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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표트르 코즐로프는 러시아의 실크로드 탐험가 중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와 함께 제일 유명하다. 프르제발스키가 발탁한 제자이자 동행이었다. 심지어 둘은 비밀 연인(!)이었을 거라는 설이 프르제발스키 전기에 등장할 만큼 각별한 관계였다. 프르제발스키는 평소에 자기 부하가 결혼을 하면 실연당한 것처럼 질투하고 슬퍼하며 결혼을 매우 막았다고 한다. 덕분에 동성애자였다는 추측을 많이 받는다. 여하튼 코즐로프는 프르제발스키 사후에도 독자적인 탐험 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고비 사막의 버려진 도시 카라 호토(흑수성)를 발굴해 내어 서하 왕조(1038–1227)의 전모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카라 호토는 서하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서하는 티베트·강족 계통의 탕구트인이 북중국 고비 사막에 세운 국가다..
올해 6월 초 백야 때 스톡홀름이랑 같이 상트페테르부르크도 갔었는데 이제 올린다. 나는 글쓰는 데 진짜 게으르고 특히 여행기 같은 사사로운 이야기는 길게 못 쓴다. 정말로 아름다운 곳에서 잘 놀고 푹 쉬다 왔으니 지금 와서 글로 남기든 말든 아무런 관계 없지만, 사진첩 정리하다 보니까 홀랑 까먹기 전에 조금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네 번째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회사 사람들은 왜 자꾸 러시아를 가냐고 하기 때문에 그냥 스톡홀름 갔다왔다고 했다. 임원 한 분이 내가 러시아 다니는 걸 희한하게 여겨서 소문을 내신다. 사적인 대화 한 마디 해본 적 없는 옆팀 팀장이 그 분한테 들었는지 워크샵에서 갑자기 "그렇게 러시아가 좋으면 주재원 하나 잡아요. 내가 보기에 주재원 와이프가 팔자 최고야." 이러길래 양..
올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에서는 중앙아시아 탐험가들의 흔적을 더 찾아보는 게 목표 중 하나였다. 그 타겟 중 하나가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는 1839년에 태어나 1888년에 사망한 러시아의 군인이자 탐험가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근데 서양인 탐험가 중 하나다. 시베리아, 몽골 및 고비사막, 티베트 고원, 암도 티베트(현재의 칭하이 지역), 준가르 분지의 천산 유역, 북중국 등 광활한 지역을 폭넓게 어행하였으나, 본인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티베트 라싸에는 아쉽게도 닿지 못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프르제발스키의 탐험 중에 마침 회족 무슬림 반란이 일어났다. 둥간 반란(Dungan Revolt)이라고도 알려져있는 매우 유명한 사건으로, 신장 지역의 회족 무슬림들이 코칸드 칸국의 칸인..
올해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때 발견한 낙서들. 두번째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8시부터 밖에 나갔었다. 그때 표트르 대제에게 인사하러 가다가 봤다. "백인들을 위한 러시아" "인종주의" "루시인들을 위한 러시아" "사랑은 희어야 한다. 이 벤치처럼." 이건 첫번째 단어가 뭔가의 약자이다. 아는 분한테 여쭤보니 뒤의 두 단어는 "흑인들을 처먹어라"라는 뜻이란다... 러시아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스킨헤드 없냐고 걱정을 많이 해준다. 나는 밤늦게도 많이 나다녔지만 스킨헤드 같은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고 무서운 느낌도 전혀 안 들었는데, 새하얀 벤치에 이렇게 떡하니 인종주의 멘트가 적혀있는걸 보니 갑자기 좀 낯설게 느껴지기는 했다. 저곳도 삶이 팍팍한 거로구나, 생각했다. 이날 알렉산드르 아저씨가 가르쳐..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밥 먹고 레닌그라드 봉쇄시기 기념박물관 갔다. 저번 여행 때 정치사 박물관이랑 같이 보려다가 못 간 곳이다. 8월에 베를린행이 예정돼 있어서 절대 빠뜨리면 안 되는 행선지 중 하나. 1945년 5월 9일 대독일 반파시스트전쟁(대조국전쟁) 승리일의 프라우다.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레닌그라드 봉쇄 개념도. "우리의 명분은 정당하다. 승리는 우리 것이다." 글씨가 일부 안 보이긴 한데, "우리는 오데사와 스탈린그라드를 수호하였고 베를린에 당도했도다!" 레닌그라드 봉쇄 해제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연주회 광고. 독일군에 원천 봉쇄되어 생명이 꺼진 줄 알았던 도시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온 세계에 알린 사건. 파시스트 야만인들이 소비에트 땅이라곤 한 발자국도 못 밟게 만들겠..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입성. 이번에도 역시 도스토예프스키가 몽롱하게 돌아다녔을 카잔스카야 거리에 묵는다. 방을 잡고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탈리아 음식점 수프 비노 바로 맞은편이네. 오후 2시가 체크인이라 짐 풀고 씻은 다음에 바로 들어갔다. 12월에 갔을 때 일하고 있었던 알렉세이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빙긋 웃음이 나왔지만 모른 척 태연히 앉았다. 옷도 그때랑 똑같은 하늘색 티셔츠네! 음악도 여전히 약간 몽롱한 분위기 있는 앰비언스 계통. 모든 게 여전해서 마치 날 기다려준 것만 같아 무척 반갑다. 이렇게 먼 도시인데 돌아오면 편안한 곳이 생겼다. 그래서 간 곳을 계속 찾는다. 알렉세이는 12월에 갔을 때 말 몇 마디 해보았다. 차분하고 젠틀하고, 무엇보다 웃는 얼굴이 편안한 사람이다...
Тимур Петрович Новиков. Фонтанка. 1980티무르 페트로비치 노비코프. 판탄카 운하. 1980년 작. 러시아박물관 페이지에서 우연히 보고 며칠 동안 눈앞에 어른거려서 가져왔다. http://www.timurnovikov.ru/는 화가의 홈페이지.
휴가 어디 갈지 고민하던 중 스톡홀름에 실크로드 관련 박물관이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검색하다가 우연히 찾은 읽을거리, Fraternity on the Silk Road: The Relationship of Aurel Stein and Sven Hedin. 오렐 스타인의 약탈품이 고스란히 방치돼 있다는 대영박물관에서 만든 자료인 것 같다. https://www.britishmuseum.org/pdf/9-Morin%20pp.pdf로 가면 원문을 바로 볼 수 있다. 스벤 헤딘은 스웨덴 출신의 탐험가로 신장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비롯하여 티베트 등지를 탐험하고, 특히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소금호수 로프 노르 인근의 누란 왕국 고적을 발견한 최초의 서양인이다. 오렐 스타인은 헝가리 고고학자로, 스벤 헤딘의 선행 탐..
전날 들어가보지 못한 예술아카데미와 멘시코프성을 들어가보려고 네프스키 대로를 따라 겨울궁전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우연히 악보와 CD를 파는 상점을 발견하고는 안에 들어갔더니 클래식 음반이 그득했다. 예브게니 오네긴 DVD나 CD를 사올 생각이었지만 마린스키 음반가게에서 못 구했기에 반갑게 집어 들었다. 조금 더 구경했더니 욕심나는 음반들이 많이 있었다. 가격을 살펴보고 부담없이 다 사왔다. 가격 자체가 한국 CD보다 저렴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환율이 반토막 난 덕분. 한 번도 CD 5장을 한꺼번에 산 적은 없었다. 1. 안톤 루빈슈타인 - 악마 2. 차이코프스키 - 마제파 3. 차이코프스키 - 예브게니 오네긴 4.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앨범 5. 미콜라 리센코 - 타라스 불바 이 중에 예브게니 오..
찬란한 날이었다. 한국에서 사간 사냥꾼 모자를 쓰고 나갔다. 카페 싱어에서 아침을 먹고 겨울 궁전을 지나 다리를 건너 바실리예프스키 섬으로 갔다. 가는 길에 눈 내린 풍경이 멋져서 또 엄청나게 프로필 사진용 셀카를 찍었다. 사실 러시아에서 사냥꾼 모자 쓰고 사진 찍는 게 오랜 꿈이었어서 원없이 그렇게 했다. 유빙이 떠다니는 네바 강은 어제 봤지만 그 다음날 봐도 아름다웠다. 또 엄청난 시간을 네바 강과 하늘 바라보는 데 보내고 오후가 되어서야 쿤스트카메라에 도착했다. 쿤스트카메라에서는 동양학 연구의 일환으로 탐험대를 파견하는 것 같았다. 내가 관심 있는 중국령 투르키스탄(신장)에도 비교적 최근에 탐험대를 파견해서 이런저런 사진 찍어 왔고 이런저런 볼거리도 마련해 놓았다. 예전에 에르미타주 갔을 때 중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