다.
없는 돈 끌어모으고 없는 시간 기워 붙여서 간신히 해봐야 비로소 이게 얼마나 귀중한지 알게 된다.
지금은 연습하다 보면 도낏자루 썩는지도 모르겠고 내 평일 하루는 온통 연습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굴러가는데 
어릴 때 진작 재미 붙였다면 음대 간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난 대규모 합주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마 비올라와 바이올린을 메인으로 하겠지만,
앞으로 몇 년 후에 피아노도 다시 차근차근 해보고 싶고 
비올라랑 왠지 포지션이 비슷한 베이스 기타도 재밌을 것 같다. 
노래도 곧잘 부르니까 보컬도 제대로 배워볼 법 하다 싶지만 
기악이 훨씬 더 재밌다. 그리고 합주가 재밌다.
음악 이론 같은 것도 워낙 재미있어 했었어서 나중에 기회되면 피아노 하면서 화성학도 배워보고 싶다. 
콘트라바스 하면 재즈까지도 가능한데... 하는 생각도 든다 ㅋㅋㅋ
하지만 언제까지나 우선 비올라 바이올린부터!!
 
https://youtu.be/GOPsXJoatEI

 
이 곡을 언젠가 진일보한 실력으로 연주할 수 있길 바란다. 
상반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위해 내 시간과 노력을 바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항상 유쾌하게 세심하게 지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바이올린 비올라 선생님들을 매주 만나는 것도 즐겁고, 가르쳐 주신 것 잘 흡수해서 뿌듯하게 해드리고 싶다. 
내가 이걸 할 심적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는 것도, 
바이올린 단체 레슨을 제공해 주는 회사에도,
충분한 합주의 기회를 주고 아낌없이 가르침을 주시는 동호회와 학원에도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이거는 단 며칠이라도 놓으면 바로 티가 나는데다가 평생 방망이 깎듯이 해야 하는 그런 끝도 없는 고강도 취미로, 이미 시작한 이상 벌어진 일이 매우 크지만 즐겁다. 먼 길 차근차근 한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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