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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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2012년 둔황 시안 기억 뒤적이기

bravebird 2026. 5. 5. 01:22

5월이 아니면 휴가 갈 틈을 못 낼 것 같아서, 한 달쯤 전 어느 날 밤에 그냥 5월에 휴가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휴가 내겠습니다" 선언. 그때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이란 책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날 점심시간에 서울-시안, 시안-둔황 왕복표 발권 완료. 여행을 그냥 이렇게 정해 버렸다.
 
이제 그 시안-둔황 여행이 2주도 채 남지 않아서, 모처럼 퇴근하고 카페씩이나 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1권을 복습하고 집에 돌아와 과거 기록을 뒤적거려 봤다. 2011-2012년에 찍은 사진도, 당시 여행 중 썼던 수첩과 일기도 찾아다 놓았다.
 
중국 서역 여행은 2011-2012년 이후로 15년 만이다. 그 여행은 이후로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유럽이나 러시아나 미국 인도 등 하등의 상호 연관성 없어 보이는 지난 10여 년의 모든 여행지, 이 블로그에서 지껄이는 대다수의 글, 그간 선택한 외국어, 관심사 및 하는 일,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 이 모든 것이 중국 서역 여행과 직결되어 있다. 그 정도로 나라는 인간의 한 뿌리를 형성했고 앞으로도 평생 영향을 미칠 사건. 관련글은 이 블로그에 너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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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대학 은사님 한 분을 두 번 만나뵈었다. 두 번 모두 선생님께서 밥을 사주실 것이 분명한지라 챙겨 간 선물이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이다. 책장에서 내 책을 포스트잇이 붙은 그대로 꺼내 들고 갔다. 이 책은 아주 아끼는 책임에도 블로그엔 아직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왜냐면 아직도 진행 중이라 의미와 해석이 실시간으로 더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글로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뭔가를 글로 쓴다는 건 그 대상이 이젠 과거형이며 거리가 많이 벌어져 있어서 해석도 어느 정도 고정되었다는 의미거든. 근데 내게 둔황은 그렇지 않다.
 
하여튼 이 정도임에도 15년 만에야 돌아가게 된 것은 선생님께 드린 『둔황』이 문득 떠오른 까닭이 크다. 또 무비자 특수를 누려야겠다는 것도 한몫했다. 중국은 그동안 비자 수속이 비싸고 번거로워서, 내 관심의 크기에 비해 발길이 자주 닿지는 않는 나라였다. 돌아가더라도 항상 가깝고, 내가 살았었고, 친구들이 있고, 한 도시 안에서 전부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한 베이징만 갔다. 이번에 서울로부터 한참 먼 둔황까지 굳이굳이 가기로 한 건 진짜 큰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래서 시안으로 들어가서 국내선을 타고 간다.
 
둔황에 반드시 되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막고굴을 다시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명사산 월아천을 안 보고 온 것이 크다. 2012년에 갔을 때는 피부가 쩍쩍 갈라지는 한겨울인 2월이었다. 당시는 1개월 반 이상의 서역 여행으로 좀 지쳐 있었다. 또한 매우 춥고 황량한 극 비수기였다. 둔황은 여행의 거의 막바지였기에 방에서 휴식하다가 명사산을 생략해 버렸다. 어떻게 그런 만행을…? 언젠간 당연히 돌아오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던 거지. 그 떡밥을 이제야 회수하러 가는 것. 이번엔 둔황에만 거의 1주일 가까이 할애해서 서천불동과 유림굴까지 다 보려고 한다.
 
시안은 둔황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길에 의무감으로 들른 곳이라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사진을 찾아보니, 이번에 가려던 섬서성 박물관에 이미 갔다 왔더라. 일기장을 뒤져 보니 생각보다 섬서성 박물관이 재미 없었고 란저우에 있는 간쑤성 박물관이 훨씬 더 재미났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정작 간쑤성 박물관에선 마답비연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더라. 이번에 하루 전체를 할애해서 섬서성 박물관 본관과 진한(秦汉) 전시관을 전부 보려던 계획을 아무래도 재고해야 하나 싶다.
 
시안에선 법문사 +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건릉 + 한무제와 위청과 곽거병의 무릉을 하루에 묶어서 다녀올 수 있는 당일 투어를 현지에서 등록할 수 있다면, 이걸 가볼까 생각 중이다.
 

2011-2012년 중국에서는 여행 시간과 숙박비를 동시에 절감하는 일타쌍피를 추구하며 항상 밤기차를 타고 다녔다. 그 밤기차에서 애용한 전등이다. 손잡이를 돌리면 불이 켜진다. 이 조그만 불빛을 비춰 가면서 글을 읽거나 일기를 쓰다가 잤다. 항상 짐 지키기에 유리하고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지 않는 잉워 위칸으로 예매했었다. 중국 야간기차는 정말 많이 탔고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난 이게 내 중국어 회화의 밑천이라고 확신한다.
 
이 야간 이동은 현재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뿌리 깊은 전통이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왕복도 12시간? 개이득! 하면서 무조건 밤기차만 탄 것이 총 4번이다. 델리-다람살라 12시간? 야간버스. 콜카타-실리구리 10시간? 야간버스. 뭄바이-아우랑가바드 12시간? 야간버스. 이게 참 이동 시간도 아끼고 여행 시간도 1분도 안 잃고 돈도 아끼고 추억도 낭낭하게 쌓는 방법이다.
 

둔황 양관, 옥문관 인근 풍경
 

둔황 시내로부터 양관, 옥문관 방면은 상당히 먼 길인 데다 당시는 비수기였으므로 택시 한 대를 전세 내서 다녔다. 이번에는 아예 성수기이기도 하고, 숙소도 당일 단체 투어 예약이 쉽도록 유스호스텔로 예약했다. 위챗으로 서쪽 노선(양관, 옥문관, 서천불동 방면), 동쪽 노선(유림굴, 서진묘 방면) 모두 문의를 마쳤고 전날 등록하면 다음 날 출발하는 투어가 매일 있다고 한다.
 

옥문관 뒤태로 기억함. 저기가 정말 황량한 사막지대라서 (조금만 더 가면 신장 위구르 자치구) 그냥 온 천지가 다 비슷비슷한 모래 색인데, 사진으로 찍고 나니 흙무더기 부분은 더 어두운 흙빛으로 찍혀서 좀 신기했다.
 

양관과 옥문관 인근의 한장성으로 기억함.
 

옥문관. 이곳이 바로 서역의 입구. 
 

막고굴 전시실에 있는 네팔 스타일 불상.
 

막고굴 전시실에 있는 벽화 모사도. 막고굴에서 벽화나 불상 등의 진본은 아무것도 촬영할 수 없다. 난 이렇게 아름답게 퇴색한 둔황 벽화들이 너무 좋다. 런던에, 파리에, 서울에, 도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보스턴에 흩어져 있는 유물 말고, 현지에서 진본을 다시 보고 싶어서 돌아간다. 
 

병마용. 정말 크고 황폐함. 상태가 멀쩡한 부분은 이렇지만, 다 깨지고 부서져서 널려 있는 부분도 많음.
 

시안 시내 이슬람 거리. 이번에 지낼 숙소 근처일 것 같다. 중국 무슬림 음식이 개꿀맛이므로 많이 먹을 예정.
 

시안 대청진사. 즉 그랜드 모스크.
 

 

섬서성 박물관에 전시된 당삼채. 
 

 

시안 여행 부분은 일기가 성의가 없네 ㅋㅋㅋ 당시 여행 1개월 반 동안 버트런드 러셀 『The Conquest of Happiness』 이거랑 미야자키 이치사다 『중국중세사』 갖고 다녔고 여전히 내 방에 지금 있음. 이번에 가져갈 후보 책은 곧 골라 볼 건데, 내 방안에 꽂힌 책 중에 서역과 관련된 덜 읽은 책만 20권이 족히 넘을 것이다...
 

교환학생 갈 때 중국 여행 환타 책으로 한 권 들고 갔는데 장기여행 중에 무거우니까 필요한 부분만 분책해서 갖고 다녔고 시안 부분이 아직도 일기장에 낀 채로 남아 있다. 
 

당시 둔황에서 지냈던 숙소명, 숙박비, 전화번호, 둔황-시안 잉워 기차표 현황까지 다 메모돼 있음. 그땐 생존상의 필요로 인해 끄적인 거지만 이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그냥 역사 그 자체가 되어버렸음. 
 
여행하는 거랑, 사진 찍고 글 쓰는 거는 완전히 다른 속성의 일이라서 나는 병행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아무 것도 안 남기면 다 잊어버린다. 그래서 여행 때만 휘갈겨 쓰는 수첩이나 일기장을 지참하는데 이번에도 가져가서 졸리더라도 부지런히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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