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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초마가 잔스카르에 다시 나타난 것은 푼촉에게 부담이었던 것 같다. 당시 티베트는 은둔 국가였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티베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간첩 행위로 간주될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푼촉은 장라보다 더 외진 곳으로 가자고 했다. 바로 잔스카르의 푹탈 사원이다. 푹탈 사원은 잔스카르의 하이라이트 그 자체이자 내가 잔스카르에 간 이유이다. 2019년 심라에서 만난 콜카타 친구 라제스와리가 2022년에 추천해준 후 꼭 가고 싶었다. 라제스와리는 도로가 부설되지 않았을 당시 3일씩이나 트레킹을 해서 푹탈 사원에 갔다. 라제스와리가 일부러 고생을 자처한 게 아니라 걸어서만 갈 수 있을 만큼 심산유곡에 있다. 2024년 6월 23일에 내가 갔을 때는 접근성이 대폭 개선되어서 트레킹은 단 1시간이 걸렸다. 잔스카르 ..
6월 29일 토요일 라다크 잔스카르 밸리의 중심지인 파둠을 떠나서 레로 왔다. 그 전날인 6월 28일 금요일 아침, 초마가 승려 푼촉과 함께 면벽 수행하듯이 티베트어를 공부했던 장라 고성(Zangla Palace)에 다녀왔다. 장라 고성은 파둠 중심부에서 33km 정도 떨어져 있다. 파둠에서 지낸 게스트하우스 호스트 리즈완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데리고 가줬다.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길에 있는 주요 볼거리 총 세 군데(카샤 사원, 실라 폭포, 걀와 링나)도 데려다 줬다. 잔스카르는 워낙 외진 데여서 다른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없었기에 혼자 택시를 대절하려면 금액이 상당해서 못 갔을 것 같다. 게다가 난 게스트하우스 방도 1박 500루피에 혼자서 썼다. 리즈완의 가족들이 밥도 다 해줬다. 그래서 떠나는 ..
현재 히마찰 프라데시 마날리에서 이틀째다. 곧 라다크 잔스카르로 들어가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정보를 주는 인도 전문가 러시아 친구 알렉산더 덕분에 중요한 사실이 생각나서 책 한 권을 재독 중이다. 헝가리인 티베트 학자 알렉산더 초마에 대한 The Hungarian Who Walked to Heaven. 원래는 초마에 대해서 거의 몰랐다. 2022년 말에 다르질링을 갔을 당시, 알렉산더가 초마 묘소에 한번 가보라고 알려주어 알게 되었다. 초마에 대해 알아보려고 고른 이 책은 비행기 안에서 금방 끝냈을 만큼 100페이지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내용이 충실하고 흥미진진하여 추천하고 싶다. 헝가리는 민족 및 언어적으로 타 유럽국과 구별된다. 헝가리 민족의 기원은 학계의 오랜 호기심거리였으며 아시아 유목 민족인 훈..
바그도그라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도착한 구르가온에서는 너무 고맙고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누구인지는 비!밀! ㅋㅋㅋㅋ 숙소를 예약하고 미리 돈을 냈는데도 거기서 잘 수 없었던 나에게 방 한 칸을 기꺼이 내어준 은인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며칠간 데리고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시원한 차도 태워주고 인도 국립박물관도 함께 구경하고 다람살라 가는 야간 버스도 기다려 주고 모든 면에서 세심히 보살펴주었다. 덕분에 구르가온과 델리에 지내는 며칠간 그야말로 호강했고 든든했으며 즐거웠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솔직하게 나누어 주었으며 소중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한 일인데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끝까지 야무지게 자기 자신을 도운 결과 어려움을 확실..
명나라 6대 황제 영종 주기진은 연호가 '정통'과 '천순' 두 개다. 즉 두 번 즉위한 셈이고 그 이유는 토목의 변이다. 정통제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태자에 책봉되었으며 9세에 황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황제가 어리면 외척이 발호하거나 환관이 날뛰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태감 왕진은 권모술수에 능했다. 때때로 황제를 대신해 대신들이 올린 문서를 결재했다. 반면 태황태후는 현명하여 황제가 처리하는 일을 조정 중신과 상의하게 했으며, 환관 기구를 감찰하고 문제가 있으면 왕진을 소환하여 꾸짖었다. 하지만 정통 7년에 태황태후가 병으로 서거한 후, 정통 11년에 이르기까지 고명대신 역시 연이어 사망하면서 왕진이 정통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하기 시작한다. 당시 몽골은 오이라트와 타타르로 분열되어 있다..
중국사 최대의 굴욕 중 하나인 명대 토목의 변이 일어난 실제 장소 장자커우 토목보(土木堡) 유적에 다녀왔다. 요약하면 명나라 정통제가 탐관오리 환관한테 휘둘려서 몽골 오이라트 부에 포로로 잡힌 레전드 사건... ㅋㅋㅋ... 7월 6일 목요일 당일 딱 3시간 정도만 보고 바로 베이징으로 돌아와서 그날 저녁 친구가 회사 동료들과 함께 모여 법인카드로 사준 베이징 오리를 잡쉈다. 14:13 베이징 칭허 기차역(清河站)에서 출발 17:58 장자커우 화이라이 기차역(怀来站)에서 출발 11~12시 무렵 집에서 나와 기차역에 도착한 다음 직원에게 직접 왕복 표를 샀다. 택시 안에서는 여석이 많았는데 막상 역에 도착하니 실시간으로 매진이 되었다. 외국인이라 여권번호 등을 입력해야 해서 예매 기계로는 사지지가 않았다. ..
저는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중국과 인도의 석굴 사원에 흥미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올해 2월 뭄바이를 비롯한 인도 마하라슈트라 여행을 짧게 다녀오면서 최대한 많은 석굴을 보려고 했습니다. 이번에 미처 다 못 본 것이 있기 때문에 또 갈 수도 있어서 후일을 위하여 기록을 남겨 둡니다. 혹시 같은 곳을 방문하게 될 분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왜냐면 가기 전에 정보가 없어서 좀 막막했거든요. 물론 일단 가서 발부터 떼면 다 답이 나오긴 합니다만 ㅋㅋ 어쨌든 결론은 1주일새 석굴만 9개를 가는 파워 관광을 했었는데 좀 물렸습니다. 만약 석굴의 정수만을 고르고 골라야 한다면 정석대로 아우랑가바드에 가서 1. 아잔타 2. 엘로라 보시기를 가장 추천드립니다. 뭄바이에선 다른 할 것이 매..
시킴 왕조는 1642년에 건국되었다. 춤비 계곡을 통해 동부 티베트에서 시킴으로 이주해온 부티아인의 왕국이다. 시킴 땅에 원래 살던 원주민은 렙차인이며 1641년까지 이 지역을 지배했지만 당시의 문헌 기록은 없고 구전으로만 전한다. 1642년도의 건국 역시 설화처럼 남아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 전설의 고향에 다녀왔다. 펠링에서부터 일일 투어 택시를 수배해서 육솜으로 이동하면 코스를 돌고 올 수 있다. 강톡에서 펠링으로 가는 셰어 택시를 아침 일찍 탄 날 옆자리에 다운증후군 남자아이가 있었다. 정말 천사처럼 활짝 웃으면서 내 팔을 잡고 차에 타도록 도와줬다. 난 즉시 무장해제가 되었다. 덕분에 동행한 보호자와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또래여서 바로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는 셰르파였는데 역시나 내가 셰르..
J. Ware Edgar의 탐사보고서 Sikhim and the Thibetan Frontier를 끝내고 시킴에 대한 두 번째 책으로 넘어갔다. 1960년대에 시킴과 부탄에 주재했던 인도 외교관 Preet Mohan Singh Malik이 쓴 Sikkim - A History of Intrigue and Alliance인데 이것부터 읽을걸 그랬다. 첫 책은 1800년대에 쓰인 탐사보고서인데 얇지만 지명이나 인명, 당시의 직책명 같은 것들이 너무 낯설고 표기도 현대와 달랐다. 지도를 많이 들여다보고 옛 지명을 현재 지명과 대조해야 했다. 지금 책은 더 넓은 시공간적 범위를 포괄해서 다루기 때문에 첫 번째 책이 그 중 어떤 시공간을 배경으로 쓰였는지 뒤늦게 이해되는 동시에 내가 이해를 못해서 놓친 디테일이 ..
대만 배우 임청하는 수필집 세 권을 냈다. 가을부터 계속 오디오북을 들어왔는데 마지막 권 云来云去를 어제 끝냈다. 마침 거의 끝부분에 뉴델리에서 대보법왕(카르마파)을 친견한 에피소드가 있어서 지나칠 수 없었다. 임청하는 우울증으로 평생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나오면 너무 괴롭다는 이야기를 카르마파께 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듣더니 '당신이 행복하면 어머님도 행복하십니다'라는 말로 위로해주었고 임청하는 많이 울었다고 한다. 대보법왕(카르마파)은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중 카규파의 수장이며 명나라 영락제가 내려준 칭호이다. 카규파 중에서도 분파가 있는데 그 중에 '카르마'라는 분파가 있다. '카르마파'라는 명칭에서 '파'가 '분파'라는 뜻일 것만 같은데 티베트어로는 대략 '사람'이라는 의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