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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 전시 관람

bravebird 2016. 9. 4. 23:41






보려고 노리고 있던 전시인데 마지막 날에 드디어 사수했다. 작년에 러시아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의 틸리야 테페 발굴 이야기를 우연히 접한 적이 있는데, 오래지 않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해주길래 신기했다. 이 사리아니디의 아프가니스탄 박트리아 유적 발굴에 대해서는 《보물 추적자》라는 책의 첫 번째 챕터에 재밌게 잘 쓰여 있다. 참고로 두 번째 챕터는 중국령 투르키스탄(신장)과 둔황의 실크로드 유물을 가져간 열강 탐험가들 이야기다.



틸리야 테페 출토 금관


홀이 하나뿐인 크지 않은 전시실에서 열린 특별 전시였는데 볼거리는 풍부했다. 인터넷 사이트와 앱을 통한 무료 오디오가이드도 큰 도움이 됐다. 가장 봐둘 만한 건 틸리야 테페 고분군에서 나온 금관. 국사책에서 익히 봤던 신라나 가야 금관이랑 상당히 비슷하다. 둘 사이에 구체적인 영향 관계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얼핏 보기에도 아주 비슷하다. 이 금관은 스키타이와 흉노 등 북방 유목민족의 영향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한반도 남단에 있었던 신라나 가야도 유목문화와 모종의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나 싶다. 한반도 고대사는 정말 미스터리하고 흥미롭고 채워나갈 공백 역시 아주 많아 보인다. 이 분야에 더 많은 재원이 투명하게 투자가 되고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어서 훌륭한 연구가 많이 생산되었으면 좋겠다. 




아프가니스탄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수많은 그리스인이 이곳에 정착했고, 북아시아 스텝 지대에서 흉노에 쫓겨 남하한 월지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박트리아인 역시 이곳에 살았다. 이들은 그리스 헬레니즘과 인도,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요소를 모두 보여주는 그리스-박트리아 예술 양식을 꽃피웠다. 이번 전시에서도 주름이 뚜렷한 튜닉을 입고 있는 전사의 기마상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와 아테나 여신의 완연한 모습을 담은 조각상도 볼 수 있었다. 수 세기 전의 아프가니스탄 유물에서 활 든 아기천사 에로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세력권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박트리아 지역은 조로아스터교의 주요 세력권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그리스-박트리아 양식은 무려 대승불교에도 응용되어 간다라 양식으로 발전했다. 간다라 양식 이전에는 '해탈한 자'라는 관념을 위해 보리수나무 아래의 빈 자리 같은 추상성으로 재현되곤 했던 부처가 간다라 양식을 통해 인간의 구체적인 모습을 얻었다. 우리가 불상 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 즉 뚜렷한 주름이 진 그리스 튜닉 비슷한 옷을 입고 가부좌를 틀고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부처가 바로 간다라 양식의 부처다. 이 불상 양식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 내륙으로 전파되면서 경주의 석굴암 불상에까지 그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탈레반의 폭격을 받고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바미얀 불상이 바로 이 간다라 미술의 대표작이다. 흔히 이슬람 원리주의와 테러리즘, 그리고 수많은 내전과 강대국의 패권 전쟁과 인명 피해를 연상시키는 아프가니스탄이 한때는 수많은 종교와 문명의 교차점이자 발상지였음을 기억하게 해준 훌륭한 전시였다. 가보기도 쉽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국립박물관의 귀한 유물을 여기 안마당에서 무려 공짜로 구경할 수 있어서 무척 감사하다. 잘 쓰인 세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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