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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겨우 서른 보면서 码자 두드려 패기

bravebird 2021. 2. 5. 18:23

1-2월에 넷플릭스 드라마 <겨우 서른>을 보면서 부족한 중국어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바람피는 연놈들 이야기에선 ㅅㅄㅂ 하면서도 동일 연령대 이야기다 보니 바로 갖다 쓸 수 있는 표현을 낼름 주워 먹기만 하면 돼서 너무 개이득입니다. 혼자만 알기엔 아까워서 가끔 재밌는 게 있으면 써보려고 해요. (나한테만 재밌을 확률 99.99퍼;; ㅋㅋ)

중국어는 한자 때문에 조어력이 뛰어나서 유행어, 신조어 및 번역어가 정말 기발합니다. 근데 그런 콘텐츠는 저보다 더 잘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 대신, 저는 오늘 한자 한 개 붙잡고 뚜드려 패겠습니다. 현대 중국어에서 정말 자주 보고 듣는 글자라서 한번 봐두면 무조건 이득입니다. 보장함. 

그럼 숨은 그림 찾기 ㄱㄱ 해볼까요.
아래 짤에서 공통적인 글자 하나 찾아보세요.

[캡처 1]
[캡처 2]
[캡처 3]
[캡처 4]


자 보이시죠? (제목에 써놨는데 뭔 숨은 그림;;)

옥편에서 번체인 碼를 찾으면 마노 마라고 나와요. 마노, 석영 하는 광물 그거 맞습니다. 돌 석자 부수가 의미 부분이고 말 마자가 발음 부분인 형성자입니다. 현대중국어 사전에서 찾으면 대충 이래요. 정작 '마노'라는 뜻은 안 나오죠. 애초에 한국어로도 '마노'란 말을 해본 적이 없음 ㄹㅇㅋㅋ 

마노는 이렇게 반들반들하게 생긴 돌이에요. 숫자 세기 좋겠죠. 초등학교 때 공깃돌이나 산가지 같은 걸로 기초 산수 배웠잖아요? 딱 그런 거예요. 그래서 마노 码 자에는 숫자 한 자리 한 자리라는 뜻이 있어요. 

마노

마노는 몰라도 숫자는 항상 세고 살다 보니, 码 자는 중국어 입문 과정부터 바로 등장해요. 

  你的电话号码是多少? 전화번호 뭐예요?
  给我你的qq号码。 qq번호(메신저 아이디) 알려주세요. 
  密码都忘了。 비밀번호 잊어버렸어. 

숫자 한 자리라는 뜻이 있다 보니 단위를 세는 양사(量词)로도 쓰입니다. 저는 드라마에서 아래 두 표현이 재밌어서 메모해 놨다가 이 글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한국어로 자주 하는 말인데 码 자를 쓴다는 게 신선했거든요. 

  一归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캡처 1] 참조, 직역하면 한 가지 일은 그 한 가지에만 귀속된다는 뜻)
  这是两事。 이 둘은 별개의 일이잖아요. ([캡처 2] 참조)

筹码

숫자 세는 도구에도 码 자가 들어가요. 이런 카지노 칩을 筹码라고 해요. 筹자도 산가지라는 뜻입니다. 이런 화폐 많이 갖고 있으면 든든하잖아요. 그래서 筹码에는 '의지할 만한 조건' 혹은 '승부수' 같은 뜻이 있어요.


이런 카지노 칩을 하나하나 더해서(加) 쌓아올린다고 생각해보세요.

加码

칩을 쌓아올린다는 건 판돈을 올린다는 것, 즉 리스크를 걸고 부담을 지는 거지요. 그래서 加码가 쓰인 [캡처 4]는, 매사 너무 열심히 사는 딸한테 '누가 뭐라고 안 해도 스스로 부담을 지는(加码) 아이잖아'라고 아버지가 염려의 한 마디 하는 장면이에요. 그나저나 여기 게임스탑 주식 산 흑우없제? 추가 매수 자제요;; ㅋㅋㅋㅋㅋㅋ 


영어에서는 码처럼 숫자 한 자리 한 자리를 뜻하는 단어가 바로 이거지요.

digit의 번역어가 바로 码예요! 돌멩이든 손가락이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하나하나 딱딱 분리된 조그만 물체인데, 구체적인 사물이 '숫자 한 자리'라는 좀더 추상적인 의미로 확장된 컨셉이 공통적이지요. 디지털 기술 관련 어휘에서 정말 빈번히 등장해요. 게다가 중국이 워낙 핀테크 강국이라 QR 코드 관련된 대화 장면에서 이 글자 ㄹㅇ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数码  디지털
  编码  코딩
  码农  코딩의 노예 (农자를 써서 농부에 비유함)
  乱码  글씨가 깨져 나오는 것
  打码  이미지를 뿌옇게 블러 처리하는 것
  二维码  QR 코드 ([캡처 3] 참조)
  扫码  QR 코드를 스캔하다 ([캡처 3] 참조)

二维码、扫码
乱码




근데 이 码자가 들어간 단어 중에서 도저히 왜 码가 들어간 건지 이해가 안되는 게 있어서 찾다찾다 이 글을 썼어요. 


码头는 '항구' 내지 '부두'라는 뜻으로 굉장히 자주 쓰는 단어인데요, 여기 대체 码자가 왜 들어간 건지 궁금해서 码 자의 바이두 백과를 찾아봤어요. 하나하나 세면서 더해가는 산가지에서 발전한 것으로 더미 혹은 쌓아올리다라는 의미가 또 있더라고요. 부두는 무언가 적재하는 공간이란 걸 연상하면 될 것 같아요. 또, 사실 码는 yard라는 거리 단위의 번역어이기도 합니다. 부두 야적장을 야드라고도 부르니까, 그거랑도 어쩌면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码자의 또다른 의미는 '쌓아올린 더미(垒成的堆)' 혹은 '쌓아올리다'


  码垛  쌓아올리다
  码放  배열하다, 쌓아두다
  码垛堆积  팔레트 적재

무역항에 가면 이런 팔레트 적재를 흔히 볼 수 있음


검증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 검색을 좀더 해보니까 이런 얘기도 있긴 있어요. 옛날에 배를 타려면 그 전까지 타고 온 말에서 내려야 되잖아요. 강기슭까지 끌고온 말을 돌에 매어놓고 배를 기다리던 곳이라서 码头가 되었다는 겁니다. 头는 머리 두 자이고 '머리, 앞부분, 끝부분'이란 의미가 있어요. 결국 말에서 내려야만 하는 마지막 포인트라는 거죠. 

 

2023년도에 ChatGPT가 나와서 한번 물어본 내용을 추가함 ㅋㅋㅋ


이렇게 码자를 뚜까패 봤는데요. 정말 자주 쓰이는 글자인데 단독으로는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하늘천 따지 하면서 한 글자씩 배운 사람들은 좀 나은데, 서양 쪽 외국인들은 진짜 잘 몰라요. 옛날에 중국에서 현대한어(언어학) 수업 들을 때의 가물가물한 기억에 따르면, 중국어 단어는 고문에서는 주로 단음절이었다가 현대로 올수록 쌍음절로 변한 게 많습니다. 그래서 현대 중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우리가 한문 시간에 하듯이 글자 하나하나씩은 배우지 않아요. 두 글자짜리 단어를 덩어리로 외워 버리죠.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는 잘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제 미국 친구 중 하나도 이것 때문에 고민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이 한자 배워서 너무 유리하다고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야 임마 나는 라틴어 안 배웠어... 넌 배웠잖아 ㅎㅎ)
 
특히 이 码 같은 경우는 사람 인이나 계집 녀나 물 수처럼 자명하지도 않고, 단어 뜻이 여러 차례 추상화되거나 확장된 케이스잖아요. 
마노 → 돌 → 숫자 세는 도구 → 숫자 하나하나 → 디지털 
이런 글자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의미가 가지치기 해 나간 과정 자체도 재밌고, 어렴풋이 덩어리로만 알았던 어휘들이 요소요소별로 정확히 이해가 되면서 어휘력이 정말 크게 상승하는 것 같아요! 

자 그럼 码자는 이걸로 다 뚜까 팼으니 码자 들어간 단어들 더 구경해 보세요! 네이버사전 검색결과 링크 걸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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