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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5월이 아니면 휴가 갈 틈을 못 낼 것 같아서, 한 달쯤 전 어느 날 밤에 그냥 5월에 휴가 가야겠다고 다짐했다.그 다음 날 아침에 "휴가 내겠습니다" 선언. 그때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이란 책이 떠올랐다.그래서 그날 점심시간에 서울-시안, 시안-둔황 왕복표 발권 완료. 여행을 그냥 이렇게 정해 버렸다. 이제 그 시안-둔황 여행이 2주도 채 남지 않아서, 모처럼 퇴근하고 카페씩이나 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1권을 복습하고 집에 돌아와 과거 기록을 뒤적거려 봤다. 2011-2012년에 찍은 사진도, 당시 여행 중 썼던 수첩과 일기도 찾아다 놓았다. 중국 서역 여행은 2011-2012년 이후로 15년 만이다. 그 여행은 이후로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유럽이나 러시아나 미국 인도 등 하등의 상..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인가명사와 동사 수 일치는 수능 문제로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의외로 꽤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아래 사례를 봅시다. and로 연결된 두 명사(구). 얼핏 보기엔 복수입니다. 뒤의 CEO에 과연 the를 붙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것이 좀 헷갈렸습니다. 왜냐면 영어 초보일 때 관사를 빠뜨리는 실수를 많이 했으니, 모든 명사 앞에 뭐라도 붙여야 할 것만 같았거든요. The founder and CEO is attending the meeting.The founder and the CEO are attending the meeting. 앞 문장에서 the는 맨 앞에 단 한 번만 등장합니다. 화자는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라는 두 역할을 가진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
응고와 기화, 유계화와 무계화1편에서 명사는 화자가 씌우는 테두리의 두께에 따라 명사의 가산성 여부와 의미가 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테두리 씌우기"는 형태 없는 것에 테두리를 씌워 덩어리로 굳히는 작용이 있고, 반대로 단단한 실체에서 테두리를 벗겨내 추상적 기능만 남기는 작용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비유적으로 전자를 응고(solidification) 즉 유계화, 후자를 기화(vaporization) 즉 무계화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두 작용은 정반대 방향 같지만, 실은 "화자가 대상의 어느 층위에 시선을 두는가"라는 동일한 인지 작용의 양면입니다. 그리고 이 양방향 운동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순간, 한국인 학습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영역, 즉 추상명사의 관사 유무와 직위·기관 명사의 무관사 사..
가산/불가산 넘어서기저는 중고등학교 때 영어 시간에 물질명사를 배우면서 water는 셀 수 없는데 tears는 셀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가 찼습니다. information은 셀 수 없는데 feelings는 셀 수 있다니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더 문제는, 분명히 불가산으로 배운 단어가 원어민 텍스트에서는 아주 심심찮게 a를 달고 등장하거나 복수형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two coffees, various waters, a deep knowledge. 영어 사전이 거짓말을 한 걸까요. 거짓말은 아닙니다. 다만 사전은 명사를 대략 분류했을 뿐이고, 원어민의 머릿속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은 가산명사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어떤 덩어리로 파악할 것인지입니다. 인지언어학의 표현을 빌리자..
앞선 글에서 이어지며우리는 1편에서 일본어 'である'를 풀어 "~로서 있다 = 이다"라는 등식이 어원적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한국어 '이다'와 '있다'는 별개의 어휘이지만, 두 언어가 "계사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공유하는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었습니다. 2편에서는 "자격이 곧 장소"라는 인지언어학적 원리를 따라가며, 한국어 '에·에서·(으)로'와 일본어 'に·で·へ'가 놀라운 평행을 이루고 있음을 보았습니다.이번 편에서는 시야를 한일 두 언어 바깥으로 넓힙니다. 원글의 저자는 첫 번째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중국어의 有와 是와 在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지만 각 글자의 생성연원도 잘 모르고, 무엇보다 중국어는 문법적으로 한국어나 일본어와는 확 달라서 단순비교가 어려우니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기..
1편에서 이어지며1편에서 우리는 일본어 'である'를 풀어 "~로서 있다 = 이다"라는 등식을 확인했습니다. 일본어의 계사(="~이다"라는 뜻을 만들어주는 단어)가 존재동사(="있다")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은 학계에서 확정된 사실이었고, 원글의 직관은 그 사실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반면 한국어에서는 '이다'와 '있다'가 별개의 어휘라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원글의 저자가 던져 놓고 깊이 들어가지 못한 또 하나의 직관을 따라갑니다. 원글에서 'で'를 설명할 때 "도구 혹은 자격의 의미가 있는 조사"라고 썼는데, 이 'で'는 동시에 장소를 나타내는 조사이기도 합니다. "学校で勉強する(학교에서 공부하다)"처럼요. 자격과 장소 — 전혀 다른 개념 같은데, 왜 같은 조사를 쓸까요? 그리고 한국어 조사..
안내: 이 시리즈는 제가 2015년과 2024년에 일본어의 である에 대해 쓴 두 글(1편, 2편)을 바탕으로, AI(Genspark 딥 리서치 및 Opus 4.6)와의 대화를 통해 내용을 확장한 결과물입니다. 본문에서 ‘원글의 저자’가 저를 가리킵니다. 저의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AI가 어원 조사한 부분을 보강하여 작성한 글을 제가 편집했기 때문에 3인칭 서술 처리했습니다. 시리즈를 시작하며이 시리즈는 bravebird 블로그의 두 편의 글에서 출발합니다. 원글의 저자는 2015년도에 일본어를 배우다가 흥미로운 발견을 합니다. 일본어에서 "학생이다"를 문장체로 쓰면 "学生である"가 되는데, 이 'である'를 뜯어 보면 'で(~로서) + ある(있다)'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학생으로서 있다"가 곧 "학생이..
중국어에서 "有가 무슨 뜻이야?"라고 물으면 대부분이 "있다, 가지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로 有가 쓰이는 곳을 살펴보면, 소유("나는 책이 있다")부터 존재("집에 손님이 있다"), 비교("이 나무는 그 건물만큼 크다"), 주로 방언적인 용법이지만 완료상 강조("나는 북경에 간 적 있다")까지 용법이 매우 다양합니다. 게다가 有가 들어간 문장은 담화 안에서 특별한 기능도 수행합니다. 이 글에서는 有의 모든 용법이 결국 하나의 중심 의미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 의미가 有자문이 담화 내에서 수행하는 기능까지 관통한다는 것을 풀어보겠습니다. 有의 중심 의미: "손에 고기를 쥔 상태"有라는 글자의 유래에 대해서는 손을 형상화한 又와 고기를 뜻하는 肉이 결합한 것이라는..
"어떤 한 사람이 왔다." 이 문장을 중국어로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순서로, 어떤 구조로 배열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기도 하고, 원어민이 거의 쓰지 않는 어색한 문장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비교할 세 문장은 이것입니다.① 一个人来了。 ② 来了一个人。 ③ 有一个人来了。 셋 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떤 한 사람이 왔다"입니다. 해석 자체는 초급 학습자도 할 수 있을 만큼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①번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부자연스럽고, ②번과 ③번만 자연스럽습니다. 왜 그럴까요? 중국어는 영어와 문장을 만드는 원리가 다르다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중국어가 영..
5월에 둔황에 간다. 혼자 가는데 중요 관광지 여러 개가 상당히 거리가 멀어서 반드시 차량 대절을 하든 투어 신청을 해야 하는 곳이다. 오늘 투어 문의차 위챗에서 유스호스텔 직원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 대화에서 내 대사만 뽑아와서 NotebookLM에게 표현 개선 제안을 시켰다. NotebookLM에는 어제 Claude Opus로 만든 상세한 마스터 프롬프트를 집어넣어 놓았는데, 표현 제안은 해주되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말라고 했다. 내가 직접 교정 이유를 추론할 수 있고, 모르면 질문할 거라고 했다. 오늘 교정받은 내용과 그 이후에 나눈 대화는 정말 너무 중요한 내용이므로 나 자신을 위해 남겨 놓지만, 영어와 중국어에 관심이 깊으시다면 한번 인내심을 갖고 읽어보시면 매우 도움 받으실 내용이라고 확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