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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이 책은 1997년에 출간되었으며 현지 조사는 1980년대에 이뤄졌으니 책 속 내용은 거의 30년이 지난 이야기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장에 대한 관심이 뜸하고 연구가 드물었던 시절의 인류학 현지 조사 결과이기에 나름 신장 관련 필독서일 것으로 예상이 된다. Identities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신장 내에서 경합하는 여러 정체성에 대한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위구르 농민 계층은 지리적 이동이 거의 없기에 자신이 속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스스로의 집단 정체성을 규정한다. 반면 상인 계층은 중국 내지의 대도시와도 교류하므로 신장의 범주를 넘어 중국 공민이라는 의식 역시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와는 달리 지식 계층은 주로 한족과의 대비를 통해 위구르라는 민족 의식을 강조하며 ..
표트르 코즐로프는 러시아의 실크로드 탐험가 중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와 함께 제일 유명하다. 프르제발스키가 발탁한 제자이자 동행이었다. 심지어 둘은 비밀 연인(!)이었을 거라는 설이 프르제발스키 전기에 등장할 만큼 각별한 관계였다. 프르제발스키는 평소에 자기 부하가 결혼을 하면 실연당한 것처럼 질투하고 슬퍼하며 결혼을 매우 막았다고 한다. 덕분에 동성애자였다는 추측을 많이 받는다. 여하튼 코즐로프는 프르제발스키 사후에도 독자적인 탐험 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고비 사막의 버려진 도시 카라 호토(흑수성)를 발굴해 내어 서하 왕조(1038–1227)의 전모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카라 호토는 서하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서하는 티베트·강족 계통의 탕구트인이 북중국 고비 사막에 세운 국가다..
1888년에 프르제발스키의 5차 탐험대는 카라콜 이식 쿨 근처에서 출발 준비를 마쳤으나 프르제발스키가 갑자기 사망했다. 탐험대는 이듬해 봄에 출발했다. 지리학회는 새로운 탐험대장으로 미하일 페브초브를 선임했다. 미하일 페브초프 준가르 사막에서페브초프를 탐험대장으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두 차례의 중앙아시아 탐험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프르제발스키처럼 그 역시 군인이었으며 합동군사참모대학을 졸업했고 어렸을 때부터 탐험을 꿈꿨다. 기분 좋은 행운이 젊은 대장을 도왔다. 1876년에 그는 자이산에서 중국 신장 치타이 현으로 가는 카라반을 지키는 카자크 100명을 이끌어줄 것을 제안받았다. 그 길은 준가르 사막의 스텝 지역에 있었는데, 페브초프는 정확한 좌표가 표시된 이 지역 상세 지도를 최초 제..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의 탐사 범위는 거대한 중앙아시아 전체를 포함하진 못했다. 몽골, 중국 서부 및 티베트 영토에는 유럽인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영역이 많이 남아 있었다. 프르제발스키와 동시대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다른 유명 탐험가들이 이 범접하기 어려운 지역을 조사했다. 중앙아시아 탐험프르제발스키가 두 번째 탐사를 시작한 1876년에 지리학회는 또다른 중앙아시아 탐험대를 꾸렸다. 북서부 몽골 조사가 그 목적이었다. 세 탐험가가 자이산에서 출발하여 몽골 알타이 산맥을 넘고 콥도에 도착했다. 탐험 대장은 전직 장교인 그리고리 포타닌이었다. 그는 갓 30세에 징역과 추방 등 많은 일을 겪었다.그리고리 포타닌 포타닌의 운명그리고리 포타닌은 옴스크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군에서 복무했으며, 이후 페테르부르크 대..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는 거의 20년간 중앙아시아의 산, 스텝, 사막을 조사했다. 중앙아시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으로 프르제발스키 이전까지는 유럽인들 중 그 누구도 방문한 적이 없는 곳이다. (역자주: 사실 스웨덴 사람인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가 1700년대 초반에 이미 준가르에 볼모로 잡혀서 로프 노르 인근에 간 적이 있다. 태그 누르면 이전글 확인 가능.) 네 번의 탐험 동안 프르제발스키는 말 위에서, 그리고 도보로 3만km 이상을 소화해 냈다. 세묘노프의 추천 프르제발스키는 군인이었다. 어렸을 때는 보병 연대에 복무했지만 탐험을 꿈꿨다. 1861년에 합동군사참모대학에 입학하여 첫 번째 지리학 저작인 《아무르 지방의 군사통계학적 개설》을 썼다. 이 저술 작업을 하면서 프르제발스키는 도서관에서 찾을 수..
지질학자 이반 무쉬케토프(Иван Васильевич Мушкетов) 또한 중앙아시아 연구자 중 하나였다. 그의 탐험은 지질학적 발견뿐 아니라 여러 흥미롭고 중요한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이반 무쉬케토프 은메달페테르부르크에서 산림 학원을 막 끝낸 22세의 무쉬케토프는 1872년에 첫 번째 탐험을 떠났다. 그는 우랄 지방에서 기존에 러시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광물 세 가지를 발견했다. 그는 곧 투르키스탄으로 떠났는데, 투르키스탄은 당시 중앙아시아 전체를 일컬었다. 무쉬케토프는 1875년에 서부 및 중부 톈산을 넘었으며, 이식 쿨 호수에 들렀고, 고산 지대에 위치한 송쿨 호수에 도달한 다음 산골짜기를 따라 내려왔다. 그는 고대 후잔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유연탄 산지를 조사하여 산업용으로 적합하다..
표트르 세묘노프-톈산스키에 의해 시작된 중앙아시아 연구는 다른 탐험가들이 계속해 나갔다. 니콜라이 세베르초프(Никола́й Алексе́евич Се́верцов)와 알렉세이 페드첸코(Алексе́й Па́влович Фе́дченко)는 1870년대에 많은 업적을 세웠다. 목숨을 걸고니콜라이 세베르초프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학에 가장 관심을 가졌다. 모스크바 대학의 자연과학부에서 수학하던 당시, 논문 주제도 고향인 보로네쉬 지역의 동물군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젊은 학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앙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57년에 톈산을 따라 여행하던 당시, 세베르초프는 아랄 해와 시르다리아 강 하류 지역을 연구하는 탐험대를 이끌었다. 이 지역은 코칸드 칸국에 속했다. 코칸드 칸국은 ..
8월 마지막주였던 이번 여름 휴가에 나는 아무 여행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러시아어 학원을 빠지지 않고 다녔는데, 대신 나름대로 휴가를 기념한다고 읽고 싶은 텍스트를 직접 가져가서 선생님이랑 같이 읽었다. 지금 학생이 나밖에 없고 선생님이랑 친해서 가능했다.201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돔 크니기에서 초등학생용 얇은 백과사전 시리즈인 《마하온(МАХАОН)》 몇 권을 사왔었다. 그 중 러시아 여행가들(Русские Путешественники)에서 중앙아시아 탐험 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다. 혼자는 영 안 읽혀서 3년째 방구석에 박혀 있다가 선생님이랑 같이 읽으니 금방이었음. 단어가 지형에 대한 게 많아서 좀 어렵긴 했다. 책 전체는 정말 알차고 특별한 것이 시베리아, 북극, 알래스카, 캄차트카 반도, 중앙아..
티베트 통사에는 여인국 이야기가 두 번쯤 등장한다. 이런 희귀하고 신비한 것에는 혹할 수밖에 없다. 서구 오리엔탈리스트와 별다를 것 없는 시각이지만 나는 이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테마에 별수없이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티베트 여인국 첫 번째는 좀 앞부분에 일찍 나오는 숨파(수피), 두 번째는 동녀국이다. 숨파는 티베트 극서부 아리 지역, 그러니까 무려 신장 호탄 근처에 있었다. 송첸감포 시기쯤을 읽다 보면 나오는데 아마 송첸감포 아버지 때쯤 토번에 흡수가 됐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현재의 강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숨파는 옛 중국 역사서에는 등장하는데 아마 고고 발굴이 안 된 걸로 기억한다. 창탕고원이 바로 여긴데 엄청난 고지대에 거친 황야인데다 토번에 일찌감치 동화가 돼놓으니.. 글에서 다룰 동녀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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