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瑞자 북경관화 발음에 대한 의문 본문
중국어로 스웨덴은 瑞典(rui4dian3), 스위스는 瑞士(rui4shi4)라고 한다. 瑞 자는 상서로울 [서] 자라서 한국한자음으로 읽으면 각각 '서전', '서사'이므로 대략 원어와 비슷하다. 근데 이 [서] 자가 북경관화(만다린)에서는 [rui4]로 발음이 되는 바람에 원래 소리와 상당히 많이 다르다.
http://cn.voicedic.com/
여기 들어가서 한자를 입력하면 중국 각 방언별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들을 수 있다. 瑞를 입력해보니, 역시 보통화만 [rui4]이고 나머지 방언권에서는 대부분 s계통이나 z계통 초성으로 실현된다. 광둥화는 [seoi6], 민난화는 [sui6], 차오저우화도 [sui6], 상하이화는 瑞[zeu], 쑤저우화는 瑞[ze231]. 모두 동남부 연안지방 방언인데 한국한자음 '서'와 대략 비슷하다. https://en.wiktionary.org/wiki/%E7%91%9E에서 보면 일본어 음독도 [zui].
중국과 한국의 한자음은 긴 세월 동안 많이 달라지긴 했어도 초성은 비슷하게 남았다. 바뀌더라도 같은 계통의 음으로 바뀌었다. 이 瑞만 좀 신기하다. 다른 방언에선 모두 치찰음 s, z [+sibilant] 계통 초성인데, 북경관화에서만 권설음 r [+retroflex]으로 실현됐다. 한국한자음과 중국 남방 한자음이 옛날 발음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고 하니 아마 북경관화가 나중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추측만 해본다. 그런데 왜 瑞 요놈만 이렇게 바뀐걸까?
가능하다면 비슷한 사례를 찾고 싶고, 이 발음의 음운 변화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고 싶은데 딱히 자료는 없다. 중국 웹에서 "진짜예요 가짜예요? 한국 한자음은 비슷하다던데 이 글자 발음은 왜 이렇게 달라요?" 하는 네티즌 성토만 하나 발견. ㅋㅋ http://wenwen.sogou.com/z/q128035806.htm
아니면 瑞典과 瑞士라는 음차 번역어가 언제 어느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인지 알면 좋겠다. 추측으로는 s 계통 초성을 지녔던 동남부 연해 지방에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편전쟁에 패하고 난징조약이 체결된 중국 근대의 초입 당시, 광저우, 샤먼, 푸저우, 상하이, 닝보 이렇게 5개항만 개항이 되어있었는데 모두 동남부 연안지방이고 2문단에 나열한 저 방언들을 쓰는 지역이다. 특히 홍콩이나 상하이 쪽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창구였으니까 이쪽에서 번역어를 만들어 보급했을 개연성은 충분.
하지만 다 추측일 뿐이고~ 북경관화에서만 瑞가 [rui4]가 된 사연이 몹시 궁금하다.
[+++]
집념의 웹검색으로 스웨덴 관련하여 http://www.zggds.pku.edu.cn/004/001/070.htm라는 페이지를 찾았다. 스웨덴에 대해 다룬 한문 문헌들에 대한 고증이 주 내용인데, 스웨덴 국가명의 중국어 번역 역사에 대한 내용도 간간이 포함돼 있다. 해당 웹페이지 내용을 기반으로 정리해 보았다. - 명조 만력제 시기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利马窦), 《곤여만국전도(坤舆万国全图)》에서 "苏亦齐(su1yi4ji4)"로 음역 - 명조 천계제 시기 이탈리아 선교사 Giolio Aleni(艾儒略) 및 중국인 양정균(杨廷筠), 《직방외기(职方外纪)》에서 "雪际亚(xue2ji4ya4 -- "스웨디아"를 옮긴 듯)"로 음역 - 러시아 대북방전쟁 시기(1700-1721) 문헌에 "西费耶斯科(xi1fei4ye1si1ke1)" 및 "式费耶特(shi4fei4ye1te4)"라는 번역명 등장. -- [w]가 [v]계통 발음으로 실현되는 러시아말을 옮긴 듯 - 청조 옹정 10년(1732)부터 시작하여 스웨덴 상선과 교류가 있었으며, 중국과 정식으로 직접 통상함. - 청조 건륭연간 편찬된 《황조문헌통고(皇朝文献通考)》 중, "瑞国(서국)"이라는 번역명 등장. - 瑞자를 사용한 최초의 번역 사례인지는 불분명. 건륭연간에 집대성한 사고전서에 포함되는 《황청직공도(皇清职贡图)》에서 이미 瑞国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다만 瑞자 옆에 입구 변이 붙어있다. - 청조 도광 18년(1838)년 4월, 《서전국지략(瑞典国志略)》 발간. 번역명 "서전(瑞典)" 등장. - 청조 광서연간(1888-1905)년 중 《서전국기략(瑞典国记略)》이 편찬된 것으로 추정. - 서계사(徐继畬)의 《영환지략(瀛寰志略)》에는 스웨덴의 다양한 번역명이 등장하지만, 《황조문헌통고(皇朝文献通考)》 등 공식 관방 문서의 전례를 존중하여 "瑞国(서국)"이라는 표현으로 바로잡음. - 서계사는 북방의 산서 지방 사람이지만 광서 순무, 복건 순무, 민절 총독을 지냈다. 모두 위에 말한 瑞자를 s,z 계통 초성으로 읽는 동남 연해 방언권에 포함되는 지역이다. ∴ 이미 청조 건륭연간에 "瑞国(서국)"이라는 번역어가 있었음. 근대 개항 무렵에 번역됐을 거라는 위의 가설은 무효. 그렇다면 여전히 남는 문제는, (1) 瑞国이라는 번역어가 최초 등장하는 문헌이 건륭연간의 저 황조문헌통고가 맞는지. (2) 작자가 어느 지방 사람인지, 혹은 출판지가 어디인지. - 여전히 동남 연해일 거라 추정. (3) 건륭연간이었든 그 전이었든, '서국'이라는 번역어가 최초 탄생했을 당시 북경관화의 瑞자 발음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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