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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올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에서는 중앙아시아 탐험가들의 흔적을 더 찾아보는 게 목표 중 하나였다. 그 타겟 중 하나가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는 1839년에 태어나 1888년에 사망한 러시아의 군인이자 탐험가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근데 서양인 탐험가 중 하나다. 시베리아, 몽골 및 고비사막, 티베트 고원, 암도 티베트(현재의 칭하이 지역), 준가르 분지의 천산 유역, 북중국 등 광활한 지역을 폭넓게 어행하였으나, 본인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티베트 라싸에는 아쉽게도 닿지 못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프르제발스키의 탐험 중에 마침 회족 무슬림 반란이 일어났다. 둥간 반란(Dungan Revolt)이라고도 알려져있는 매우 유명한 사건으로, 신장 지역의 회족 무슬림들이 코칸드 칸국의 칸인..
책상 정리하다가 2011년 1학기에 메모해둔 것들이 나왔다. 이때는 중국 교환학생 나가기 직전으로, 교생실습을 나갔었고 지겨운 교직 및 전필 과목을 한껏 몰아 들었다. 과목이 하나같이 재미가 없어서 수업시간마다 딴 책을 탐독하면서 종이에 베껴 적거나 하며 버티곤 했다. 그때 읽은 도스토예프스키 관련 책에서 옮겨 적은 내용인데, 앙드레 지드의 저작으로 기억한다. 나는 확실히 양가성이라는 주제에 매우 이끌린다. 처음으로 읽으면서 전율한 책도 Fair is foul, foul is fair로 유명한 맥베스였다. 최초로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던 도시인 홍콩도 동양과 서양이, 그리고 보편과 로컬이 미묘하게 교차하고 투쟁하며 한편으로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러시아는 쌍두독수리로 상징될 만큼 유럽과 아시아 그 모두이자..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러시아 문학 주요 작가와 작품을 살펴본 책이다. 챕터 1 '남의 음식'과 '나의 음식' 부분이 특히 탁월했다.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의 대결로 빚어진 러시아 문화의 이중성을 음식이라는 일상적 소재로 묘파했다. 이 부분에서 예브게니 오네긴 속 음식 이야기에 얽힌 푸쉬킨의 코스모폴리터니즘도 언급된다. 챕터 1을 읽는 내내 왜 러시아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애착을 느끼게 됐는지 되새겨볼 수 있었다. 누군가 왜 러시아에 매력을 느끼냐고 묻는다면 이 부분을 그냥 펴주는 걸로 설명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정확히 핵심을 짚은 글이었다. 남의 것과 나의 것, 이중성, 혼종성 이 개념들은 내 관심분야 대부분과 취향과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다. 전공선택도 언어선택도 다 이것들이 작..
푸쉬킨의 〈보리스 고두노프〉처럼 동란시대에 대해 다룬 희곡. 선악구도가 상당히 단순하다. 슈이스키와 가짜 드미트리 1세(본명 그리고리 오트레피예프, 본업 수도자)는 실존 인물이지만, 슈이스키의 딸인 크세니야와 그 연인 게오르기는 가상 인물이다. 크세니야를 강탈하려는 가짜 드미트리 1세의 악랄함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인물 구도이다. 드미트리는 재고의 여지 없이 극악무도하고 크세니야는 더할 나위 없이 가련한 희생자여서 복잡다단한 심리드라마(예: 맥베스!!)를 보는 듯한 현대적 재미는 좀 떨어진다. 무대에 올리면 무대장치도 상당히 간소할 것 같다. 전투 장면 같은 것은 보여주기 방식이 아니라 말하기 방식으로 간단히 처리돼 있다. 폭력적인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고전비극의 전형적인 작..
최근에 레스코프 책들을 한창 읽고 있는데, 광대 팜팔론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지체 높은 가문의 고결한 영애이지만 그것이 도덕적 우월감이 되어버렸고 결국 철저히 영락해버린 마그나, "왜 모두 나의 어머니나, 내 친구들인 타오라, 포티나, 실비야처럼 살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은 정말이지 수정처럼 순결한 삶을 살아요." 고관대작 지위를 내버리고 고행자가 되었지만 그것이 아상으로 굳어버린 예르미, "보아하니 이자는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곳에 빠져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 하지만 그의 마음과 성정은 선량한 것 같구나. 내가 이곳으로 보내어진 것은 은총을 입은 그의 영혼을 다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가 분명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광대로서의 본분을 받아들였기에 가장 비천한 곳에서도 사람을 섬길 ..
새벽까지 논 덕분에 정통으로 약속에 늦었다 -_- 9시 반까지 붉은광장 주코프 동상 앞에서 알렉산드르 아저씨 만나기로 했었는데 거의 1시간 넘게 지각하여 송구스러웠다. 서브웨이 샌드위치 먹고 나서 고리키 집, 알렉세이 톨스토이 집, 츠베타예바 집, 체호프가 의사로 일하면서 살던 곳, 레르몬토프 생가, Patriarch's 연못과 거기 있는 키릴로프 우화 기념비들을 죽 돌아봤다. 우화 내용을 조각해놓았는데, 거대한 코끼리를 쳐다보면서 계속 캉캉 짖어대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우리 부서의 한 상사가 생각났다. 짖지 않으면 남들 앞에 약해 보이는 줄 알고 계속 쓸데없이 벽 보고 짖는 그 분. 알렉산드르 아저씨에게도 이미 메일로 얘기해준 적이 있는 사람이라 같이 떠올리며 엄청 웃었다. 저녁에는 아르바트 거리의..
푸쉬킨 작품 중에 읽어본 것이 예브게니 오네긴 뿐이어서, 여름에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자마자 민음사판 푸쉬킨 선집을 빌렸다. 전권을 다 읽진 않고 몇 작품만 발췌독. 먼저 〈보리스 고두노프〉. 죽은 줄 알았던 황자가 두 번이나 살아 돌아와 나라가 뒤집어진 동란시대를 그렸다. 여러 이설이 있기는 하나, 보리스 고두노프는 황위 계승자를 죽이고 제위에 오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보리스의 치세에 자연재해가 계속되어 민심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수도승 하나가 승복을 벗고 황제의 의관을 입기로 마음 먹는다. 보리스가 죽이려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황자가 바로 자신임을 주장하던 그는, 마침내 보리스의 아들을 죽이고 황제가 된다. 그렇지만 그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또 다른 찬탈자에게 황위를 넘..
처음 읽은 톨스토이 대장편 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예프스키 장편 몇몇은 대학생 때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읽어 내렸다. 이번 톨스토이 장편은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나가는 시점에 읽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둘다 참 절묘한 시기에 만난 것 같다. ▲ 이반 크람스코이 작 ‘미지의 여인’. 모스크바 트레차코프 갤러리에 묘한 아우라와 함께 걸려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초상화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이반 크람스코이와 톨스토이는 서로 아는 사이였는데,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화가 미하일로프의 실제 모델이 이반 크람스코이. 미하일로프는 안나와 브론스키가 이탈리아 생활을 하던 중에 만난 화가로, 그는 작중에서 안나에게 초상화를 한 점 그려 준다. 톨스토이가 미하일로프를 통해 바라..
일리야 레핀, 자포로지예 카자흐 크게 보기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박물관에서 본 것 중에 어마어마한 아우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지금 회사 컴퓨터 바탕화면이다. 비율이나 해상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도저히 다른 그림으로 바꿀 수가 없을 지경. 카자흐 아저씨들 표정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주름들이 참 구성지고 웃음에 호쾌함이 뚝뚝 묻어 나오는 것이 박진감이 넘친다. 이 자포로지예 카자흐(페이지 내에서 '자포로제' 검색)들은 지금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드네프르강 하류 지역에 살았는데, 이곳에서 오스만 투르크를 무찔렀음에도 불구하고 술탄 메흐메트 4세가 자꾸 자기네한테 머릴 조아리라고 최후 통첩을 보내왔다 한다. 아재들이 그걸 받아보고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나머지, 갖은 욕설을 정성스레 쓸어담아 답장 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