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헝가리인 매드 티베톨로지스트 알렉산더 초마 (2) 본문
6월 29일 토요일 라다크 잔스카르 밸리의 중심지인 파둠을 떠나서 레로 왔다. 그 전날인 6월 28일 금요일 아침, 초마가 승려 푼촉과 함께 면벽 수행하듯이 티베트어를 공부했던 장라 고성(Zangla Palace)에 다녀왔다.
장라 고성은 파둠 중심부에서 33km 정도 떨어져 있다. 파둠에서 지낸 게스트하우스 호스트 리즈완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데리고 가줬다.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길에 있는 주요 볼거리 총 세 군데(카샤 사원, 실라 폭포, 걀와 링나)도 데려다 줬다. 잔스카르는 워낙 외진 데여서 다른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없었기에 혼자 택시를 대절하려면 금액이 상당해서 못 갔을 것 같다. 게다가 난 게스트하우스 방도 1박 500루피에 혼자서 썼다. 리즈완의 가족들이 밥도 다 해줬다. 그래서 떠나는 날 숙박비보다 더 많은 팁을 놓고 나왔다.
리즈완은 여름에는 파둠(라다크)에, 겨울에는 스리나가르(잠무-카슈미르)에 사는 20대 청년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회사를 3년 다니다가 파둠에서 가게를 여러 개 열고 자기 사업을 한다. 리즈완의 가족은 파둠이 고향이고 라다크어를 쓰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발티족이다. 발티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주가 있는데 리즈완의 삼촌 한 분도 그곳에 있는 스카르두에 사신다. 길기트-발티스탄은 이번 여행에서 꼭 가고 싶었던 곳이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가보는 게 오랜 소원이기 때문이다. 지금 7월 말 인도에서 귀국할지, 아니면 라다크 여행 후 잠무-카슈미르와 펀자브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들어가서 기후 조건상 여름에만 방문 가능한 길기트-발티스탄까지 올라가볼지 한참 생각 중이다.
발티스탄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대발률국'으로, 길기트는 '소발률국'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교통 요충지에 해당하며 대승불교가 인도아대륙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전파된 루트이다. 이처럼 인도의 잠무-카슈미르, 파키스탄의 길기트-발티스탄 및 페샤와르 등지는 예로부터 혜초뿐 아니라 현장 등의 많은 구법승들이 방문했을 만큼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대발률국과 소발률국은 모두 토번(티베트)의 지배를 받은 바 있어 현재의 티베트 및 라다크와 문화적으로 밀접하다. 이 중 소발률국은 고구려 유민 출신인 당나라 장군 고선지의 서역 원정을 통해 당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둘 모두 불교국가였으나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파둠 마켓에서 장라 고성으로 가는 길은 모두 포장 도로였으며 몇 년 내로 들어선다는 공항 부지도 그 길에 있었다. 잔스카르 산맥의 경이로운 풍광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데 다니는 차도 거의 없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도로였다. 전무후무한 경관이었다. 레까지 온 것도 이 길을 따라서였다. 장라 마을을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도로 포장이 끊겨 버리고 통신도 되지 않지만 정말로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경치였다.
외딴 장라 마을의 높은 언덕에 있는 장라 고성 인근도 굉장한 경치를 자랑했다. 얼핏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스투파들이 솟아 있었으며 꼭대기에 고성이 있었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표소 같은 것도 없다. 방문객도 우리 말고는 없었다. 리즈완은 으스스한 고성 안에 들어가보기를 무서워했다. 내가 앞섰다. 초마가 티베트어를 공부하던 곳을 보러 온 거기 때문에 어떻게든 들어가 봐야지.
장라 고성 내부는 천장이 낮았고 거의 폐허에 가까웠다. 초마가 공부했을 듯한 방은 문이 잠겨 있었지만 문틈과 창문을 통해 실내를 볼 수 있었다. 잔스카르에 오기 전에 쿨루와 라홀에서 라제쉬가 이곳 왕족 후손들이 장라 마을에 살고 있으니 열쇠를 받아서 가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지 않아도 웬만한 건 볼 수 있었다. 이 방에 초마와 푼촉 둘이 앉아서 불도 안 피우고 밖에도 거의 안 나가고 2년 가까이 면벽 수행하듯이 공부했다고 생각하니 초마가 새삼 얼마나 광인인지 알 수 있었다. 밖에 경치가 이렇게 기이한데...
결국 이들도 사람이긴 했는지 1824년 10월, 조금 더 사람 살 만한 히마찰 프라데시 쿨루 밸리의 술탄푸르로 옮겨 가기로 했다. 초마가 먼저 떠났고 푼촉은 이내 합류하기로 했으나 눈이 오는 바람에 길이 끊겨 버린다. 결국 초마 혼자 술탄푸르에서 기다리다가 그 해 겨울에는 눈 때문에 영 만나기 어렵게 된 것을 깨닫고는 사바투에 있는 동인도회사 사무소를 방문하여 그간의 연구 성과를 보고하기로 한다.
초마는 사바투에서 간첩으로 오인을 받아 한동안을 묶여 있는다. 그러나 결국에는 진실성을 인정받아 라다크에서 연구를 계속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월 50루피의 지원금도 받게 된다. 초마는 1825년 6월에 다시 연구를 계속하고자 길을 떠난다. 먼저 불경이 많이 보관되어 있는 카눔에 당도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곳 승려들은 그 문헌들을 읽을 줄 몰랐다. 결국 초마는 카눔을 떠나 잔스카르로 돌아가 출타 중인 푼촉을 6주간 기다린 끝에 재회하게 된다.
이들이 다시 공부를 이어간 곳은 이번 여행 자체의 중요 목적지 중 하나이다. 따라서 다음 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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