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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학창시절 내내 수학이 지지리도 발목을 잡았다. 2004년 중3 때 100점 한번 받아보려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하루는 근처 레코드 가게에 잠시 들렀다. 변색되어 가는 옛날 CD가 있길래 뭔가 봤더니 바로 이 Waiting to Exhale OST였다. 90년대 빠글빠글 머리 아줌마들이 나오는 앨범자켓의 촌스러움이 무색하게도 트랙리스트는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우선 베이비페이스가 전곡 작곡에 프로듀싱을 맡았다. 휘트니 휴스턴, 아레사 프랭클린, 브랜디, TLC, 토니 브랙스턴, 페이스 에반스, 메리 제이 블라이지 등등 쟁쟁한 미국 흑인 여자 가수들이 빽빽한 트랙리스트를 보니 이름만 믿고 그냥 사도 되는 CD가 분명했다. 초등학교 내내 귀를 지배했던 SES가 중학교 때 해체해 버리고 마음 둘 곳을..
헤딘의 기행문에는 윤리적으로 문제있는 허구가 정말 많을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독일 탐험가 브루노 바우만의 《타클라마칸》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강인욱 교수의 블로그 글을 읽은 덕분에 끝을 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책이다. 스벤 헤딘에 대한 궁금함으로 올해 스톡홀름에 다녀오고 나서 헤딘 자서전을 읽었다. (2016/07/11 - [중점추진사업/유라시아사] - 이제서야 다 읽은 스벤 헤딘 자서전) 발간 당시에 베스트셀러일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저서다. 이 책에서 단연 잊을 수 없는 장면은 타클라마칸 횡단 부분. 헤딘이 부족한 물로 전진을 고집한 바람에 여러 사람이 주저앉았고, 헤딘 본인은 기적적으로 샘을 발견하여 살아남았다. 헤딘은 동료 대부분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자신의 장화를 벗어서 물을 가득 ..
출장 첫날 회식에서 또라이한테 걸려서 아까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했다. 다음날은 반드시 내 뜻대로(!) 활용하겠다는 각오로 유카타를 입고 잠들었다. (회식 때문에 온천을 못했으니 잠옷으로라도 쓰자...) 다행히 도쿄국립박물관 위치는 기가 막히게 절묘했다. 도쿄 명소인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데, 나리타 공항 가는 스카이라이너 정거장이 바로 근처의 게이세이 우에노 역이다. 첫날부터 이 절묘한 위치를 살살 어필하면서 밑밥을 깐 덕분에 3명의 일행 모두는 우에노 공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음하하!! 선배 한 분은 공원을 돌아보기로, 다른 한 분은 박물관에 같이 가겠다고 하셨다. 혹시나 박물관 구경이 좀 길어지거나 하더라도 눈치가 덜 보이게끔 입장권을 사서 건네 드렸다. 이것도 요즘 연습 중인 협상기술의 일환. ..
11월 16-17일, 처음 해외 출장이자 처음 일본 방문이었다. 목적지는 도쿄. 도쿄국립박물관에 오타니 탐험대의 컬렉션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가려고 했던 중요 목적지였다. 시간이 나면 꼭 가보려고 리서치를 하고 지도도 뽑아두었다. 일하러 가는 출장이 아니라 행사 참석이 목적이고, 어르신들이 아니라 타부서 젊은 선배님들이 동행이어서 기회가 있어 보였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일본 최대 박물관이다. 1872년에 첫 전시를 시작해서 1882년에 현재 위치인 우에노 공원 내부로 터를 옮겼다. 근대의 산물인 박물관이 으레 그렇듯 도쿄국립박물관도 일본 안팎의 세계를 파악하고 다스리기 위한 국가주의와 제국주의 지식의 팡테옹이었다. 이곳의 오타니 컬렉션도 예외가 아니다. 오타니 탐험대는 스벤 헤딘과 오렐 스타인, 알베르..
화장은 과연 예의인가? 이것은 요즘 저의 화두입니다. 저는 뷰티 정보에 어둡고 돈도 별로 없어서 대학교 때 화장을 하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회사 면접을 보려니 화장을 해야 했고, 취직하고 보니 화장을 꼭 하라고 교육을 하길래 하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화장이 서툴러서 특별히 더 나아보이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째 매일 하다 보니 조금씩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사람들이 너 용됐다 하고 칭찬인지 뭔지 잘 모를 말도 해주었지만 화장이 잘 어울린다는 말이기는 했으니 감사해야겠지요. 화장을 하려면 옷도 그에 어울리게 왠지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 입게 되니까 이렇게 해야 만날 사람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았습니다. 화장하지 않고는 콧잔등의 모공이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보편과 에고 사이의 진동- 『저항과 아만』 서평 - 1. 『저항과 아만』은 책 제목부터가 그 내용을 기대하게 했다. 이언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었지만, 오만(傲慢)이라는 흔히 아는 단어가 아니라 아만(我慢)이라는 ‘나 아(我)’자가 들어간 새로운 단어가 사용된 것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자의식이 강렬하고 주변과 쉽게 융화할 수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겠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고, 400쪽이 훌쩍 넘는 두꺼운 책은 그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았다. 이언진은 틀에서 벗어난 글재주와 사유방식, 그리고 당시 사회에 대한 급진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가진 것들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없었다. 결국 이언진은 자신이 지향하는 지점과 현재 딛고 있는 지점 사이..
요즘 비아그라가 핫하지요. 그야말로 누구나 비아그라를 논하는 시국을 틈타 중국어 단어 하나 소개할게요. 중국어로 비아그라는 뭘까요? 伟哥 [웨이꺼] 예요. 클 위, 오빠 가 예... 큰 오빠...... (뭐가..?)정말 정직하고 깜찍하게도 지어놨네요.... 누가 지었는지 참 요망한 것.....^^ 그런데 사실 이게 뜻도 발음도 모두 잡은 훌륭한 번역어예요. 으잉? 이게 왜 발음이 비슷한데? 하실 수 있어서 한번 살펴볼게요. 중국어에는 v 발음이 없어서 외래어를 음역할 때 w 발음으로 대체해요. v랑 w는 모양도 비슷하지만 알고보면 발음도 비슷해요. v는 입술을 윗니가 건드려서 내는 소리고, b는 입술끼리 건드려서 내는 소리고, w는 입술을 동글게 오므려서 내는 소리죠. v, b, w 모두 조음 위치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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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아이 하눔 유적 1960년대 이전에는 그리스계 왕들의 화폐 같은 소수 유물만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었다. 1964년에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북부 아이 하눔 유적의 발굴을 통해서 드디어 이 왕국의 전모가 드러난다. 아이 하눔에서는 아크로폴리스가 갖춰진 그리스풍 도시, 코린트식 열주가 있는 석조 건축물, 그리고 고전 양식의 신상과 인물상이 발견되어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실증해 주었다. 6. 사카-파르티아 시기의 탁실라 유적 인더스강 동안에 있는 탁실라에서도 그리스인의 도시가 발견됐다. 이 지역에는 Bhir Mound, Sirkap, Sirsukh등의 도시 유적이 남아있는데, 사카-파르티아 세력이 그리스-박트리아인의 뒤를 이어 지배한 시기의 유..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에 갔더니 문헌학자 펠리오의 둔황 막고굴 컬렉션은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알프레드 푸세, 조셉 하킨 같은 고고학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져온 간다라 양식 조각상이 훨씬 많았다. 집에 돌아와서야 천천히 조사를 해보다가 생각보다 내용이 재미있길래 《간다라 미술》이라는 도해집을 빌려왔다. 1999년도에 예술의전당에서 파키스탄 정부의 후원을 받아 개최한 전시회의 도록이다. 도해집이라 기본적으로 사진이 많고, 앞에 붙어있는 이주형 교수의 소개글이 읽어볼 만하다. 그 내용을 간추리고 이미지를 추가해서 정리했다. 1.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간다라 미술을 이야기하려면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을 빼놓을 수 없다. 알렉산더 대왕은 지중해의 마케도니아에서 서아시아를 지나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