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2016년도 홍콩 입법회 선거 이야기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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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벌써 3분기도 거의 막바지입니다. 올해 목표들은 점검해 보셨나요? 저는 관심사 하나를 쉽게 설명하는 글을 써서 웹상에 올려 보자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재밌어 하는 것들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면 좋겠고 코멘트도 들어 보고 싶었거든요. 마침 흥미를 끄는 일이 있어서 그걸 이곳에 써보려고 합니다. 바로 홍콩 입법회 선거입니다.
▲ 홍콩 입법회 건물
9월 4일 일요일은 홍콩 입법회 선거일이었습니다. 저는 홍콩영화 팬이 됐던 10년 전부터 홍콩에 관심이 많습니다. 잊을 만하면 홍콩 뉴스를 간간이 챙겨왔습니다. 식민통치가 끝나는 게 너무나 두려웠던 독특한 역사를 가진 곳, 50년 간의 일국양제라는 전례없는 결정 속에 거대한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홍콩입니다.
최근 홍콩에서 가장 큰 이벤트였던 입법회 선거는 파고들다 보니 혼자 알기 아까운 부분이 있어 나눠보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홍콩은 먹고 마시고 쇼핑하기 좋은 곳이거나 한번쯤 일해보고 싶은 곳이었을 뿐이지,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고 로컬 사회가 어떤지는 잘 다뤄지지 않으니까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홍콩 입법회 선거제도 개요
덩샤오핑과 마가렛 대처는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갑작스런 체제전환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일국양제에 합의했습니다. 내륙 중국과는 다른 법률이 필요했겠죠. 홍콩특별행정구 내의 헌법과도 같은 법이 바로 홍콩 기본법입니다. 이 기본법을 바탕으로 법률을 만들고 예산안을 심사 승인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여느 의회와 같은 기능을 바로 홍콩 입법회가 담당합니다.
올해 10월 1일에 시작되는 새 입법회 임기는 총 4년입니다. 의석은 70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인 2표제로 1표는 지역선거구에, 나머지 1표는 직능선거구에 행사합니다. 지역대표와 직능대표 의석 비율은 반반씩이고, 직선이 40석이며 간선이 30석입니다. 상세는 아래와 같습니다.
※ 총 70석 상세
a. 직선 지역선거구 (35석, 총 5개 지역구, 총 유권자 약 380만 명)
b. 간선 직능선거구 (30석, 유권자(자연인 및 법인)는 별도 등록을 거치며 이번 선거의 총 등록 수효는 약 24만)
c. 직선 직능선거구 (5석, 지역 구의회(District Council(second)) 의원만 출마 가능, b에 등록하지 않은 나머지 모든 자들(a-b)이 유권자)
한국에는 없는 간선제와 직능대표제에 눈길이 갑니다. 특히 직능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사실상 전세계에서 홍콩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 간선제와 직능대표제가 콤비로 빚어내는 현상 중에 짚어볼 점이 많아 그 내용 위주로 서술해 가겠습니다.
2-1. 한 표 가치의 심각한 차이
간접 직능선거구의 유권자가 되려면 따로 등록을 해야 합니다. 이때 한 직종의 모든 사람이 다 유권자 등록을 하지는 않아요. 일도 바쁜데 일부 소수만 굳이 가서 등록을 하겠죠. 이 소수가 나머지를 대신해서 업종 대표자를 뽑습니다.
유권자 등록을 많이 하면 선거구가 크고 적게 하면 작겠네요? 그렇습니다. 교육 선거구는 유권자가 9만 명에 육박하는데 파이낸스 선거구는 단 125명 뿐입니다. 그런데 둘다 1석씩 배출하게 돼 있습니다. 표 등가성 훼손이 심각합니다. 9만 명이 뽑은 1명과 125명이 선택한 1명. 전자의 1표 가치는 9만 분의 1, 후자는 125분의 1. 표 가치가 무려 700배 넘게 차이나는 심각한 불평등 선거입니다.
일반 유권자들의 표 가치와 비교해도 불평등이 엄청납니다. 이번에 간접 직능선거구에 등록한 유권자는 24만 명 정도입니다. 등록 안 한 일반 유권자(c)는 전체 380만(a) - 24만(b) = 약 350만 명 정도입니다. 이 350만 명이 각 지역구 구의회 의원만 출마할 수 있는 별도의 직능선거구인 District Council(second)에 투표해서 총 5명을 직선으로 뽑습니다. 이 5석을 언론에서 흔히 Super Seat이라고 합니다. 가만 보면 350만 명의 일반 유권자는 달랑 5명을, 직능선거구 유권자로 등록한 24만 명은 무려 30명을 당선시키는 형국입니다. 이만하면 굳이 표 가치 계산까지 안 해봐도 저울이 기울어지다 못해 망가진 게 보이죠.
덧붙이자면, 등록한 유권자 명단조차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공개되어 있지가 않기 때문에 관공서에 직접 찾아가서 열람해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노트필기나 촬영, 핸드폰 사용 등이 불가능하고요. 간선 유권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겁니다. 감시나 견제, 의견개진 자체가 불가능하죠.
2-2. 법인도 유권자
법인도 간접 직능선거구의 유권자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홍콩 시민권을 가진 대리인을 한 명 지정해서 투표를 하는데, 실질적으로 법인 대표의 입맛대로 투표를 하게 됩니다. 직능 전체가 아니라 경영층 입장을 대변하게 되겠죠.
게다가 한 사람이 여러 개 법인의 대표라면 투표권도 그 법인 수만큼 갖습니다. 여기에 별다른 한도는 없습니다. 한국 총선도 이런 방식이었다면 이건희나 정몽구는 대체 표를 몇 개나 갖는 거죠? (...) 이렇게 법인을 여러 개 가질 정도의 슈퍼리치는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게 되는 거고, 자연히 친기업적 보수성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정부로서는 소수의 간선 유권자들만 길들여 놓는 게 관리하기 편합니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직능단체나 이익단체 대표들이니까 돈줄까지 쥐고 있는 사회 유력 계층이고요. 더욱이 중국 정부는 홍콩에서 직선 비율을 늘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민주주의 발전이니까요. 이렇게 간선 직능대표 집단과 중국 정부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직능대표들은 주로 친중국 성향을 띱니다.
이번에는 간선 직능대표 30석 중 22석이 친중파에게 갔습니다. 나머지 40개의 직선 의석에서 실컷 야권 후보를 뽑아놔도 나머지 30석이 여권 텃밭이니 재미가 덜합니다. 야권은 항상 의결정족수인 2/3을 좌절시키기 위해 최소 24석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죠. 이번에 야권은 꽤나 선전해서 총 30석을 얻고 비토 파워를 지켜냈습니다. 이번에 홍콩 역사상 투표율이 가장 높았는데, 우산혁명을 보고 겪어서 야권지지율이 높은 청년층의 공이 크다는 중론입니다.
덧붙여, 법인이 유권자가 될 수 있다 보니 홍콩과는 별 관련도 없는 외국 기업마저 투표권을 행사합니다. 카타르항공이 홍콩 의회 선거의 유권자랍니다. 호주 상공회도 마찬가지고요. 바누아투 관광회사도 그렇답니다. 한국 총선에서 코카콜라나 JAL, H&M 같은 법인이 유권자가 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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