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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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남아시아

여행 3개월째 중간 소감

bravebird 2024. 5. 28. 10:47

현재 타왕 여러 날, 시킴 3일, 다르질링 2일 기록이 밀렸지만 초등학생 방학숙제도 아니니까 오늘은 하고 싶은 말을 하겠습니다. 여행을 6개월 정도를 예상했으니 절반 정도 온 것 같네요.



1. 인도아대륙 히말라야 여행은 어떻습니까?
머리 위를 바라보면 경이롭고 발밑을 바라보면 심난합니다.

2. 장기 여행은 할 만합니까?
할 만합니다. 네팔에서 트레킹만 꼬박 1달 하면서 거의 단벌로 연명하며 못 씻는 생활을 하고서 많이 내려놓아진 것이 여행 지속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일시적으로 환경이 나빠질 때마다 스탠다드가 낮아지면서 적응력과 여행 지구력이 증가합니다.

3. 여행의 어떤 점이 제일 좋습니까?
가만 앉아 있으면 절대 못 만나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서론을 거의 생략하고 본론부터 대화 가능한 것이 제일 좋습니다.

4. 여행의 어떤 점이 제일 별로입니까?
항상 뭔가 뽀송하거나 깨끗하지 못한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게 별로입니다. 모든 옷과 물건이 한국에서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빨리 더러워지거나 상해 버리고, 머리를 감아도 끈적하고, 어딘가 항상 축축하고 더러운 채로 참아야 합니다. 옷은 먼지와 시궁창으로부터 피부를 분리해 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발밑. 슬리퍼를 대체 어케 감히 신음?
단 몇 번 입은 옷 소매 상태
모든 모서리가 전부 꼬질꼬질하며 단 며칠만에 이리되므로 세탁과 청결을 적절히 포기하게 되며 옷도 그냥 며칠씩 같은 걸 입음. 어차피 빨아봤자 즉시 원상복구되며 마르지도 않음.
발밑
머리위
걷다가 옷이 이렇게 되었으나 피부 보호를 위해 그날 하루는 입고 나서 버렸음. 누가 보든 말든 생존이 더 중요하므로 별로 신경도 안 써짐. 그리고 물건 다 쓰거나 망가져서 버릴 때 짐 줄어서 오히려 좋아.



5. 어떤 물건이 제일 도움이 됐습니까?
드라이기. 여름이건 겨울이건 인도 여행 필수품입니다.

6. 어떤 물건이 제일 계륵입니까?
디지털 카메라 및 태블릿. 거의 안 쓰지만 또 없으면 핸드폰만으로 괜찮을까 싶습니다.

7. 인도 여행 필수품으로 꼽히는 것 중 제일 이해 안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침낭. 축축하고 무겁고 세탁도 못하는데 대체 왜...
크록스. 실내용으로는 몰라도 바깥에서 신으면 맨발에 시궁창 물 튀어서 발꿈치 갈라진 틈새가 검게 물들 것임 ㅋㅋㅋ 으으 생각도 하기 싫네요. 걍 인도에서 피부란 피부는 다 덮는 게 상책입니다.

8. 여행 중 한국의 어떤 점이 그립나요?
LG 워시타워, 먼지 날리지 않고 구정물이 고이지 않는 깨끗한 포장도로, 호강에 겨운 화장실

9. 한국의 어떤 점이 여행지 대비 별로인가요?
사람들 시야가 꽉 막히고 천편일률적인 것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10. 일 안하니 어떤가요?
우선 감기 기운이 있어도 목만 하루이틀 간질거리다가 나아버립니다. 또 하루하루가 내 뜻대로 내 속도대로입니다. 어느 하루도 낭비된 것 같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노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약간 길들이기 위한 가스라이팅인 것 같고 열중할 것이 필요하다는 쪽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11. 여행 목적이 무엇인가요?
그냥 재미로. 오직 그것뿐. 뭘 이루려고 목적을 갖고 하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책을 쓰려고 여행을 한다, 유튜브나 사진을 찍으려고 여행을 한다, 이런 거는 앞뒤가 뒤바뀐 것 같습니다. 일단 재미가 있고 나면 부수적으로 뒤따를 수도 있고 뒤따르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죠 그런 건. 성장을 위해서, 배움을 위해서, 뭐 이런 것도 너무 거창하고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여행은 그냥 궁금해서 하는 것이고 놀려고 하는 것입니다.

12. 왜 인도를 선택했습니까?
제가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3개 국가 중에서 중국은 자유여행이 너무 번거로운 상태로 전락해 있고, 러시아는 전쟁이 나서 비자 마스터 카드 사용이 제재돼 있으며, 의외로 인도가 여행하기 제일 편리하고 자유롭습니다. 여행 인프라가 은근히 좋습니다. 물가도 착하고 국경 이동 없이 내부에서 볼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니 소득이 끊긴 백수에게 다분히 적합한 곳입니다.

13. 네팔 인도 또 갈 건가요?
네.

14. 네팔이 낫나요 인도가 낫나요?
트레킹이 목적이라면 네팔입니다. 관광만 할 거라면 인도입니다. 왜냐면 네팔은 교통 인프라가 너무 안 좋아요. 예컨대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육로로 거의 12시간이 걸리는데 포카라 도시 자체를 관광하러 간다는 것은 좀 그런 것이, 거기는 안나푸르나 발사대 같은 곳이거든요. 안나푸르나 안 갈 거면 굳이 그 먼 길을?? 룸비니도 비슷하게 걸리는데 그렇게 굳이 가더라도 볼 건 하루만에 끝납니다. 여행으로는 확실히 인도가 낫습니다. 관광 자원이나 인프라가 훨씬 좋습니다. 다만 트레킹은 네팔 대비 정보가 부족하고 롯지 같은 시설이 적은 것 같아요.

15. 현재 의생활은 어떻습니까?
옷이란 자외선과 먼지와 시궁창으로부터의 분리막일 뿐입니다.

16. 현재 주생활은 어떻습니까?
제가 원래 잠자리를 그다지 가리지 않아서 아무 데서나 벌레를 벗삼아 잘 잡니다. 도미토리도 상관은 없으나 기저(geyser) 뜨거운 물이 샤워 중에 무조건 끝나고 그 다음 분량이 데워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즉, 화장실은 여러 명이 사용할 경우 1등으로 샤워하지 않는 이상 냉수 샤워가 거의 확정입니다. 그러므로 좀 비싸도 1인실 중에서 택시스탠드나 시외버스정류장 등 교통 거점으로부터 가까운 가성비 숙소를 선택합니다.

17. 현재 식생활은 어떻습니까?
대부분 현지식만 먹고 있으며 파니르 버터 마살라와 모모를 주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18. 설사 안 하나요?
설사병이나 식중독이 걸린 적은 총 5번의 인도 방문 경험 중 아직 없습니다. 여기서 설사병 나면 며칠씩 설사만 하고 앓아 눕는다던데 그런 건 없었습니다. 일회성으로 반응이 올 때는 있는데 그 한번을 비우고 나면 즉시 평안해집니다.

19. 인도 사람들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화를 안 냅니다. 한국인보다 훨씬 차분하고 느긋합니다. 계획이 어그러지거나 시간이 지연되는 것을 매우 잘 견디고 융통성 있게 대처합니다.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특히 시골 지역에서는 온가족이 사는 집에 손님을 초대하여 대접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울 만큼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가 많고, 환대와 친절함의 스탠다드가 매우 높아서 도저히 갚을 수도 없을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20. 인도 사람들 별로인 점은 무엇인가요?
차를 험하게 운전하며 절대 멈추지를 않고 무조건 자기부터 가려고 해서 도무지 길 건널 틈을 안 줍니다.
줄을 서지 않으며 앞사람이 말하고 있든 말든 일단 끼어들어 자기 말부터 우깁니다. 이 사람들한테 치이지 않으려면 어디서든 자기 주장을 강력하게 해야 합니다.
배낭을 놓을 때 배낭 커버 쪽이 더러운 쪽인 걸 뻔히 보면서도 굳이 등이 닿는 쪽을 바닥에 놓아서 배낭 앞뒤를 전부 더럽혀 버립니다.

21. 인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특이한 점은 무엇인가요?
인도 루피 대비 한국 원화의 conversion rate를 자주 물어보는데 환율 질문이다 보니 16배라고 대답해 줍니다. 그런데 그걸 물가 수준의 차이로 착각해 버립니다. 자기가 conversion rate 또는 exchange rate라는 표현으로 물어봤는데도요. 그게 예외가 없어요. 그런데 이건 인도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고 중국이나 다른 외국에서도 대부분 거의 예외가 없이 동일한 현상이 있습니다. 환율과 물가 수준 차이를 개념적으로 착각합니다. 대체 왜 그런가요....?

22. 여행하면서 귀찮은 것은 무엇인가요?
사진 찍기. 제가 사진 자체를 평소 즐기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잘 노는 중에 *그대로 멈춰라!* 하면서 사진 찍는 모드로 갑분 전환해서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움직이라고 하고 포즈를 부탁하고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찍어도 되냐고 묻고 사진빨을 위해 물건들을 이리저리 치우고 각도 잡고 환경을 통제해야 되는 이런 모든 게 너무 귀찮고 별로임. 근데 아예 아무 것도 안 찍으면 또 까먹어 버리고. 사진은 그래서 퀄리티는 포기하고 어디 갔는지 기억할 용도로 대충 찍습니다.
교통편 확보. 산간 지방은 특히 주로 셰어지프로 다니는 곳이 많아서 약간 주요 루트를 벗어난 곳인 경우 교통편을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가챠일 때가 많습니다. 택시스탠드 현장에 가야만 예매가 가능하며 어떨 땐 예매도 못하고 당일 아침에 일단 짐빼서 갖고가서 부닥쳐야 향후 거취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도 그런 상황. 근데 그래도 시간만 예측이 안 될 뿐이지 어떻게든 무조건 다 갈 방법은 생긴다는 게 놀라움.

(이후 더 추가할 내용이 있을 것 같은데 잠시 멈추겠습니다. 어제 쓰다가 졸려서 걍 잤고 이제는 아침 7시라 택시스탠드 나가서 실리구리 가야 해요. 어제 같은 시간에 폭우가 내려서 여기 갇히는 게 아닌지 염려했던 것과는 반대로 지금 다르질링 날씨는 찬란합니다.)

이 시각 다르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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