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である체와 존재론

bravebird 2015. 10. 25. 21:49

일본어를 처음 배우면 명사와 な형용사의 반말 보통체는 だ라고 배운다. 한국어의 '다, 이다' 같은 거다. 부정은 じゃない인데, じゃ는 では가 줄어들어서 만들어진 회화체다. 여기서 で는 '로'라는 도구 혹은 자격의 의미가 있는 조사다. は는 한국어 '은/는'에 해당하는 보조사이고, 강조의 의미라서 빼버려도 된다.
- だ(-이다) 부정이 じゃない(가 아니다)
-じゃない=ではない=でない

ない는 '없다'라는 형용사다. ない의 반댓말이 ある고 이건 동사다. 한국어에서는 '없다'와 '있다'의 품사에 대해서 좀 따져볼 부분이 있어서 품사구별이 간단치는 않은데, 일본어에서는 확실히 형태로 구별이 된다. ない는 い형용사, ある는 1그룹 동사.

한국어에서 '없다'는 형용사다. '있다'는 동사와 형용사 특성을 다 갖고 있는 듯하다. 구별을 해보려면 진행의 의미를 가진 '-는-/-ㄴ-'을 넣어보는 동시에, 주체를 사람에서 동물이나 무생물로 바꿔보면 된다. 동사는 진행이라는 상을 가질 수 있지만 형용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동사는 기본적으로 주체의 의도가 개입된 행위이고 형용사는 의지와는 상관없는 상태이다. (피동의 경우 의도가 개입 안 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있다 없다의 경우 이 단어들에서 직접 파생된 피동동사가 따로 없으므로 논외로 한다.)

1. 그 놈은 간다.
2. *그 놈은 멋있는다.
3. 지금부터 그 자세 그대로 있는다, 실시!
4. *책상/상대성이론/고양이가(이) 있는다. (주체가 무생물 및 동물)
5. *그/상대성이론/고양이는 없는다.

3에서 주체는 사람이고 이때 '있다'는 주체의 의지에서 나온 동작을 가리키는 동사다. 4의 주체는 무생물이나 동물이라서 의지가 없다. (동물이 의지를 갖고 있는지 여부는 너그럽게(..) 별론으로 하자) 그래서 4의 '있다'는 의지가 개입된 동작이 아니라 상태이며, 즉 형용사다. 형용사라서 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4와 5의 '있는다'와 '없는다'는 성립이 안된다.

여하튼 정리하면 '없다'는 형용사고 '있다'는 동사 형용사 둘 다 되는 것 같다. 있다는 것은 동작이기도 하고 상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있다'를 동사로 분류하는 대신 상태동사와 동작동사 성격을 모두 갖고있다는 식으로 설명해도 될 것이다. 어쨌거나 '없다'와 'ない'가 둘다 형용사인 것, '있다'와 'ある'가 둘다 동사 성격을 갖고 있는 건 두 언어의 공통점이다.

흥미로운 것이, 이 '-이다'에 해당하는 だ의 문장체는 である다. でない가 '가 아니다'니까 である는 자연히 '이다'가 된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 で는 '로(써)'라는 도구의 의미와, '로서'라는 자격의 뜻을 가진 조사다. 용법을 보자.

- 鉛筆で書く。(연필로 쓰다)
- 英語で話す。(영어로 말하다)
- 選手で参加する。 (선수로서 참가하다)
- 外国人で日本へ居る。(외국인으로서 일본에 살다)

그럼 である는 그대로 풀면 'OO로서 혹은 로써 있다/존재하다'가 된다.

- 彼女は社長である。= 社長だ。(그녀는 사장이다)
- 私は学生である。= 学生だ。(나는 학생이다)
- 父は親切である。= 親切だ。(아버지는 친절하다)
- 魚が新鮮である。= 新鮮だ。(생선이 신선하다)
- 私は歴史が好きである。= 好きだ。(나는 역사가 좋다)

で가 가진 '로서'와 '로써' 의미에 집중해서 말을 좀더 풀어보면:

- 그녀가 사장이라는 상태나 자격으로 있다/존재하다.
- 내가 학생 상태나 자격으로 있다/존재하다.
- 아버지가 친절함이라는 상태로 있다, 혹은 친절함이라는 수단으로써 드러나 보여 존재하다.
- 생선이 신선함이라는 상태로 있다, 혹은 신선함이라는 수단으로써 드러나 보여 존재하다.
- 내게 있어 역사는 '내가 좋아함'이라는 상태로 있다, 혹은 '내가 좋아함'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비로소 존재하다.

이렇게 である를 하나하나 뜯어서 보니, '이다'와 '있다' 사이에는 "~로서/~로써 있다 = 이다"의 관계가 성립한다. で가 그 관계를 아주 명확히 보여줬다. 반면 한국어에서는 '이다'와 '있다'의 별도 어휘로 엄연히 나뉘어 있다. だ는 소리가 '다'여서 두 언어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である로 바꿔쓰고 보니까 한국어와 일본어의 문법요소가 존재개념을 반영하는 방식이 아주 달라보인다.

영어에서 be동사는 '이다'와 '있다' 둘다 의미한다. 아마 다른 서양어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처음에 영어를 배울 때 이 be동사란 놈을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었었다. 뜻이 '이다, 있다'라는데 '이다'같은 추상적인 기능어가 뜻이라고 하니 전혀 와닿지도 않고.

- God is God. (신은 신이다.)
- God is. (신은 계신다/존재한다)

당연히 어려웠을 수밖에 없지. 임과 있음의 문제는 철학개론 제일 첫장에 존재론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분명히 쓰여있었다. 이 being과 be의 문제는 서양철학의 핵심 관심사 중 하나다.

일본어는 회화체인 だ일 때는 티가 안 나다가, 문장체인 である에서 で를 단서로 하여 뜯어보면 임과 있음의 관계를 똑똑이 명시하고 있다. 한국어는 둘을 어휘적으로 확실히 구별해놓았다. 닮은 듯 참 다르다.

나는 있기 때문에 인 걸까,
이기 때문에 있는 걸까,
임과 있음은 구별되지 않는 하나일까?
?
?

결론은, 일본어 토씨 하나 뜯어보다가 이 존재론에 형이상학 문제까지 와버렸다는 거다. 여기부턴 머리아픈 철학이니까 이제 그만~ ㅎㅎㅎㅎㅎㅎㅎ

※ である의 어원에 대해서도 다 따져봐야 존재론적인 뭔가가 진짜 반영된 건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 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 중국어의 有와 是와 在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지만 각 글자의 생성연원도 잘 모르고, 무엇보다 중국어는 문법적으로 한국어나 일본어와는 확 달라서 단순비교가 어려우니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기가 어렵다.

※ 한두 해쯤 전에 철학개론 교재를 신나게 팔아치웠는데, 그 난삽하고 재미없었던 책을 이렇게 다시 들춰보고 싶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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