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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이번에 모스크바에서 10년 만에 아센을 만났다. 러시아에 도착한 날 문득 떠올라 예전에 주고받았던 이메일 주소와 왓츠앱을 뒤져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러시아를 떠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답장이 왔다. 아센은 여전히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었다. 아센은 2022년에 조그만 동네 카페를 열었다. 레닌그라드 기차역이 있는 콤소몰 광장과 프로스펙트 미라 근처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갈 때도 들를 수 있어 좋았다. 아센은 내가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2014~2015년에는 쿠즈네츠키 모스트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모스크바에 올 때마다 항상 금요일 저녁 도착이었고, 키타이 고랏의 호스텔에 짐을 두고 곧장 아센의 바로 향하는 것이 휴가의 시작이었다. 돌아온 모스크바, 아센의 바, 다시 만난 사람들, 휴가 ..

약 2배 이상. 이번에 러시아 여행을 했을 때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고 느꼈다. 찾아보니 2014~2016년 대비 환율 자체는 의외로 비슷했지만, 그 사이 인플레이션이 굉장한 수준이었다. 2014년 대비 현재 소비자물가지수는 2배 이상이며, 특히 외식이나 숙소 물가에서 물가 상승을 체감할 수 있었다. 201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박 숙박에 약 10만 원을 냈던 반면, 이번 여행에서는 동일한 골목 안, 비슷한 컨디션의 저예산 1인실 숙소가 3박에 20만 원 수준이었다. 외식도 수프에 요리 하나 시키면 2만원 정도 했다. 10년 전 당시에는 이 가격에 이렇게 볼 것이 많아도 되는가 싶었고, 러시아 여행 대체 외않가?!!? 여길 놔두고 더 멀고 더 비싼 유럽을 웨 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메뉴판 보는 것..

러시아에 휴가를 온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거의 10년 만이다. 처음 왔던 2014년엔 크림 사태가 있었고, 2025년 현재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행 중이다. 2014년 당시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니, 당시 나름 이쪽저쪽의 입장을 모두 살펴보려는 노력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러시아의 입장을 꽤 적극적으로 이해해 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2025년 5월 7일자의 생각을 덧붙인다.다수의 러시아 사람들은 서방과 미국의 보편주의적 관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특히 러시아인 대다수가 나라를 찢어서 팔아 넘겼다고 싫어하는 고르바초프와 옐친 시기에 겪은 극심한 혼란과 강대국 지위 상실에 대해 집단 기억이 형성돼 있어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제국적 시각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국제 레릭 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the Roerichs)는 모스크바에서 제일 좋아하던 박물관입니다. 이곳이 요즘 충격적인 위기에 처해있어서 소식을 전합니다. 2014년 여름 처음 모스크바를 갔을 때 니콜라이 고골 박물관에 갔었어요. 안내해 주시는 할머니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못 알아듣고 쩔쩔매고 있었어요. 옆에서 보고 있던 분이 영어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동선이 겹쳐 전시실을 같이 다니게 됐는데 고골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어요. 이 분이 바로 지금까지도 이메일을 종종 주고받는 알렉산드르 아저씨입니다.아저씨는 취미가 박물관 구경입니다. 그리고 영어가 훌륭과 완벽을 넘어 문학적인 경지셨어요. 원어민보다 더 풍부한 어휘와 격조있는 문어체를 구사합니다... 인도에서 시도..
올해 6월 초 백야 때 스톡홀름이랑 같이 상트페테르부르크도 갔었는데 이제 올린다. 나는 글쓰는 데 진짜 게으르고 특히 여행기 같은 사사로운 이야기는 길게 못 쓴다. 정말로 아름다운 곳에서 잘 놀고 푹 쉬다 왔으니 지금 와서 글로 남기든 말든 아무런 관계 없지만, 사진첩 정리하다 보니까 홀랑 까먹기 전에 조금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네 번째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회사 사람들은 왜 자꾸 러시아를 가냐고 하기 때문에 그냥 스톡홀름 갔다왔다고 했다. 임원 한 분이 내가 러시아 다니는 걸 희한하게 여겨서 소문을 내신다. 사적인 대화 한 마디 해본 적 없는 옆팀 팀장이 그 분한테 들었는지 워크샵에서 갑자기 "그렇게 러시아가 좋으면 주재원 하나 잡아요. 내가 보기에 주재원 와이프가 팔자 최고야." 이러길래 양..
예브게니야 선생님 드리려고 산 도블라토프의 Наши. 물론 liontamer님의 매력적인 독서록 덕분에 읽었던 재미난 책. 감사 멘트는 노어가 부족해서 매우 무뚝뚝하지만 선생님은 행간을 읽으셨을 것이야 ㅋㅋㅋ 아, 다샤(Даша)는 베이징 시절 러시아 친구였던 알렉세이네 가족들이 지어준 노어 이름이다. 모스크바 마야코프스키 박물관 바로 옆의 biblioglobus에서 득템한 스파르타쿠스 전곡반. 볼쇼이 오케스트라 1974년 녹음 버전. 내 귀에 익숙한 속도보다 느리게 연주가 되어 즐겨듣지는 않았지만, 전곡반 자체가 워낙 드문 레퍼토리라 건질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 이것 말고 프로코피예프 Ivan the Terrible도 샀지만 아직 못 들어봤다... 한 2011년까지만 해도 cd를 언제나 들었는데 이젠..
올해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때 발견한 낙서들. 두번째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8시부터 밖에 나갔었다. 그때 표트르 대제에게 인사하러 가다가 봤다. "백인들을 위한 러시아" "인종주의" "루시인들을 위한 러시아" "사랑은 희어야 한다. 이 벤치처럼." 이건 첫번째 단어가 뭔가의 약자이다. 아는 분한테 여쭤보니 뒤의 두 단어는 "흑인들을 처먹어라"라는 뜻이란다... 러시아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스킨헤드 없냐고 걱정을 많이 해준다. 나는 밤늦게도 많이 나다녔지만 스킨헤드 같은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고 무서운 느낌도 전혀 안 들었는데, 새하얀 벤치에 이렇게 떡하니 인종주의 멘트가 적혀있는걸 보니 갑자기 좀 낯설게 느껴지기는 했다. 저곳도 삶이 팍팍한 거로구나, 생각했다. 이날 알렉산드르 아저씨가 가르쳐..
일상에 무사히 연착륙했다. 이번 여행 기록은 편년체 말고 기전체 비슷하게(ㅋㅋㅋ) 남기고 싶은데 예비 작업이 좀 필요하다. 기억 사라지기 전에 메모를 해두고 기회가 되면 하나씩 주제별로 써보도록 해야지. 1. 칼미크 친구들과의 재회 이번에도 두 번의 금요일을 모두 모스크바에서 보냈고, 어김없이 쿠즈네츠키 모스트 근처의 그 바로 돌아갔다. 가기 전에 미리 이메일을 해서 저번에 그곳에서 만났던 칼미키아 친구들과 재회했다. 그 중 한 명이 생일이었고, 또 다른 분은 한국에 관심이 많은 아내 분도 소개시켜 주었으며, 저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밝을 때 들어가서 밝을 때 나올 정도로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칼미키아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 이때 만났던 사람들 하나하나에 대한 좋은 기억 등등 남겨..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밥 먹고 레닌그라드 봉쇄시기 기념박물관 갔다. 저번 여행 때 정치사 박물관이랑 같이 보려다가 못 간 곳이다. 8월에 베를린행이 예정돼 있어서 절대 빠뜨리면 안 되는 행선지 중 하나. 1945년 5월 9일 대독일 반파시스트전쟁(대조국전쟁) 승리일의 프라우다.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레닌그라드 봉쇄 개념도. "우리의 명분은 정당하다. 승리는 우리 것이다." 글씨가 일부 안 보이긴 한데, "우리는 오데사와 스탈린그라드를 수호하였고 베를린에 당도했도다!" 레닌그라드 봉쇄 해제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연주회 광고. 독일군에 원천 봉쇄되어 생명이 꺼진 줄 알았던 도시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온 세계에 알린 사건. 파시스트 야만인들이 소비에트 땅이라곤 한 발자국도 못 밟게 만들겠..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입성. 이번에도 역시 도스토예프스키가 몽롱하게 돌아다녔을 카잔스카야 거리에 묵는다. 방을 잡고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탈리아 음식점 수프 비노 바로 맞은편이네. 오후 2시가 체크인이라 짐 풀고 씻은 다음에 바로 들어갔다. 12월에 갔을 때 일하고 있었던 알렉세이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빙긋 웃음이 나왔지만 모른 척 태연히 앉았다. 옷도 그때랑 똑같은 하늘색 티셔츠네! 음악도 여전히 약간 몽롱한 분위기 있는 앰비언스 계통. 모든 게 여전해서 마치 날 기다려준 것만 같아 무척 반갑다. 이렇게 먼 도시인데 돌아오면 편안한 곳이 생겼다. 그래서 간 곳을 계속 찾는다. 알렉세이는 12월에 갔을 때 말 몇 마디 해보았다. 차분하고 젠틀하고, 무엇보다 웃는 얼굴이 편안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