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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 서양 고전에서 배우는 자기표현의 기술

bravebird 2015. 6. 10. 10:41

 

자아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에곤 실레 자화상, Double Self-Portrait

 

 

 

정독도서관 갔을 때 자서전 장르에 대한 신간이 나왔길래 빌려 읽고 있다. 서울대 불문과 교수 유호식 저. 제목 《자서전》.

 

자서전, 혹은 자기 이야기 장르에는 대학교 3학년 때 몹시 관심이 많았다. 그때쯤 자서전은 아니지만 자기 이야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인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도, 카뮈 《전락》도, 레르몬토프 《우리 시대의 영웅》도 열광하며 읽었었다. 자기의식이 강하고 유난히 예민했던 시기였다. 이청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를 주제작으로, 《당신들의 천국》을 참고작으로 해서 이 주제로 학부 졸업논문을 쓰려고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대학생활 한 시기의 거대한 주제였기에, 마지막 학기에 구직활동을 병행하며 대충 쓸 수밖에 없었던 졸업논문의 주제로 삼기에 켕기는 점이 많아 그만두었다. 만약 우리 과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이 분야를 연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사실 자서전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양가적이다. 스스로에 대해 집중하여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불안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이 많긴 하지만, 적어도 나르시시즘은 분명히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마, 준열한 기준을 적용해서 글을 쓰면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할지 모른다. 자기 자신에 대해 낱낱이 자연주의적으로 적는 것이다. 과오와 어리석음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 속 악의와 추한 욕망까지 모두 고백하는 것. 그렇지만 저자는 반드시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해야만 하는가? 무엇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자서전도 결국 무언가를 효과적으로 말하기 위한 '글쓰기'다.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소재 순서를 배열하게 되며, 문학적인 효과를 가미하게 되고, 쳐낼 것은 쳐내고 강조할 것은 강조하게 된다. 글쓰기라는 활동 자체가 현실을 가공할 수밖에 없도록 제약하는데, 이걸 통해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시도 자체가 평면에 세계지도를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가공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진실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장르가 바로 자서전이다.

 

결국 자서전은 사실과 허구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며 글쓰기 그 자체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철학 용어를 빌려와 보자면, 실재와 관념의 문제가 문학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철학 시간에 실재론과 관념론을 배울 때는 현실 맥락을 제거한 순수논리만 사변적으로 다뤄서 정말 재미가 없었다. 핀으로 고정해 버리려는 순간 통통 튀어올라 다 뽑고 달아나 버리는 인생이라는 것. 그 펄펄 뛰는 것을 1+1=2 식의 건조한 논리로 박제해 버리는 서양철학은 내게 정말 잘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자서전이라는 문학 장르를 통해서는 실재와 관념, 사실과 재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친숙하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다루어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르시시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서전이라는 주제에 여전히 매력을 느낀다.

 

이성으로 믿는 것과("자아는 그 사람의 감옥이야!") 감정적으로 끌리는 것("그래도 여전히 자서전은 흥미로운 현상이야!") 사이의 모순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도덕적으로는 불완전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인간적이고 흥미진진한 것. 이게 바로 자서전이자 글쓰기 그 자체이고, 인간조건이며 현세계 아닐까. 시간이 가면서 나 자신 외부에 많은 관심거리들이 생겨서 자기서사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마주친 관심주제가 반갑기도 하다. 계속 읽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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