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431)
독수리 요새
이 글은 「지지 않는 벚꽃」의 창작 노트입니다. 다만 이 노트는 해설이나 정답이 아니라, 제가 그 글을 쓰게 된 우연의 계보와 직관의 흐름을 기록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삶을 대신 살 수 없듯 그 글은 이미 제 슬하를 떠났습니다. 며칠 전 아침 세수를 하려던 참에 문득 에즈라 파운드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이름만 알 뿐 아는 바는 전혀 없었다. 최근에 어디선가 접한 적도 전혀 없는데 왠지 혀끝에서 맴돌았다. "에즈라… Ezra... 이스라엘이랑 관계 있나? 근데 대체 왜 아침 댓바람부터 생각났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세수를 하고는 출근길에 올랐다. 그 당시는 며칠 전의 불가사의한 순간을 내내 반추하던 중이었다. 글로 오래전 교류했지만 모습은 내 쪽에서만 아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출근길 지하철..
오래전 글로 알았던 사람이 있다. 얼마 전 출근길에 그 사람이 지하철 출입구로 들어가는 걸 우연히 봤다. 실제로 만난 적 없으나 뒤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모습도 알지만, 그는 나를 활자로만 안다. 개찰구를 지나며 거리가 좁혀졌을 때 바라보았더니 역시 그 사람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 사람이 문득 활짝 웃었다. 그 찰나, 마치 나를 알아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른 생각을 하던 표정이 옮겨온 것일 테지만. 나를 알아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개연성은 희박하다. 어쨌든 그 이후 내게 시선이 머무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는 바로 다음 역에 내렸고, 내가 서 있던 문간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강산이 바뀔 세월만큼 서로 활자로만 아는 사이. 그나마도 몇..

이번에 모스크바에서 10년 만에 아센을 만났다. 러시아에 도착한 날 문득 떠올라 예전에 주고받았던 이메일 주소와 왓츠앱을 뒤져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러시아를 떠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답장이 왔다. 아센은 여전히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었다. 아센은 2022년에 조그만 동네 카페를 열었다. 레닌그라드 기차역이 있는 콤소몰 광장과 프로스펙트 미라 근처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갈 때도 들를 수 있어 좋았다. 아센은 내가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2014~2015년에는 쿠즈네츠키 모스트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모스크바에 올 때마다 항상 금요일 저녁 도착이었고, 키타이 고랏의 호스텔에 짐을 두고 곧장 아센의 바로 향하는 것이 휴가의 시작이었다. 돌아온 모스크바, 아센의 바, 다시 만난 사람들, 휴가 ..

약 2배 이상. 이번에 러시아 여행을 했을 때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고 느꼈다. 찾아보니 2014~2016년 대비 환율 자체는 의외로 비슷했지만, 그 사이 인플레이션이 굉장한 수준이었다. 2014년 대비 현재 소비자물가지수는 2배 이상이며, 특히 외식이나 숙소 물가에서 물가 상승을 체감할 수 있었다. 201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박 숙박에 약 10만 원을 냈던 반면, 이번 여행에서는 동일한 골목 안, 비슷한 컨디션의 저예산 1인실 숙소가 3박에 20만 원 수준이었다. 외식도 수프에 요리 하나 시키면 2만원 정도 했다. 10년 전 당시에는 이 가격에 이렇게 볼 것이 많아도 되는가 싶었고, 러시아 여행 대체 외않가?!!? 여길 놔두고 더 멀고 더 비싼 유럽을 웨 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메뉴판 보는 것..

러시아에 휴가를 온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거의 10년 만이다. 처음 왔던 2014년엔 크림 사태가 있었고, 2025년 현재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행 중이다. 2014년 당시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니, 당시 나름 이쪽저쪽의 입장을 모두 살펴보려는 노력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러시아의 입장을 꽤 적극적으로 이해해 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2025년 5월 7일자의 생각을 덧붙인다.다수의 러시아 사람들은 서방과 미국의 보편주의적 관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특히 러시아인 대다수가 나라를 찢어서 팔아 넘겼다고 싫어하는 고르바초프와 옐친 시기에 겪은 극심한 혼란과 강대국 지위 상실에 대해 집단 기억이 형성돼 있어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제국적 시각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내일까지 내야 하는 중국명시감상 과제가 북송시대 시 하나 골라서 감상문 쓰는 거였는데 운이 좋게 일필휘지로 써졌다. 왜냐하면 항상 생각하고 있는 주제 그 자체를 다룬 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식론, 존재론, 서양 사상과 동양 사상의 차이, 서양의 진리, 동양의 도 같은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왔다. 특히 최근 며칠새 챗GPT와 이 주제로 이야기도 정말 많이 했기에 이 시를 보고 심봤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에 대학생 시절, 한 미국 사람이 "너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무교인데도 신과 원죄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떨칠 수 없는데 너는 그런 관념 자체를 아예 떠올리지 않는 것 같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매우 흥미로웠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종교가 없는데도 신과 ..

오늘 중국어 수업에서는 스페인의 집값 상승에 대한 기사를 다뤘다. 1시간짜리 수업인데 30~40분 정도면 최신 기사 하나를 읽고 밑에 토론 문제까지 다루게 된다. 그러면 나머지 20분 정도는 더 이상 최신 기사가 없어서 몇 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건 노잼이므로 내가 보통 선생님한테 바이두 보자고 하거나 궁금한 걸 여쭤본다. 기사에서 经济适用房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먼저 이것에 대해서 좀 알아보았다. 중국의 공공주택 같은 것인데 가격을 대략 계산해 보면 한국 25평 아파트가 대략 5천만원 정도 한다고 했다. 1 평방미터당 약 3천 위안~6천 위안이라는 바이두 검색 결과에 의거한 계산이다. 참고로 중국의 1 평방미터( ㎡ , 平方米)는 한국의 0.3평 정도에 해당한다. 이 얘길 하다가 선생님이 拆迁户이..

把는 중국어에서 매우 자주 보이는 글자입니다. 기본적으로 '쥐다'라는 의미의 동사입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한) 줌'이라는 양사이기도 합니다. 동작의 대상을 강조하는(SVO 구조가 기본인 중국어에서 O를 앞으로 전치시키는) 개사(영어의 전치사에 해당)로 쓰이기도 합니다. 쥐는 동작은 뭔가를 극명하게 대상화하는 동작이기에 동작의 대상을 나타내는 개사로 의미가 발전한 것입니다. 이 용법으로 제일 자주 보게 됩니다. 오늘 어떤 글을 읽는데 一把가 '한 줌'이라는 즉자적인 의미 그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어디선가 '한 수 보여주지!' 하는 말도 一把라는 표현을 활용했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있어서 찾아보았습니다. 의미상 완전히 통하는 영어의 grasp와 꿰어져서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1. 내가..

그간 내 정치관이 어떻게 형성돼 온 것인지 종종 되짚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역사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빼놓을 수 없는데, 내 한국사 기초 지식은 사실 수능 때에 머물러 있어서 업데이트가 필요하긴 하다.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 공과 중에 과가 강조되고 북한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으로 서술되었다는 논란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바로 이 책으로 근현대사를 배우고 수능을 봤다. 고등학교 졸업 때쯤 이 교과서 관련 논란에 대해 알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다시 읽어보려고 보관을 꽤 오래 했다. 근현대사를 저 책으로 아예 처음 접했으므로 당시로서는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게을러서 결국 다시 펴보지 못했고 아마 몇 년 전에 버렸..

요즘 자각몽을 자주 꾸는데 정말 신비롭다. 내가 자각몽을 꾸는 조건은 주로 자다 깨서 잠이 들락말락 하거나 얕게 잠든 때인 것으로 생각된다.난 뭔가 꿈을 꿨다는 느낌만 어렴풋이 있지 기억을 거의 못하는 편이었는데 재작년 말 정도부터 입면환청, 엄청난 속도의 삽화적 이미지, 자각몽, 심지어 예지몽 등 꿈 관련해서는 신세계를 보고 있어서 이제 자다 깨면 녹음할 것이다. 예지몽은 무슨 미신 오컬트 그런 차원이 아니라, 사람이 자는 중에 뇌가 현상을 해석하고 뭔가를 직감하고 시뮬레이션하고 대비하기 때문에 결국 높은 확률로 실제 일어나는 일이 되므로 예지몽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자각몽 1.꿈 내용 자체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꾸다가 이게 꿈인 걸 알았다. "이거 꿈인데 깨어나면 기억을 거의 못할 거니까 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