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성의 철학과 성윤리 수업 회고 본문
2009년에 성의 철학과 성윤리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동성애, 성매매, 결혼, 사랑과 성 등의 주제를 다루는 수업이었는데 별로 유익한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특정한 계기가 최근 있었던지라, 요즘 들어 새삼 되새겨보고 있다.
수업을 들은 목적은 성매매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여성과 법, 그리고 인권, NGO, 세계시민사회 수업도 들었고, 페미니즘 관련서도 챙겨 읽었었다. 그 모든 것의 연장선상에서 선택했던 수업이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 없는 편이었지만 성매매 부분만은 끝까지 입장정리가 어려웠다. 섹슈얼리티의 상품화를 윤리적으로 반대하는 전통적 입장과, 성판매 종사자의 직업 선택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급진적 입장 사이에서 좌표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 정립에 도움을 받고 싶어서 들은 수업인데 전혀 그러지도 못했고 내용도 기대에 못 미쳤다.
일단 전제 자체가 자유주의였고 이걸 납득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이 소비됐다. 우리 모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천부인권을 지녔으니 상호 존중해야 한다, 라는 플랫폼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동성애나 성매매 등은 감정적이고 조건반사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이슈이기에, 지성적 논의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자유주의는 내겐 이미 기본 전제나 다름이 없었기에 더 이상 되새겨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LGBT는 그 취향을 존중받아야 하고 이성애자와 동등한 사회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건 이미 당연했다. 그걸 처음부터 따져보는 토론에서 크게 얻어갈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 추상적이고 정답 같은 자유주의 관념에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딱히 없었다.
무엇보다, 순수 사변논리로 성소수자나 성매매 이슈를 논한다는 것이 굉장히 나이브한 접근 같았다. 성매매는 종사자들의 산업 진입 동기, 시장 실태, 성매매특별법의 지향점과 허점, 종사자들의 실제 의향, 탈 성매매 시 직업전환의 가능성, 감금 및 인신매매 여부, 성산업과 기타 산업의 연계성 등등 현실 제도와 사회경제적 측면을 빼놓고는 도저히 얘기가 안 되는 문제다. 순수한 윤리학의 차원에서 논의하고 말기에는 이미 너무 오래된 역사와 거대한 규모를 갖고 엄연히 존재해온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회경제적 내용을 논거로 삼으면 철학 리포트가 아닌 사회과학 리포트가 되어버리기에, 과제에 착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사변이라는 수단이 주제를 다루기에 그다지 적당치 않았기에 결국 성매매 주제는 포기했다. 대신 사랑과 성이 반드시 연결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리포트를 썼다. 뻔하고 편한 주제였고, 내가 속편히 우려먹었던 자유주의라는 기본 전제도 식상하고 나이브했다. 무엇보다, 쓸 재료가 없었기에 뭘 써도 결국 자유주의로 귀결됐다. 시작점으로 매번 돌아오는 순환논리만 연습한 느낌이다. 생각이 전혀 자란 것 같지가 않았다. 별로 영혼 없이 기계적이고 정답처럼 쓴 리포트였고, 참신할 것이 없는 글인것치고 의외로 점수를 잘 받았으나 상당히 허무했다. 이때 철학은 확실히 내 분야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학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
옳든 그르든 많은 일들은 이미 대판 벌어져 있다. 나는 그것들을 잘 조율해 나가는 일을 하고 싶다. 복잡한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바른지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해 줄 것이므로 철학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세상사는 순수 사변 논리라든지 윤리적 당위만으로는 설명도 교정도 되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깔끔하고 논리적이고 당위적으로 굴러가면 애초에 성매매라는 복잡다단한 문제 자체가 생기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으니까 선을 행해야 한다고 말했던 칸트. 칸트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이 말은 언제나 핵심을 전혀 해명하지 않은 속수무책의 텅빈 말로 들렸다. 대체 선이란 무엇인가? 구체적인 현실 상황을 초월한 절대적인 선이란 과연 무엇인가? 성판매 종사자들의 유입 원인과 갱생(?) 가능성과 업계 실태와 성매매특별법의 영향을 살펴보지 않고서 성매매를 논하는 것은 과연 가능하며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소수자의 권리 실태에 대한 검토가 빠진 성소수자 논의는 과연 유효한가? 여전히 큰 물음표로 남아있다.
수업을 들은 목적은 성매매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여성과 법, 그리고 인권, NGO, 세계시민사회 수업도 들었고, 페미니즘 관련서도 챙겨 읽었었다. 그 모든 것의 연장선상에서 선택했던 수업이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 없는 편이었지만 성매매 부분만은 끝까지 입장정리가 어려웠다. 섹슈얼리티의 상품화를 윤리적으로 반대하는 전통적 입장과, 성판매 종사자의 직업 선택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급진적 입장 사이에서 좌표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 정립에 도움을 받고 싶어서 들은 수업인데 전혀 그러지도 못했고 내용도 기대에 못 미쳤다.
일단 전제 자체가 자유주의였고 이걸 납득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이 소비됐다. 우리 모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천부인권을 지녔으니 상호 존중해야 한다, 라는 플랫폼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동성애나 성매매 등은 감정적이고 조건반사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이슈이기에, 지성적 논의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자유주의는 내겐 이미 기본 전제나 다름이 없었기에 더 이상 되새겨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LGBT는 그 취향을 존중받아야 하고 이성애자와 동등한 사회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건 이미 당연했다. 그걸 처음부터 따져보는 토론에서 크게 얻어갈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 추상적이고 정답 같은 자유주의 관념에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딱히 없었다.
무엇보다, 순수 사변논리로 성소수자나 성매매 이슈를 논한다는 것이 굉장히 나이브한 접근 같았다. 성매매는 종사자들의 산업 진입 동기, 시장 실태, 성매매특별법의 지향점과 허점, 종사자들의 실제 의향, 탈 성매매 시 직업전환의 가능성, 감금 및 인신매매 여부, 성산업과 기타 산업의 연계성 등등 현실 제도와 사회경제적 측면을 빼놓고는 도저히 얘기가 안 되는 문제다. 순수한 윤리학의 차원에서 논의하고 말기에는 이미 너무 오래된 역사와 거대한 규모를 갖고 엄연히 존재해온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회경제적 내용을 논거로 삼으면 철학 리포트가 아닌 사회과학 리포트가 되어버리기에, 과제에 착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사변이라는 수단이 주제를 다루기에 그다지 적당치 않았기에 결국 성매매 주제는 포기했다. 대신 사랑과 성이 반드시 연결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리포트를 썼다. 뻔하고 편한 주제였고, 내가 속편히 우려먹었던 자유주의라는 기본 전제도 식상하고 나이브했다. 무엇보다, 쓸 재료가 없었기에 뭘 써도 결국 자유주의로 귀결됐다. 시작점으로 매번 돌아오는 순환논리만 연습한 느낌이다. 생각이 전혀 자란 것 같지가 않았다. 별로 영혼 없이 기계적이고 정답처럼 쓴 리포트였고, 참신할 것이 없는 글인것치고 의외로 점수를 잘 받았으나 상당히 허무했다. 이때 철학은 확실히 내 분야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학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
옳든 그르든 많은 일들은 이미 대판 벌어져 있다. 나는 그것들을 잘 조율해 나가는 일을 하고 싶다. 복잡한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바른지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해 줄 것이므로 철학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세상사는 순수 사변 논리라든지 윤리적 당위만으로는 설명도 교정도 되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깔끔하고 논리적이고 당위적으로 굴러가면 애초에 성매매라는 복잡다단한 문제 자체가 생기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으니까 선을 행해야 한다고 말했던 칸트. 칸트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이 말은 언제나 핵심을 전혀 해명하지 않은 속수무책의 텅빈 말로 들렸다. 대체 선이란 무엇인가? 구체적인 현실 상황을 초월한 절대적인 선이란 과연 무엇인가? 성판매 종사자들의 유입 원인과 갱생(?) 가능성과 업계 실태와 성매매특별법의 영향을 살펴보지 않고서 성매매를 논하는 것은 과연 가능하며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소수자의 권리 실태에 대한 검토가 빠진 성소수자 논의는 과연 유효한가? 여전히 큰 물음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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