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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서역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은 마치 줄줄이 알사탕 같은 것이었다. 굳이 작정하고 찾아다닌 것이 아닌데도 가는 곳마다 실크로드가 딸려왔던 지난 6년이었다. 나는 2011년 9월부터 2012년 7월까지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 호기심에 들은 위구르어 입문 수업이 계기가 되어 베이징에서 48시간 입석 기차를 타고 우루무치로 떠나게 되었다. 그 겨울은 통째로 우루무치, 투루판, 하미, 란저우, 자위관, 둔황, 인촨, 간난 티베트자치주, 시안 같은 실크로드 지역에서 보냈다. 그곳에는 눈앞에 아무 것도 막아서는 게 없는 광막한 사막이 있었다. 건조한 기후에 다리살은 갈라지고, 주먹만한 양꼬치를 먹다 보면 고기가 쐐기처럼 앞니에 끼곤 했다. 하루 종일 꼬박 사막길을 걸으면 다음날 골반 전체가 얼얼..
맹자가 말했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리오? 그러나 화살 만드는 사람은 행여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행여 사람을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한다. 무당이나 장의사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술을 선택할 적에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 맹자가 말했다. "백이는 섬길 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벗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벗하지 않았으며,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지 않았고, 악한 사람과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고 악한 사람과 말하는 것을 마치 조복[관복]과 조관[관모]을 갖춘 채 도탄에 빠져 있는 것처럼 여겼다. 악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미루어보건대, 비루한 사람과 있을 때 그 사람의 갓이 바르지 않으면 ..
바야돌리드 논쟁 (Valladolid Debate)은 매우 흥미로운 논쟁으로 유럽사 최초의 인권 재판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도 인간인지, 유럽인이 인디오의 삶에 개입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쟁론이다. 1550-1551 사이의 대항해시대에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건이다. 바야돌리드 논쟁은 후안 세뿔베다(Juan Ginés de Sepúlveda)와 바르톨로메 라스 까사스(Bartolomé de las Casas) 사이의 경합이었다. 세뿔베다는 인디오를 야만인으로 보았다. 그래서 서구인들이 무력 개입을 해서 카톨릭을 전파하고 미개한 관습을 끝장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라스 까사스는 인디오도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폭력과 악행이 아닌 설득과 가르침으로 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스파냐..
이코노미스트 러시아 관련 기사는 정말 읽을 게 못 된다. (A hollow superpower 참조) 나는 러시아 문화를 사랑한다. 러시아 빠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이 없다. 동시에 푸틴의 독재를 우려한다. 그렇지만 국제뉴스를 읽을 때는 러시아 문화에 대한 호감이나 평소의 도덕적 신념을 뒷전으로 밀어두고 정치역학의 작용 그 자체를 관찰하려 한다. 물리학에서 힘의 작용을 연구하듯이. 그렇게 기름기를 제거하고 본 현실정치란 헤게모니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각종 기술이다. 푸틴은 이 정치에 능하다. 그것도 상당히. 러시아는 작년 9월 30일부터 이란과 모의해서 시리아 공습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0월 말, IS 테러로 러시아 여객기가 폭격당했다. 덕분에 IS 격퇴를 명분으로 걸 수 있었다. 서방사회와 발맞춰 ..
내용이 꽤 쏠쏠하여 저장해 둔다.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지만 글자가 조금 작은 편이다.
예브게니야 선생님 드리려고 산 도블라토프의 Наши. 물론 liontamer님의 매력적인 독서록 덕분에 읽었던 재미난 책. 감사 멘트는 노어가 부족해서 매우 무뚝뚝하지만 선생님은 행간을 읽으셨을 것이야 ㅋㅋㅋ 아, 다샤(Даша)는 베이징 시절 러시아 친구였던 알렉세이네 가족들이 지어준 노어 이름이다. 모스크바 마야코프스키 박물관 바로 옆의 biblioglobus에서 득템한 스파르타쿠스 전곡반. 볼쇼이 오케스트라 1974년 녹음 버전. 내 귀에 익숙한 속도보다 느리게 연주가 되어 즐겨듣지는 않았지만, 전곡반 자체가 워낙 드문 레퍼토리라 건질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 이것 말고 프로코피예프 Ivan the Terrible도 샀지만 아직 못 들어봤다... 한 2011년까지만 해도 cd를 언제나 들었는데 이젠..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에 대한 연구서. 지배받는 지배자란, 문화영역을 지배하지만 그 권위의 원천을 미국 학위에서 찾는 한국인 미국 유학파 지식인들의 이중적 지위를 뜻한다. 읽으면서 대학시절 선생님들과 내 가지 않은 길을 찬찬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모두가 한복을 버리고 청바지나 양복을 입고, 공자 맹자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익숙한 현대 한국인에게 도대체 한국적이란 건 뭘까 하는 호기심이 주전공 선택의 작은 계기가 됐다. 탈식민주의 관련 영문과 수업을 한번 들었는데 흥미롭길래 영문학 복수전공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난 고등학교 때 홍콩영화 팬이었다. 반환 이전의 영화를 보면 저당잡힌 미래에 대한 페이소스, 이민 나가는 엑소더스 행렬, 세기말의 허무주의 같은 것들..
** 이 글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배포, 인용, 내용 변경 전에 글 하단의 CCL 아이콘과 안내문(http://bravebird.tistory.com/359)을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불펌 발각 시 엄중대처합니다. ** 홍콩에는 센트럴이 있는 홍콩섬과 침사추이가 위치한 카우룬 반도 이외에도 그 배후지인 신계(新界, New Territories) 지역이 있다. 홍콩섬은 아편전쟁 이후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에 할양된 직할식민지였다. 카우룬 반도 역시 제2차 아편전쟁(애로호 전쟁) 후 1860년의 베이징조약을 통해 추가 할양된 직접통치령이다. 신계는 이와 달리, 1898년 제2차 베이징조약을 통해 홍콩과 중국 사이의 완충지로서 영국에 99년간 조차된 땅이다. 이에 영국 식민정부는 이곳 원거들민의 반감을..
사태가 너무도 복잡하고 흥미로워지고 있어서 오늘 날 잡고 정리해봄. 역사가 아주 오래됐고 팩터도 참여자도 너무 많아서 한번 실타래 놓치면 못 따라갈 것 같다. 더 이상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 시리아 내전의 역사와 현황은? 미국은 중동 지역의 석유자원 확보와 지정학적 헤게모니 확대를 꾀했다. 9·11 테러 이후 대테러전쟁을 명분으로 삼을 수 있게 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펼쳤고, 2010년 이래로 이 지역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였다. 이라크에서 권력을 빼앗긴 수니파들은 이슬람국가(IS)를 건설하여 미국이 나간 자리의 권력공백을 메웠다. 이로 인해 종파간 갈등이 강한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정치지형이 구성되기 시작했다. IS의 근거지가 된 시리아는 전체 주민의 70%가 수..
消耗 * 한국어: 소모 * 만다린: xiao1hao4 * 중국 기타지역 제방언: 耗자가 모두 h 계통 초성을 가짐 * 일본어: 옳은 발음은 しょうこう(shoukou), 관용음은 しょうもう(shoumou) * 베트남어: sự hao 耗자 보면 다 [h] 소리고 혹은 그 비슷한 [k] 소린데 한국에서만 언제부터 '모'가 되었나? 다른 발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모' 뿐인데. 알 수가 없다! 각국 한자음을 비교해보니 한국만 다른 것이, 조상님 중 누군가가 毛에 현혹돼서 잘못 읽은 게 굳어졌을 것 같다. 이건 인터넷을 찾아봐도 관심 갖는 사람이 없음 ㅎㄷㄷ.. 일본 웹에는 消耗 독음이 대체 shoukou냐 shoumou냐 알아보려는 글은 좀 있다. 하지만 한중일 한자음을 비교하는 내용은 없다. 참고로 消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