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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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남아시아

델리 및 구르가온에서 만난 사람들

bravebird 2024. 6. 10. 03:08

6월 1일에 다람살라에 와서 아직도 이곳에 있고 아마 6월 전체를 히마찰 프라데시에 있을 것 같다. 히마찰 오기 전에 실리구리에서 뉴델리로 비행기 타고 와서 구르가온에 이틀 머물렀는데 그때도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글이 너무 밀렸고 그동안 너무 특별히 재밌었기 때문에 뭘 어떻게 어디서부터 다 써야 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오늘 틈이 생겨 델리와 구르가온의 일을 마저 조금 남겨 본다.
 
델리에서는 마침 오광이가 귀국 직전이라 일정이 잘 맞았다. 오광이는 아루나찰 프라데시 퍼밋을 같이 받아 타왕을 함께 여행한 한국인 여행자 친구인데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같이 겪은 사이라고 할 수 있다. 타왕 이야기는 무조건 따로 쓴다. 타왕에서 우연히 만나 우리랑 같이 놀았던 체텐도 마침 델리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 셋은 다같이 사프다르정에서 만나서 먹고 마셨다. 체텐의 친구인 아유시만도 왔다. 이때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도마에 갔었는데 여기서 인도에서 사업하시는 유튜버 늘보 님도 마주쳐서 인사를 드렸다 ㅋㅋㅋㅋㅋ 벵갈루루에 계신다는데 마침 델리에 출장을 오신 것이다. 날 꼭 기억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ㅋㅋㅋㅋ
 
체텐은 타왕에서 우리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준 친구인데 나와 비슷한 시기에 다람살라에 갈 계획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다람살라에서도 정말 만났다. 그러니까 타왕, 델리, 다람살라에서 세 번이나 만났고 이 얘기는 아마 다음 글에 쓰게 될 것이다. 알고 보니 체텐은 내 다람살라 친구들이랑 정말 신기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날 저녁엔 구르가온으로 돌아가서 디라즈를 만났다. 디라즈는 아래 글의 주인공으로 작년 마하라슈트라 여행 중 로나발라의 호스텔에서 만났다. 당시 디라즈는 뭄바이에 출장을 왔다가 로나발라에 잠시 쉬러 왔었다. 나랑 소니아라는 뭄바이 친구를 렌트카에 태워서 뭄바이까지 데려다줬다.
 
https://bravebird.tistory.com/792 

It is not very important after all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되면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니기에 특별한 날을 계기로 간만에 인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작년 초 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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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월에 여행을 시작할 때 디라즈한테도 알렸다. "부탄 찍고 네팔 찍고 인도 갈 거니까 델리에서 만나자!" 디라즈는 델리 근처인 구르가온에 산다. 그 후에는 따로 연락하지 않다가 정작 델리에 갈 때가 되어서는 일정 조율할 것이 많아서 디라즈를 잠깐 잊어버렸다. 너무 신기한 것은,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 새벽에 잠을 자다 깼는데 딱 디라즈 연락이 온 것이다. 혹시 초능력자?
 
오광이와 체텐을 만난 날 5시 무렵 택시를 잡아타고 디라즈 사는 동네로 출발했다. 디라즈는 퇴근해서 집에 있다가 맞아주었다. 이날 얘는 점심을 저녁 6시에 먹었고 나도 하루종일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았기에 결국 따로 먹으러 나가지 않고 집에 쭉 있었다. 덕분에 마침 퇴근한 룸메이트들도 만났다. 디라즈는 여자 룸메이트 한 명과 남자 룸메이트 두세 명과 함께 산다. 디라즈의 셰어 아파트는 매우 널찍했고 부엌도 커다랬으며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방은 매우 깔끔했다. 디라즈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모아가는데 바드바가 기타도 있었다. 이번 여행 중에 한번 읽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여태껏 디라즈 나이도 몰랐고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여행에서 만난 친구가 좋은 점이 이런 것이다. 나이도 상관없고 직업도 상관없고 그냥 자연인 대 자연인으로 만나서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디라즈는 올해 29살로 나보다 좀 어렸다. 펀자브에서 태어나서 자이푸르에서 학교를 마쳤다. 즉 펀자브어, 힌디어, 영어를 한다. 자기 일이 재밌다는 게 희귀해서 기억에 남았었는데 알고 보니 창업자였다. 컴퓨터를 전공한 다음 MBA를 하고 한 회사에 들어갔다가 스타트업을 거쳐 자기 상사랑 같이 창업했다. 디라즈의 사업은 내가 꽤 관심을 갖고 있는 일과 직접 관련이 있다.
 
나는 디라즈 어머니의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디라즈는 내가 귀신을 경험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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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1년에 한 번 정도씩 가끔 오컬트 관련을 찾아보는 버릇이 있다. 심심풀이로 딱 좋음. 주로 고양이과 맹수 목격담이고 (이건 오컬트는 아니지) 가끔은 귀신이나 괴생명체 목격담인데, 이젠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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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즈는 이날 큰 질문들을 던졌는데 나는 이런 얘기하는 걸 재밌어 하므로 글로 남긴다. 
 


 
1.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줘.
 
난 올해 34살이고 대구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어. 중학교 때 온 가족이 서울로 다 같이 이사를 왔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도 서울에서 했어. 도시 사람이지. 중간에 딱 1년 반 정도 시골에 산 적은 있어. 2018년에 부모님 댁에서 독립해서 서울에 혼자 살고 있어.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했어. 언어에 관심이 많았거든. 회사 생활은 올해 1월까지 총 10년 넘게 했고 레이오프를 당했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몇 개월씩 여행을 할 수 있는 거야. 지금껏 총 두 군데 회사에 다녔지. 어떤 일이나 직무를 희망했다기보다는 회사에 지원을 했었고 그래서 회사에서 배정해 주는 일을 했어.
 
그간 오직 돈 벌려는 생각으로 일하느라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에 대해선 멀리 생각하지 못했어. 이제는 남의 회사에서 일하는 건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강력해. 그 다음 할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틈틈이 떠올리지만 일단은 노는 데만 집중할 거야.
 
난 혼자 살아도 좋고 가정을 이뤄도 좋아. 어떤 길을 선택해도 잘 살 거야. 다만 스스로 경제적인 수단을 전혀 갖지 못해서 결혼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어. 결혼은 재밌는 보너스 라운드인 편이 더 좋잖아. 그래서 그동안 돈 버는 데 급급하느라 일의 내용 자체에는 너무 불만족했던 것 같아. 그런 상황에서 레이오프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이번 기회로 @#$%^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고 있어. 
 
 
2. 자신만의 인생을 언제 시작했어? 
 
대학 때부터였던 것 같아. 대학생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었거든. 학비도 내가 다 냈어. 그러니까 듣고 싶은 과목 골라서 들을 수 있었어. 전공도 남들 좋다는 걸로 골랐다가 내가 좋아하는 걸로 바꿔 보기도 했어. 
 
돈을 스스로 벌어 직접 선택한다는 게 나한테는 엄청 중요해. 그걸 일찍이 18살 때부터 실천에 옮긴 점에 대해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난 학창 시절에 모범생이었어. 모범생이라는 건 주어진 과제를 잘해 낸다는 뜻이잖아. 그러니까 학창 시절엔 내 원하는 대로 자발적으로(spontaneously) 할 수 있는 폭이 아무래도 좁았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는 대학교 때 내 인생을 시작했다고 봐야겠네.
 
그래도 학창 시절에 주어진 과제를 붙잡고 좌충우돌하며 노력한 그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한 경험이 됐어. 그러니까 사실은 태어난 날부터 내 인생을 살았어.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이야.   
 
 
3. 인도에 여러 차례 왔잖아, 여기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도움이 많이 필요한 곳이지만 살 수 있을 것 같아. 안될 거 없어. 
 


 
 
인도에 살 수 있겠냐는 질문은 마침 나 역시 매일매일 자문하는 것이다.
 
칼림퐁이나 다람살라 같은 인도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며 사람들과 사귀며 생활에 적응해 가는 것은 무척 즐겁다. 자연히 일상 생활을 상상해 보게 된다. 게다가 여기서 살면 월세도 생활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매우 빠른 은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매우 중시하는 주거의 질은 악화된다. 위생 스탠다드에도 아직 적응을 다 하지 못했다 ㅋㅋㅋㅋㅋ 다른 건 몰라도 시장의 정육점이나 생선가게 같은 곳을 갔다가는 놀라 자빠진다. 내가 식당에 가서 대충 무난하게 밥을 먹고 아직 다행히 탈도 안 났지만 아마 부엌의 조리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면 식사가 참 곤란해질 것이다 ㅋㅋㅋㅋㅋ 이외에도 서비스나 행정 부문에서 일처리가 너무 이상할 때 번거로움이 참 크다.
 
생활을 더욱 검소하게 하고(living below one's means) 빠르게 은퇴해서 간단히 소일거리 수준의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일 또는 공부 등을 즐겁게 하느냐?
아니면 생활 수준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향상시키기 위해 꾹 참고 일을 하느냐?
만약 장사나 사업을 할 거면 개발도상국에서 하고 싶다고 언제나 생각해 왔는데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을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뭔가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바뀐다 ㅋㅋㅋㅋ 하지만 확실한 것은 조금 열악한 곳에 적응해서 살 수 있을 때 자유가 앞당겨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하며 조금 불편할 때 다 빠른 해방을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집이 그리워도 참고 여행을 계속하고, 조금 불편한 숙소가 걸려도 일단 불편한 대로 없는 대로 지내 보는 이유이다.
 
다음에 2번 질문을 디라즈에게도 하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 디라즈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다. 디라즈는 아주 어린 나이에 창업을 한 경험이 있기에 본인만의 인생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다고 느끼는가 한번 물어보고 싶다. 디라즈는 7월 22일부터 태국 여행을 간다고 했고 나도 7월 말에는 인도를 한번 빠져나가야 하므로 그 전에 좀 여유 있게 수도권으로 돌아가서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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