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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예전에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와 관해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한다. 왜냐면 그게 대체 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냥 자기가 느끼기에 좋고 옳고 특히나 쿨해 보이면 붙이는 수식어 같다. 왜 진정한지, 뭐가 진정하다는 건지 설득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그 대상에 너무 크고 자의적인 의미를 부여해버린다. '진정성 있는 소설'이라는 비평은 직업적으로 너무나 게을러 보인다. 또 신기한 것은, 진정함이란 건 절대적일 텐데도 덜 진정하고 더 진정하다는 식의 우열 비교가 가능하다. 브로콜리 너마저나 장기하는 원래 자기들만 아는 진정한 인디 뮤지션이었는데 오버로 올라와 돈을 벌고 유명해지니까 실망했다면서 팬질을 그만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덜 알려지고 헝그리하고 그래서 더 진정성 있는 것만..
티베트 통사에는 여인국 이야기가 두 번쯤 등장한다. 이런 희귀하고 신비한 것에는 혹할 수밖에 없다. 서구 오리엔탈리스트와 별다를 것 없는 시각이지만 나는 이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테마에 별수없이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티베트 여인국 첫 번째는 좀 앞부분에 일찍 나오는 숨파(수피), 두 번째는 동녀국이다. 숨파는 티베트 극서부 아리 지역, 그러니까 무려 신장 호탄 근처에 있었다. 송첸감포 시기쯤을 읽다 보면 나오는데 아마 송첸감포 아버지 때쯤 토번에 흡수가 됐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현재의 강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숨파는 옛 중국 역사서에는 등장하는데 아마 고고 발굴이 안 된 걸로 기억한다. 창탕고원이 바로 여긴데 엄청난 고지대에 거친 황야인데다 토번에 일찌감치 동화가 돼놓으니.. 글에서 다룰 동녀국은..
이것도 친구들이랑 같이 읽었다. 이번 모임은 내 집으로 초대를 했다. 빚으로 빌린집임 ㅋㅋㅋㅋㅋㅋ 가계부채의 급증이 경제위기의 징후라는 얘기는 흔히 들어보았다. 그게 어째서 그런지 총수요 중심의 입장에서 명쾌하게 설명하고 현 대출제도에 대한 개선점을 제안하는 책이다. 서민들은 자산 대부분이 주택에 묶여 있고 자산의 대부분을 빚을 내어 형성했다. 빚 많은 서민 가계는 한계소비성향도 높다. 빚이 있을수록, 집값이 떨어질수록 소비를 드라마틱하게 줄여버린다. 밤은 깊어가는데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듯이 집값이 폭락해도 채무 액수는 고정돼 있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서 빚 갚으려는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빚 내서 독립해 나오면서 허리띠를 졸랐다. (근데 슬픈 것은 그다지 졸라지지가 않는다 대체 여기서 뭘 더 줄임?..
살다보니 물리 단행본을 다 읽네. 친구들이랑 이번에 같이 읽었는데 철학학회다운 책 선정이었다. 과학서로 분류되지만 철학서에 가까웠다. 물리는 꽤 좋아하는 과목이긴 했었다. 물화생지 중에 물리가 제일 나았고, 고3때도 대학에서도 물리를 수강했다(만 거의 까먹었다). 물리가 그나마 괜찮았던 이유는 비교적 적은 개념과 공식으로 많은 현상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학생 입장에서 말하자면 뻑뻑 외울 것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생물이랑 지구과학은 암기 위주여서 그다지 흥미를 못 붙였고, 화학은 재밌었지만 화학반응 식을 외워야 되는 게 번거로웠다. 반면 물리는 지금까지도 비교적 여러 개념이라든지 공식이 기억난다. (그 수준은 일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순명쾌한 원리. 예전엔 물리가 그런 것을 다루는 것 같아서 꽤 ..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마음이 어지럽다. 아무리 애써도 처음 몇 장 이후로 넘어가질 않아서 무수히 실패했었다. 억지로라도 읽으려고 수업을 듣기까지 했다. 두 번을 읽어도 도통 페이퍼가 안 써지더라. 열심히 했는데도 그 학기에 그 수업만 안 좋은 학점을 받았다. 아 난 문학을 전공했으면 안 되었다;; ㅋㅋㅋ 문학 페이퍼 쓰는 거는 처음이 신선했지 그 후부터는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런 건 가끔의 취미로 남기고 딱딱 떨어지는 테크니컬한 걸 전공했어야 하는데 ㅋㅋㅋ 그런 거야말로 대학 졸업하고 나면 못 하는 거잖아 ㅋㅋㅋ 내세에는 수학과 물리에 매진하여 이과를 가는 걸로..ㅋㅋㅋㅋㅋㅋㅋ어쨌든 이번에 어떤 기회가 있어서 오랜만에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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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의 탄생 - 자본주의적 연애제도. 이것은 심히 의표를 찌르는 제목이다. 미국의 근현대 데이트 변천사를 써내린 '역사책'이다. 출간 무렵부터 도서관에 들어오길 기다렸는데 오래 잊고 있다가 드디어 발견해서 바로 빌려 읽었다. 데이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행위 같으면서도 코드이자 제도이고 패러다임이다. 이 책에서 미국의 경우를 보면 1910년 이전에는 구애자 남성이 여자 집을 방문하는 만남이 정석이었다. 손님을 맞는 쪽인 여자가 초대를 통해서 관계를 주도했고, 초대받지 않고 찾아온 구애자 남성의 미래는 암울했다. 초대와 방문을 둘러싼 수많은 의례(적당한 시간 간격, 다과 준비 여부, 보호인 동반 여부, 대화 주제, 적절한 방문 시간, 복장, 제스처 등)가 있었고 이걸 우아하고 능숙하게 준수해야 짝..
12월 시작한 독서모임친구모임 첫 책. 정치 전공한 친구가 제안했지만 군주론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1년에 한 번 꼭 읽는다. 마키아벨리는 천재다. 로마 카톨릭이 주름잡고 있던 시기에 별 보잘것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인간의 악함을 이야기하고 군주의 술수를 권하는 책을 군주한테 바친 과감함을 존경한다. 인간은 선하고 성스럽기도 하지만 영악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다. 모두가 경건한 척 하기 바빴던 시대에 인간의 영악함을 현실정치 운영에 참고시키는 이 대담함! 이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태도 자체도 높이 사지만, 수세기가 지난 후에도 내용이 전혀 퇴색되지 않아서 더 놀랍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
보너스가 들어왔다. 애초에 기본급이 형편없는데 올해는 인상분도 없다. 난 그런 연봉계약서 싸인한 적 없음. 보너스도 삭감돼서 연봉 총액이 떨어졌다. 아니 일을 5년 했는데 연봉이 처음보다 내리다니? 심지어 신입사원보다 우리 연차가 적게 받는다니? 돌았나 이게? 제정신인가? 분기탱천해서 오늘 태업하려고 마음먹었다. 딴소리나 해야겠다. 난 우리 동네 구둣방 아저씨 팬이다. 신발을 맡기면 척 보고 딱 알고는 죽죽 뜯어서 척척 자르고 탕탕 친 다음 꽁꽁 꿰매버린다. 손놀림에 빨려든다. 신이 난다. 손기술만 뛰어난 게 아니라 평소 어떻게 걷는지 순간 파악하고 신발모양 보완까지 해주신다. 눈썰미와 판단력이 있는 것이다. 새 부츠 밑바닥이 얇아 발병이 나서 찾아갔더니 '남자친구 품에 처음 안기듯이 폭신하게 만들어줄껴..
독서모임을 빙자한 친구모임을 월 1회 하고 있다. 10년 된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오늘은 두 번째 모임이었고 내 제안으로 노자 《도덕경》을 다뤘다. 저번 달은 군주론이었는데 글을 아직 안 남김. 다음 기회에. 《도덕경》은 얇고 쉬워서 금방 읽혔다. 아포리즘 모음이다.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에 마음 편하게 한 2-3일 정도 읽으니 끝났다. 평가는 내가 제일 후하게 줬다. 한 친구는 동양철학이 잘 안 맞는다고 했다. 도가 뭔지 설명도 못하는 걸 보니 엄밀하거나 논리적이지 못하고, 그냥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을 정리해놓은 것 같단다. 다른 친구는 꽤 호평을 했는데 《도덕경》 내용이 상식(직선적인 세계관)에 반하기 때문에 허를 찌르고 시야를 넓혀준다고 했다. 나도 대체로 비슷한 감상이다. 내용 요약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