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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남아시아

인도 아루나찰 프라데시! 봄딜라!

bravebird 2024. 5. 2. 08:38

5월 1일 드디어 아루나찰 프라데시에 들어왔다.

나 여기 오래 있으려고 할 것 같아.

불시착한 테즈푸르에서 타왕 직통 표가 매진되어서 생각지도 않은 봄딜라에 오게 됐는데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어? 여기 오려고 요 며칠간 귀찮은 일들을 겪은 거구나 ㅋㅋㅋㅋ

아침 0530에 픽업하러 온다던 지프는 역시나 0630이 넘어서 왔다. 한 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어제 호텔 체크인할 때 프론트에서 조식을 패킹해 주겠다고 했다. 호텔에서 그걸 까먹은 듯 했다. 직원이 먼저 제안한 거였는데. 체크아웃하려고 내려와 보니 아침 시프트 직원은 잠들어 있길래 그냥 내버려 뒀다 ㅋㅋㅋ 근데 이 사람이 퍼뜩 자다 깨길래 체크아웃하면서 살짝 얘기하니 조식을 준비해줬다. 또 이 직원이 드라이버한테 전화도 해주고 외국인 체류 가능한 봄딜라 내 호텔도 하나 찾아줬다. 덕분에 든든하게 하루 시작.

아루나찰 프라데시로 오는 길은 너무 선녀였다. 거의 전 구간 포장도로였다. 네팔에서 비포장도로 12시간 버스 라이드 같은 걸 하면서 2개월간 워낙 단련되었다. 아침 6시 반 출발해서 두 번의 체크포인트를 지나서 딱 5시간쯤 걸려 봄딜라에 도착했다. 이만하면 거의 풀데이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일정이다.


너무 귀여운 강아지들 (밤에 늑대로 진화)



봄딜라까지 운전한 기사 아저씨가 내일 타왕 가는 표 구하는 것도 적극 도와주셨다. 셰어 지프 카운터(Sumo Counter)에 가니 내일 타왕 표는 매진이었다. 근데 어떻게 저떻게 기사 아저씨들이 총력을 동원해서 자리 하나를 만들어 줬다. 내일 아침 8시에 600루피에 뒷자리를 타고 가기로 했다.

솔직히 내일 안 가도 구애될 것은 없다고 내심 생각은 했다. 다만 한번 정한 마음은 바꾸기 귀찮아 하는 고집과 급한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지라, 타왕 표 없다고 테즈푸르에 한번 연락해 보라는(??? 왜 떠나온 테즈푸르에 연락을????)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표정이 좀 구겨졌었지 싶다. 난 만사 좀 느리게 반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결국 10분 정도 지나니까 일이 다 해결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게다가 기사 아저씨들은 숙소 구하는 것까지 도와줬다. 바로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걸더니 데려가서 방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내일 차타러 나오기도 좋은 위치라 너무 편하고 방도 깨끗하다.

숙소를 구하고 짐을 놔두고는 나가족 전통 음식을 파는 근처 식당에서 푸짐하게 나가족 탈리를 먹었다. 이 가게 분들은 참 좋은 음식으로 넉넉하게 맞아주었다. 반찬 중 삶은 야채도 풍부해서 오랜만에 청정한 건강식으로 몸을 정화했다. 배부르게 다 먹고 봄딜라 사원으로 이동했다.


나가 탈리

봄딜라 사원



동네 야트막한 곳에 있는 봄딜라 사원에 올라가 보니 게스트하우스가 딸려 있었다. 스탠다드 룸은 1200루피, 스위트 룸은 2200루피로 가격도 아주 좋고 방도 깨끗했다. 이곳에 머무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로 옆 건물은 어린 스님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사원 구역으로 가니 마침 스님들이 여럿 모여앉아 짝을 지어 토론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큰 말소리와 몸동작으로 변론을 하고 있길래 신기해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소리를 ASMR 삼아 법구경을 읽었다. 햇살은 화창하고 산들바람이 불며 마음은 평온하고 한가로웠다. 인도는 이렇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계획이 망해서 온 뜬금없는 곳에 가장 좋은 선물이 준비돼 있는 그런 곳이다.


디베이트 중인 스님들
자습 중인 스님들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아저씨한테 저 내용이 힌디어인지 어떤지 한번 여쭤봤다. 힌디어가 아니라고 했다. 아저씨는 뉴델리 사람인데 은행 ATM을 관리하는 업체에서 동북 인도를 맡은 관계로 출장 와서 일하고 있었다. 불교 사원엔 처음 와봤다고 했다. 토론 시간이 끝나자 아저씨와 아까 카페테리아에서 잠깐 얘기를 나눴다는 스님 한 분도 와서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같이 하게 되었다. 스님이 학생들 공부하는 교실도 보여 주어서 한참 구경하고 얘기 나누다가 밀크티 한잔 하러 셋이 같이 갔다.

두 사람은 내가 어떻게 혼자서 2개월 넘게 여행이 가능한지 신기하다고 했다. 돈이 많냐고. 그리고 그걸 떠나서 혼자 어떻게 여행이 가능하냐고 용감하다고. 한국 사람들은 원래 해외 여행 많이 하기로 엄청 유명하고, 나는 10년 넘게 일을 했는데 회사 잘리고 그간 모은 돈으로 잠깐 여행하는 거라고 대답했다. 이건 아마 다시 없는 일일 수도 있다고. 근데 더더구나 소득이 없으면 2개월씩을 여행하는 건 인도에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하긴 인도는 아직 여행이 그렇게 주류 레저는 아닌 것 같다.

두 분과 얘기를 재밌게 하다가 인도 아저씨와 함께 지름길로 걸어 내려왔다. 딱 끼니때였어서 저녁 같이 먹을래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웬만하면 응해서 얘기를 나눠보려고 하지만 유부남과는 무조건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하므로 만에 하나 혹시 몰라 정중히 고사하였다. 숙소에서 밥 준비해주기로 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들어왔다. 이렇게 해야 100% 친절하고 반갑기만 한 사람 중 하나로 기억에 남길 수 있음 ㅋㅋㅋㅋㅋ 숙소에 와보니 아까 낮엔 안 계셨던 주인 내외가 돌아와 있었고 무척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심지어 큰딸이 타왕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고 해서 타왕 숙소도 해결해 버렸다.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밖에 저녁을 먹으러 나갔더니 이 집 둘째딸 추키가 와서 같이 앉아 있어 주었다. 마하라슈트라 나그푸르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영국으로 잠깐 나가서 일하려고 준비하는 중 고향에 돌아왔는데 동네에 하나뿐인 정부 병원에 마침 빈자리가 생겨서 당분간 일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열한 시 넘어서까지 이 친구와 얘길 했는데 거의 중점추진사업에 따로 적어야 할 정도의 재밌는 것들도 있지만 시간이 늦어 졸리니 요점만 적어 놓아야지.

* 아루나찰 프라데시 내에서 가볼 만한 곳들
* 마하라슈트라 나그푸르, 암베드카르, general caste/reserved caste, scheduled tribe(ST)/scheduled caste(SC)
* 아디바시 (주로 아쌈, 자하르칸드 지역에 거주)
* 파묘 얘기하다가 Kuten La, Necchung 등등 oracle performer 관련 얘기해줌
* 한류 및 한국음식 인기, 아루나찰에서도 한국 라면, 떡볶이 세트, 소주 같은 걸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이며 사람들이 간단한 한국어를 곧잘 함
* Donyi Polo는 해와 달을 숭배하는 아루나찰 동부 애니미즘 신앙의 명칭, 반면 봄딜라, 디랑, 타왕 등 아루나찰 서부는 몬파의 땅이라는 의미로 '몬율'이라고 불리며 티베트 불교(그 중 현 달라이 라마가 수장으로 있는 겔룩파) 세력권
* Shyospa는 타왕 북쪽에 있는 Shyo village에서 쓰이는 몬파족 방언으로 티베트어와 거의 유사함, 이 가족은 이 지역의 토착 민족이자 티베트인의 한 갈래로 여겨지는 몬파족이며 외가 쪽이 Shyo 지방 출신이라 이 방언을 구사하며 가족 간에 얘기할 때 주로 이 방언과 힌디어를 섞어 사용함
* 이틀 전 친척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며 보통 승려가 정해주는 길일에 화장을 치르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다고 함, 보통 승려가 점을 쳐본 다음에 화장을 하거나 또는 조장을 할 때처럼 몸을 분해해서 수장을 한다고 하고 조장은 하지 않는다고 함

저녁을 밖에서 먹고 왔는데 밤 10시쯤 이 집 식구들이 식사하는 시간에 또 대접을 받고 맛있게 먹었다. 이 식구들은 손님을 다 치르고 나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거의 해수면 높이에서 해발고도가 2800m가 넘는 곳으로 하루만에 온 거라 기압차로 배가 빵빵한데도 맛이 좋아 다 먹었다. 배에 가스가 이렇게 차는 게 기압차 때문이구나. 과자 봉지나 로션 같은 게 고지대에서 부푸는 건 많이 봐왔는데 배에 가스가 차는 것도 같은 이유인지 몰랐다. 네팔에서 트레킹 중 롯지에서 밤중에 (나 포함) 다들 그렇게 붕붕 하던 소리가 난 게 이거 때문이구나. 이것도 추키가 알려줬다. ㅋㅋㅋ

여긴 낮은 따뜻하고 밤은 꽤 쌀쌀해서 네팔에서 트레킹할 때 입던 히트텍과 따뜻한 티셔츠와 수면 양말을 꺼내서 입고 잔다.

사진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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