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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청나라 건륭제 남방 순행을 엄청난 폭의 두루마기에 그려서 기록한 시리즈물. 사람들 제일 바글바글한 시장통 부분만 찍어 왔다. 드디어 처음 가본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에서 기념으로 찍은 것. 유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섬세함과 담백함 덕분에 이렇게 소상한 생활상을 다 볼 수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약간 기울어져 있어 아쉽지만 둘러앉아 술 한잔 걸치고 있는 아저씨들이 정겨워서 담아보았다.
광장무는 사실 베이징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워낙 인기다. 중국 사람들, 특히 중년층은 집 근처 공터나 이름난 공원에서 여럿이 모여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춤을 춘다. 아침에 광장무 음악소리에 깨기도 하고 오며가며 구경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나도 가끔 따라 췄다. 우리 학교는 중앙민족대학이라고 소수민족 학생들의 메카 같은 곳이었다. 티베트 학생들이 금요일 저녁마다 학교 안의 작은 공터에 모여서 둥그렇게 빙빙 돌며 티베트 전통춤 궈좡(锅庄)이라는 걸 췄다. 나만의 프라이데이 나잇이라며 매번 손꼽아 기다렸었다. 우연히 밥먹다가 옆자리라서 알게 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1학년 시절 룸메이트가 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티베트 남학생한테 반해서 티베트 문화 애호가였다. 이 녀석이 나머지 두 친구한테..
베이징에는 후통(胡同)이라고 부르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많이 있다. 이처럼 아파트와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신시가지와 구별되는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을 라오베이징(老北京)이라고 한다. 이 라오베이징의 후통을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할머지 할아버지들도 빼놓을 수 없는 베이징 매력 포인트. 2호선 구로우따지에(鼓楼大街, 고루대가) 역에서 내려 고루, 종루방향으로 걸어내려오다가 아무 골목길이나 들어가면 이런 광경이 나온다. 이곳은 베이징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었고 종종 정처없이 쏘다니곤 했다. 이번에도 숙소를 이곳 근처에 잡았다. 이곳엔 언제나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와서 마작이나 카드놀이를 하고 계신다. 서울에서는 놀려면 카페를 가서 돈을 써야 한다. 옛 서울의 모습도 별로 안 남아있다. 라오베이징에는 ..
중국 메뉴판 영문 번역은 엉망이기로 유명하다. 사람의 번역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근데 보다 보면 박장대소할 만한 것도 많고 상당히 정겹다. 아래는 실제로 이번 여행 중 찍었다. 우다오커우 문진호텔 근처의 음식점.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 세 단어로 현대사 요약 + 요리명에 정치사를 담는 허허실실의 묘리 ㄷㄷ해. ... 이 이건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푸쉬킨의 〈보리스 고두노프〉처럼 동란시대에 대해 다룬 희곡. 선악구도가 상당히 단순하다. 슈이스키와 가짜 드미트리 1세(본명 그리고리 오트레피예프, 본업 수도자)는 실존 인물이지만, 슈이스키의 딸인 크세니야와 그 연인 게오르기는 가상 인물이다. 크세니야를 강탈하려는 가짜 드미트리 1세의 악랄함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인물 구도이다. 드미트리는 재고의 여지 없이 극악무도하고 크세니야는 더할 나위 없이 가련한 희생자여서 복잡다단한 심리드라마(예: 맥베스!!)를 보는 듯한 현대적 재미는 좀 떨어진다. 무대에 올리면 무대장치도 상당히 간소할 것 같다. 전투 장면 같은 것은 보여주기 방식이 아니라 말하기 방식으로 간단히 처리돼 있다. 폭력적인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고전비극의 전형적인 작..
정독도서관 갔을 때 자서전 장르에 대한 신간이 나왔길래 빌려 읽고 있다. 서울대 불문과 교수 유호식 저. 제목 《자서전》. 자서전, 혹은 자기 이야기 장르에는 대학교 3학년 때 몹시 관심이 많았다. 그때쯤 자서전은 아니지만 자기 이야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인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도, 카뮈 《전락》도, 레르몬토프 《우리 시대의 영웅》도 열광하며 읽었었다. 자기의식이 강하고 유난히 예민했던 시기였다. 이청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를 주제작으로, 《당신들의 천국》을 참고작으로 해서 이 주제로 학부 졸업논문을 쓰려고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대학생활 한 시기의 거대한 주제였기에, 마지막 학기에 구직활동을 병행하며 대충 쓸 수밖에 없었던 졸업논문의 주제로 삼기에 켕기는 점이 많아 그..
http://russia2015.chnmuseum.cn/ 저번 주에 못 갔던 베이징 이번 주에 가기로 했다. 베이징 살았을 때 못 가봤던 중국국가박물관. 이번에는 꼭 구경하려고 웹사이트에서 전시 안내 페이지를 둘러봤더니 아니 이런 파벨 트레차코프 사진이 보이지 않겠는가. Echoes from the Volga River라는 제목으로 트레차코프 갤러리의 이동파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웬 행운! :) 伏尔加河回响 特列恰科夫画廊藏巡回画派精品 참고로 볼가의 중국어 음차는 푸얼쟈(伏尔加), 트레차코프는 터리에챠커푸(特列恰科夫). 이동파는 순회화파(巡回画派)라고 번역하고 있다. 웹페이지의 전시회 안내 멘트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他独自一人肩负起创立俄罗斯绘画流派的全部任务。这是一项无与伦比的伟大功绩! ——伊里亚·叶菲..
일요일에 회사 행사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읽고 싶어 빌린 책. 시오노 나나미 책은 처음인데 듣던 대로 필력은 그럭저럭. 하지만 인상 깊은 부분 몇을 좀 들추어내 본다. 어떤 사람을 스타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1.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 경제상태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2. 윤리, 상식 등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 (독자적이고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3. 궁상스럽지 않을 것. 4.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성에 부드러운 눈을 돌릴 수 있는 사람. 5. 멋있는 사람. (pp.17-18) 정직함이 바탕이 된 자신감이 있는 사람. 편견이 적어서 품이 넓은 사람. 가치있는 것을 위해 후하게 베풀고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람. 유머와 기지로 어려움을 타개해나가는 사람. ..
굉장히 흥미로운 입문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중학교 체육시간에 발레 배울 때 치를 떨었으며, 발레 기본 동작도 하나도 모르고, 발레의 명작 중 명작이라는 백조의 호수는 보다 쿨쿨 잤을 정도니 문외한 중의 문외한이지만 몇 가지 오래된 궁금증이 있어서 빌려본 책인데 대만족이다. 몇 년 전 미국에 놀러갔을 때 취미발레 배우는 친구 따라 댄스스쿨에 가본 적이 있다. 남자가 거의 없는 그곳에서 굉장히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튀튀 입은 흑인 남자. 딱 봐도 아 동성애자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발레하는 남자는 왜 그렇게 드물며 만약 있으면 게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많을까? 발레는 왜 여성의 전유물처럼 됐을까? 게다가 발레는 엄격한 체격조건과 외모와 흰 피부색, 그리고 많은 경우에 젊음과 가혹한 신체조정을 요구..
전승일에 오랜만에 블라디미르 아저씨랑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안부도 묻고 러시아어도 몇 마디 써보고, 스시 드신다길래 러시아 친구한테 받은 스시vs도시락(컵라면)관련 짤방도 하나 보내드렸다. 짤방은 이따 집에가서 붙여 넣어야지. (이건 회사에서 아침 메일체크 끝내고 메모장에 허겁지겁 쓴 글..) 블라디미르 아저씨는 지금 첼랴빈스크에서 일하고 있다. 중국-러시아 간 가스관 연결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라 한다. 현지에 한국 기술자들도 많이 있어서 두 언어에 모두 능통한 이 아저씨에게 딱 맞는 일자리였지 싶다. 한국이 훨씬 좋다며 1년만 있다가 돌아오신다더니, 이제는 러시아인이 한국 가면 뭐하냐고 하신다. 한국에 너무 오래 살았어, 나는 결혼도 못하고 너무 슬프게 살았던거지, 하시는 것이 러시아에 자리를 잡으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