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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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남아시아

인도 웨스트 벵갈 칼림퐁 다섯-여섯째날

bravebird 2024. 5. 19. 14:51

칼림퐁 다섯 여섯째날은 일정 자체는 단순했으나 임팩트가 컸다.

우선 다섯째날은 생각지도 못한 신기한 기회로 특별한 분을 만나뵈었다. 백차와 카모마일 차를 선물로 사서 찾아갔다. 어떻게 뵙게 된 것인지는 자초지종은 쓰지 않겠다. 다만 대화는 기억이 날아가기 전 정리해야 함.

만나뵌 분의 손녀께서 줄 게 없다며 꽃이라도 가져가라고 주심 감동... 방안에 물병에 꽂아놨다
어르신 드릴 거라 카페인 없는 걸로 고름



* 나는 많이 늙었고 내가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다 믿지 말고 본인의 입장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전체 그림을 바로 보고 바르게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 주면 고맙겠어요. 지금 당신은 정말 좋은 나이입니다.
* 당시 국제정세는 정말 복잡했고 우리는 무지했어요. 거의 야만인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 미국 CIA는 우리를 돕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한 희생이 많이 따랐지요.
* 그러나 각국 지도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돕고 싶어 했고 나는 전 생애에 걸쳐 많은 이들의 호의를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내가 운이 참 좋지 않나요? 오늘 당신을 만난 것도 행운입니다.
* 우리의 조상들, 동포들, 중국의 모든 소수 민족들, 심지어 중국인들,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람들에게도, 모든 친구들에게도 미안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국제 정세에 너무 무지했고 내가 부족하여 조국을 지켜내지 못했어요.
(아니에요. 선생님은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의 최선을 다해 주셨고 사람들이 모두 기억할 거예요, 하고 거듭 이야기 드렸다.)
* 한국 정부는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요? 일반 국민들의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감정이 어떤가요?
(현재 중국의 팽창주의가 노골적이며 직전 정부가 친중 노선을 취한 점, 현재 한국인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매우 극심한 점,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사를 잊지는 않고 있지만 여행 왕래가 매우 잦은 등 꽤 우호적이며 실리적으로 접근하는 편인 것 같다고 대답 드렸다. 노재팬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의 반중 분위기에 비할 것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일단 수치적으로만 따졌을 때도 현 시점 한국인들이 여행 또는 취업 대상국으로 일본을 선호하는지, 중국을 선호하는지 비교했을 때 서로 상대 자체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작년 베이징 가던 당시 비행기가 텅텅 비었던 반면 일본여행은 주변에서 수없이 많이 가던 걸 본 경험적인 사실에 기초해서 대답 드렸다. 그리고 나는 노재팬 같은 것에 그냥 아예 아무런 구애를 받은 적이 없음.)
* 하루에 두세 명 정도를 만나고 있어요.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거절을 한다면 상심이 크겠지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을 만난 것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 나를 돕던 직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어요. 지금은 자원한 사람들이 나를 도와 주고 있고 다섯 명 정도가 됩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지요. 혼자 살고 있습니다.
* 공장은 작은아들 이름으로 되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닫았고 지금은 오래된 집을 조금 손보고 있습니다.
* 어머니가 물려주신 약간의 재산으로 다른 형제들과 조카들을 챙기고 남은 걸로 그림과 골동품을 그저 취미로 조금 사뒀었지요. 한 점당 최대 1천 루피 정도였습니다. 그것들이 뜻밖에도 나중에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게 됐어요. 그걸 조금씩 팔아 재정 자립을 이뤘습니다. 공장을 운영하면서 얻는 수익도 있었고요. 각국 정부가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했었지만 난 전부 거절했어요.
* 공장을 닫은 후에는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6년 정도 되었을까요. 그러니 이 식사도 나한테 고마워할 것 없어요.
* 다만 몇 년 전에 유럽의 난민들이 모금을 하여 기부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걸 받기가 부끄러웠어요.
(그리 생각하지 마세요, 남들의 성의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들에게 좋은 일이 됩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 어머님은 매우 좋은 분이었습니다. 칭하이에서 무슬림 반란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셨죠. 어느 날 어떤 부부가 죽은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우리 집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그걸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지요. 어머니는 그들을 받아들여 도왔습니다.
* 장제스 내외는 내 교육을 5-6년간 전적으로 지원해 줬어요. 매우 친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덩샤오핑은 매우 직설적인 사람입니다. 처음 만나러 갔을 때 초면에 민감한 얘기를 바로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개의치 말고 그대로 말해 보라고 하더군요. 내 얘기를 듣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승낙했습니다. 5년쯤 지나서 결국 조금씩 물리긴 했지만요.
* 마오쩌둥이나 저우언라이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여쭈었더니)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쓸모 없는 사람이에요. 말을 아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후 여섯째 날은 아침에 장 보는 데 따라가서 시장 구경했다. 오후에 에필로그 카페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동네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지금 그 친구들과 놀러 나가기 전에 잠시 쓰는 중.




이 친구들이 얘기해준 것들

* 난 벵갈루루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고향 칼림퐁이 너무 그리워. 칼림퐁은 인도 사람들도 잘 몰라. 근데 엄청 흥미로운 곳이야. 일단 여기에 대해서 알고 나면 너처럼 여러 번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 칼림퐁에 티베트 교회가 있어. 이런 게 세상에 어디 또 있겠어?
* 페동에 렙차인들이 지었던 요새 터가 있는데 거기 귀신들린 장소야.
* 닥터 그레이엄 홈스 스쿨도 귀신들린 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거기 귀신들은 그래도 착해. 내가 거기서 영어 선생님인데 대낮에 심령 사진을 직접 찍은 적이 있어. 동상 근처에서 다른 사람 사진을 찍어줬는데 사진 속에 웬 여자애가 옆에 서있길래 무서워서 바로 지웠어.
* 여기도 한류가 장난이 아닌데 한국풍을 따라하는 사람들을 초리안(?)이라고 불러.
* 라자스탄에 인도에서 제일 유명한 흉가가 하나 있는데 일설에 따르면 거기 해지고 간 사람 5명이 한 명도 못 돌아왔대. 그 다음으로 유명한 흉가가 칼림퐁 근처에 있어.
* 여기 근처에서 Charkhole, Yelbong, Santuk 같은 데도 한번 가볼 만해.

그리하여 오늘 한 다섯 명 정도가 차타고 놀러갈 예정. 그 전에 방에서 밀린 글 쓰는 중. 지금 인도 전역에서 선거철인데 그게 슬슬 끝나가면서 숙소에 손님들이 갑자기 크게 늘고 있다. 좋은 일이다. 주인 아저씨가 처음에 방을 워낙 큰 걸로 주셨었기에 오늘은 단체 손님들에게 양보하고 작은 1인용 방으로 옮겼다.




칼림퐁은 7일째고 슬슬 일정 고민이 필요해졌다.

* 일단 레릭 책은 약 2일분이 남음. 귀한 책이므로 칼림퐁 떠나기 전에 끝을 보고 싶음.
* 이 다음으론 시킴 라방라, 강톡 갈 예정. 원래 펠링과 다르질링도 다시 가려고 했으나 스킵 가능성.
* 아는 분이 다르질링에 대한 질문 사항들을 주신 걸 칼림퐁에 있는 동안 가급적 문의해야 함.
* 달라이 라마 설법을 들으려면 6월이 시작할 때 다람살라에 가있어야 함. 이후 6월 15일 무렵 전까지는 쿨루에서 보내야 함. 직후에는 마날리에서 바로 라다크로 들어가는 것이 지리적으로 편리함.
* 다람살라 도착 전 보드가야, 바라나시, 쿠시나가르, 산치, 마투라를 5월 말까지 다 들르는 것은 무리일 것 같음. 우타라칸드(리시케시, 무수리, 케다르나트 등등)역시 언제 가야 할지 생각 필요. 원래 동에서 서로 이동해 가면서 차례대로 다 들르려고 했으나 히마찰에서의 일정이 고정되어 버려서 시간이 충분치 않음. 앞으로 남은 2주 정도 사이에 너무 정신없이 이동을 많이 하고 싶지 않음. 일단 칼림퐁과 시킴에서 여유롭게 있다가 델리로 날아가서 다람살라로 간 다음, 히마찰, 라다크, 잔스카르, 잠무카슈미르, 펀자브를 먼저 다녀오고 델리 복귀해서 생각을 할까? 아니면 다람살라 전에 보드가야, 바라나시만이라도 갈까? 더워서 엄두는 잘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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