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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대해서 정신줄 놓고 있던 사이에 중요한 일이 닥쳐왔다. 홍콩 입법회 선거가 바로 이번 일요일이다. 영국과 중국의 합의 하에 일국양제라는 실험을 50년 시간을 빌려 하고 있는 홍콩. 그 홍콩이 이번 일요일에 앞으로 4년간 일할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날이다. 이 입법회 선거는 2014년의 우산혁명 전후 사태와도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한번 짚어보려고 한다.
홍콩 입법회 건물
홍콩 입법회(Hong Kong Legislative Council)는 한국으로 치면 말 그대로 국회에 해당한다. 홍콩 반환 당시 덩샤오핑 주석과 마가렛 대처 수상은 홍콩의 기존 체제를 가급적 보장하는 일국양제에 합의했다. 당연히 내륙 중국과는 다른 법률이 있어야 할 터. 이런 홍콩의 헌법에 해당하는 최고법이 바로 홍콩 기본법(Hong Kong Basic Law)이다. 홍콩 입법회는 이 기본법을 바탕으로 법률을 제정·개정·폐지한다. 여느 입법기관답게 예산안을 심사·승인하며 조세와 공공지출을 관장하고 행정부를 견제한다.
회담 중인 덩샤오핑과 마가렛 대처
홍콩 입법회 선거는 1인 2표제다. 한 표로는 지역구 대표를, 나머지 한 표로는 직능대표를 뽑는다. 총 70개 의석 중에 35명이 지역구 대표, 나머지 35명이 직능대표다. 지역구 대표는 말 그대로 일반 유권자가 지역구 직접 투표를 통해 뽑는다. 홍콩에는 지역구가 신계 동, 신계 서, 카우룬 동, 카우룬 서, 홍콩 섬 이렇게 총 5개 있고 총 유권자 수는 이번에 약 380만 명 가까이 된다.
홍콩 선거구 지도 (출처 CNN)
직능대표 35명 중 30명은 간접 선거로 뽑는다. 특정 직능분야에서 일하는 개인, 기업, 이익집단 등이 유권자인데 이들을 느슨하게 그룹핑해서 직능선거구를 짜놓았다. 직능선거구 구성은 아래와 같다.
홍콩 직능선거구 상세 (출처 2016년도 홍콩 입법회 선거 공식 홈페이지 http://www.elections.gov.hk/legco2016/eng/index.html)
이 직능선거구 획정 방식은 민주선거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평등선거 원칙을 심히 침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CNN 기사에 의하면, (20)번 금융권 선거구는 총 124명의 유권자가 1명을 당선시키게 짜여 있다. 반면 (13)번 사회복지 선거구에서는 총 13824명의 유권자가 1명을 뽑는다!!! 동일해야 할 한 표의 가치가 무려 100배 가까이 차이 나는 것이다. 게다가 이 간선제 직능대표 의석이 전체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친중파가 많이 당선되다 보니 반발이 상당하다. 실제로 지난 2012년도 선거에서는 지역구에서 민주파를 실컷 뽑아 놓았더니 간선제 직능대표 쪽에서 친중국파가 과대표되어 버리는 바람에 영 재미 덜했다고 한다.
그럼 나머지 5명은? 이 5명도 직능 대표로 분류되기는 하지만(바로 위 도표의 (29)에 해당한다) 일반 유권자의 직접 선거로 뽑는다. 이 부문에는 홍콩 5개 지역구의 구의회(District Council (Second)) 의원들만 출마가 가능하다. 그리고 나머지 30명의 직능 대표를 뽑는 데 관여하지 않은 일반 유권자들, 그러니까 약 380만 - 약 24만 = 약 347만 명이 1인 2표 중 나머지 1표를 여기에다가 행사하는 것이다. 이것도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된다. 왜 직능/이익집단은 24만 명이 30명을 당선시키게 해 놨으면서 일반 시민들은 347만 명이 5명만 뽑는가???
많은 홍콩 시민들은 입법의원 완전 직선제를 원하고 있고 직선 의원의 비율을 점차 늘려 왔지만, 중앙 정부의 방해는 완강하다. 게다가 민주파나 홍콩 본토주의파의 선거 홍보물에 딴죽을 걸거나 신변상의 압박을 가한 의혹마저 드러나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홍콩 내정 통제와 간섭은 홍콩의 체제를 보장하는 한편 홍콩인에 의해 홍콩을 다스리게 하겠다는 기본 약속에 위배된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대해서도 백서를 발행해서 너네들 바라는 대로 직접 선거로 뽑게 해줄게, 근데 우리 입맛에 맞는 3명 중에 하나 골라!! 식으로 나왔던지라 이모저모 빡친 홍콩 시민들이 2014년 9월 28일 우산혁명을 낸 것이다. 그 전에도 언론인 피습이 한두 건이 아니었으며, 2012년에는 공교육 내에서 중국 국민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가 반발이 커서 무산되었다.
작년 코즈웨이베이 서점에서는 주인 람윙키와 몇몇 관련자들이 정치적으로 불온한 금서를 팔았다는 이유로 납치 감금되었다. 올해 초 구정 무렵 몽콕에서는 어묵 노점상을 강제 철거하겠다는 행정부 조치를 홍콩 문화 파괴로 받아들인 시민들이 크게 반발해서 소위 어묵혁명이 일어났다. 평소에 친중 성향을 띄어 홍콩 시민들의 반발을 샀던 렁춘잉 행정장관은, 몇 개월 전에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에게 자기 딸 수하물 관련 심부름을 시키는 공권력 남용을 저질렀다가 엄청나게 빈축을 사고 사퇴 요구가 거세다. 홍콩으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내륙 중국인 산모, 쇼핑객, 불법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건 요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지금 홍콩은 정치적으로 들끓고 있다.
홍콩을 검색해 보면 동서양이 만나는 글로벌 다문화 도시, 금융·무역 허브, 식도락 천국, 명품 쇼핑 후기, 취업 수기 같은 것은 엄청나게 많이 나오지만 홍콩 그 자체의 정치나 사회에 관련된 글은 거의 없다. 심지어 한국어로는 신문 기사조차 희박하다. 나는 이렇게 정치 사회적으로 흥미롭기 그지없는, 유례가 없다시피 한 독특한 도시가 응분의 주목을 못 받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서 틈 나는 대로 조사하고 힘 닿는 대로 소개해 봐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링크해놓은 CNN 기사(Hong Kong votes: Is this the world's weirdest election?)에 이번 선거 관련 인포그래픽이 아주 잘 정리돼 있어서 이해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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