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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1) 폴 펠리오 본문

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파리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1) 폴 펠리오

bravebird 2016. 10. 14. 21:23


파리에 간 첫 번째 이유,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는 폴 펠리오가 둔황에서 가져온 문헌이 그득하다면, 이곳에는 유물이 모여 있다.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탔는데 도버 해협의 해저터널로 들어가는 순간에는 바보같이 실컷 잤다. 깨 보니 이미 파리 근처였고, 숙소에 짐을 두고 기메 박물관으로 가니 4시 무렵이었다.



에밀 기메 초상화


기메 박물관은 리옹 출신의 실업가이자 동양 예술 애호가였던 에밀 기메가 설립했다. 인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의 많은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아시아 외부에 있는 아시아 예술 박물관 중에서 최대 컬렉션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다. 1945년도에 이집트 예술품을 루브르로 넘겨주고 루브르로부터는 아시아 예술부에 있던 문화재를 넘겨받았다. 이곳 지하에는 아시아 고고학, 미술사학을 테마로 한 커다란 도서관도 있고 장서량도 상당한데 메일을 보내서 물어보니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가기 전에 몇 권 책을 봐놓기는 했는데, 박물관 도착 시간 자체가 좀 늦어서 가보지 못했다.



기메 박물관의 폴 펠리오 컬렉션 안내판. 히라야마 이쿠오라는 일본 화가이자 실크로드 문화재 수집가의 기증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둘 사이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직 찾지 못했다.


기메 박물관 폴 펠리오 컬렉션은 굉장히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문화재가 많지 않았다. 왜인고 하니, 펠리오의 본분이 고고학자가 아닌 문헌학자였기 때문이다. 펠리오가 참여한 프랑스 탐험대의 1차 원정은 1906년 8월 말의 카쉬가르 방문이었다. 이미 2개월 전에 오렐 스타인이 다녀간 곳이었지만 6주 동안 머물며 발굴 작업을 실시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독일인, 일본인, 러시아인들이 쿠차의 천불동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10월에 카쉬가르를 떠나 2주 후 툼슉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스벤 헤딘이 이미 방문한 곳이었다. 그렇지만 펠리오는 이전에는 발견된 적이 없는 불교 성소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12월에는 쿠차로 떠나 1월 초에 도착하여 고문헌 발굴에 착수했다.



Head of a bodhisattva. Tumshuq, Toqquz-sarai, Large temple B with bas-reliefs. 6th-beg. of 7th c. CE. Partially baked clay. 36 x 25 x 18 cm. Pelliot expedition 1906-1909.


쿠차에서 8개월을 보낸 후에는 우루무치를 지나서 둔황에 도착하여 2월부터 6월까지 머물렀다. 이미 스타인이 둔황 막고굴을 다녀간 후였지만 문헌학 훈련을 받지 않은 스타인은 이곳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지는 못했다. 이에 펠리오는 막고굴의 동굴들을 조사하는 한편 3월 3일 드디어 장경동에 입장한다. 스타인은 장경동에 입장하기 위해서 고용인을 통해 현장법사의 추종자를 자칭하는 방법으로 문지기 왕원록 도사의 환심을 사고 구워 삶았다. 이것은 실질적인 사기라며 두고두고 비난을 받았다. 반면 펠리오는 고문헌을 헐값으로 대량 반출해서 비난받은 것은 스타인과 마찬가지이지만, 기가 질릴 정도의 중국어 솜씨로 직접 왕원록 도사를 설득시켰다.



Bodhisattva or devata. Kucha, Duldur-aqur, base of central stupa. 6th-7th c. CE. Embossed and engraved copper. Pelliot expedition, 1906-1909.


펠리오는 언어의 천재이자 문헌학의 대가였기 때문에 수천 점의 문헌 중에서 새로운 정보가 들어 있거나 언어학·서지학적으로 흥미로운 정수만을 쏙쏙 골라냈다. 중국어,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위구르어 등 방대한 고문헌을 3주 동안 초인적인 속도와 무서운 집중력과 포토그래픽한 수준의 기억력을 바탕으로 전수 조사하였다. 조상과 실크 회화도 조금  챙겼으며 이것들이 지금 기메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펠리오가 수집한 문헌 중에는 경전 등의 종교 텍스트도 있었지만 당시 해당 지역의 생생한 생활상을 보여주는 세속 텍스트도 많이 섞여 있어 더욱 가치가 높다. 고문헌 까막눈이다 보니 일정상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포기했지만, 국제 둔황 프로젝트나 프랑스 국립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고, 학교 도서관에도 발간이 되어있어서 필요하면 내용을 볼 수 있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러시아, 프랑스 둔황 및 서역 문헌 총서


펠리오 2차 원정은 1908년이었다. 이때 원정대는 시안에서 발굴품을 정리하고 베이징으로 보낸 다음 최종적으로 파리에 부칠 준비를 했다. 2년 후 다른 동료들은 베이징을 거쳐 파리로 먼저 돌아갔지만 펠리오는 남아서 몇 가지 고문헌들을 선보이고는 베이징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때서야 베이징에서는 둔황 장경동 문헌의 가치를 깨닫고 수복을 시도한다. 


https://depts.washington.edu/silkroad/museums/mg/mg.html

이 곳에서 기메 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컬렉션 소장품과 캡션을 참조할 수 있다. Western China 드롭다운 메뉴에서 Dunhuang, Kucha / Khotan, Tumshuq를 선택 가능하다. 방문 당시에 왠지 모를 피로감에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는데 잘 정리된 사이트가 있어서 편리하다.


다음 편에는 이 기메 박물관 중앙아시아 전시실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본 다른 탐험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것이다. 뭐 하는 사람이었는지만 간단히 보려고 검색했다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줄줄이 알사탕으로 따라와서 별도의 글로 독립시킨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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