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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여인국 - 동녀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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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여인국 - 동녀국

bravebird 2018. 6. 1. 16:55

티베트 통사에는 여인국 이야기가 두 번쯤 등장한다. 이런 희귀하고 신비한 것에는 혹할 수밖에 없다. 서구 오리엔탈리스트와 별다를 것 없는 시각이지만 나는 이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테마에 별수없이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티베트 여인국 첫 번째는 좀 앞부분에 일찍 나오는 숨파(수피), 두 번째는 동녀국이다. 숨파는 티베트 극서부 아리 지역, 그러니까 무려 신장 호탄 근처에 있었다. 송첸감포 시기쯤을 읽다 보면 나오는데 아마 송첸감포 아버지 때쯤 토번에 흡수가 됐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현재의 강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숨파는 옛 중국 역사서에는 등장하는데 아마 고고 발굴이 안 된 걸로 기억한다. 창탕고원이 바로 여긴데 엄청난 고지대에 거친 황야인데다 토번에 일찌감치 동화가 돼놓으니.. 

 

글에서 다룰 동녀국은 쓰촨성 서부에 있었다. 쓰촨성 서부는 티베트자치구와의 경계 지역으로 티베트의 세 문화권 중 캄(동티베트)에 속하는 고산지대다. 이곳 단바현에 동녀국의 실제 후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모계사회 특성을 꽤 간직한 채로 살고 있다. 동녀국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갑거장채(조루)들이 많이 남아있다. 여자들은 '주혼제'를 통해서 성 상대를 자유롭게 선택하며 남자가 갑거장채를 기어 올라와서 하루 자고 간다. ㅋㅋ 이렇게 해서 모계혈통이 이어진다. 신비의 여인국, 미인의 고장이라는 타이틀 하에 상당히 인기 있는 관광지다. 예전 간쑤성 남부에 갔을 때 조금만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 쓰촨 북서부라 한번 가볼까 하다가 말았다. 시안과 란저우와 둔황을 잇는 실크로드 메인 루트를 가야 했기에 ㅎㅎㅎ

 

갑거장채 (출처)

 

 

하여튼! 쓰촨, 특히 동녀국이 있었던 단바, 가야지 가야지 벼르고만 있다가 올해 한번 가볼까 생각중이라 책을 좀 읽기 시작했다. In the Land of the Eastern Queendom이라는 제목이고 이곳 출신 인류학자가 쓴 책이다. 아래 내용은 책을 대폭 참조한 것이다.

 

쓰촨성 간즈주 단바현(동녀국 옛터)과 그 옆 아바주(구채구, 황룡 있는 곳)의 일부 장족을 가융장족이라고 부른다. 신분증을 보면 분명히 장족인데 막상 장족들이 이 사람들을 진짜 취급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일단 언어가 좀 다르다. 티베트 언어·문화는 크게 위짱, 암도, 캄으로 나뉘고 쓰촨 쪽 티베트는 캄에 속하는데 가융 방언은 캄 방언과 다르다. 가융 방언은 티베트어 옛 형태를 간직한 방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머지 티베트 사람들한테는 다른 언어처럼 들린다. 민족식별 초기에는 가융족으로 따로 식별을 했다가 1954년에 장족으로 재분류했다고 한다. 티베트 내부에서 보기에는 좀 다르지만 외부인들이 봤을 때는 종교나 문화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가융장족은 티베트 불교나 뵌뽀교를 믿는다. 장족은 티베트 불교를 주로 믿는다. 뵌뽀교는 티베트 토속신앙인데 이단 취급받는다. 

 

 

 

캄 사람들은 남성적이고 호전적인 기질로 유명하며 한족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티베트 사람들은 가융장족이 한화가 많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융장족 본인들은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가 상황에 맞게 강조한다. 한족과 대비해서는 장족이다. 장족 안에서는 캄 사람이다. 근데 동녀국 이슈가 나오면 각자 마을 정체성을 부각시켜서 자기네 마을이 동녀국 옛 터라고 한다. 관광수입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여자들은 동녀국 논쟁에 그렇게 열을 올리지 않는다. 일반적인 티베트 사람들과는 달리 중국 중앙정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호의적인 반면 지방정부는 불공평하다고 욕한다. 동녀국 옛터라고 싸우는 마을은 Suopo와 Zhonglu다. 동녀국 옛터로 공식 명칭이 붙은 마을은 Zhonglu인데, Suopo쪽 반발이 크다 보니 지방정부는 이 명칭 변경을 널리 공표하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Suopo에서는 또 캄 방언이 우세하다. 저자가 가융 방언을 쓰는데 이 마을 사람들한테 '너희 가융 사람'이라는 워딩을 들었으니 외부인 취급 당한 것이다. 그런데 또 Suopo 사람들은 뵌뽀교를 믿는다. 캄에서도 티베트에서도 배척당하는 종교이다. 사정 엄청 복잡하지 않은가? 성 > 주 > 현 > 마을 단위까지 들어가니까 관습/언어/종교/이해관계 등등 복잡하게 얽히면서 각자 다 다르다. 티베트며 캄이며 가융장족이며.. Suopo 사람들은 기존의 경계에 속하기도 하고 아니 속하기도 한다.

 

이만큼 티베트는 사실 그 안에서도 다양하다.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 정권을 중심으로 한 위짱이다. 반면 캄은 전통적으로 달라이 라마 세력권에서 벗어나 있는 지역이었다. 토사들이 대대로 다스려온 약 18개의 군소 정치체가 달라이 라마 정권, 청 정부, 중공과 모두 대치했고 그 용맹도 대단했다. 정말 전사들의 후예가 맞긴 하다. 1930년대에는 캄 서부를 달라이 라마 정권이, 캄 동부를 중국이 차지하는 형국이었다. 캄 사람들은 그러다가 1934년에 달라이 라마 정부에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1934 Khamba rebellion) 이렇게 달라이 라마 정권에도, 중국에도 속하지 않은 캄의 여러 정치체는 1950년대 초반까지도 존속했다! 위키피디아 Kham > History에 보면 나와있다. 이 지역들이 전부 중공한테 '해방'되고 '장족'이라는 한 민족으로 식별이 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티베트는 어느 정도는 중국의 창조물이다.

 

 

"Therefore, in a real sense, it was the Chinese central government that created a unified Tibetan nationality. With the awakening of an ethno-national identity among all peoples labeled “Zangzu,” a popular conception began to evolve among those designated as such. According to this ethnic stereotype, Zangzu share a common origin, a glorious history, and a set of cultural traditions, and the bonds among the various subgroups have never been weakened. This perception has given rise to a Tibetan ethno-nationalism that is not necessarily about Tibetan independence." (In the Land of the Eastern Queendom에서 발췌)

 

 

동녀국 후손임을 주장하는 단바 사람들은 정체성이 정말 복잡다단하다. 모계중심 전통을 강조하자니 캄의 상남자 정체성과 충돌한다. 티베트 사람이라고 강조하자니 동녀국 후계자라는 그들만의 유니크한 정체성이 묻힌다. 대세 티베트랑은 말이나 종교마저 좀 다른 경우도 있다. 캄 방언을 쓰기도 하고 가융 방언을 쓰기도 한다. 장족 치고는 중앙정부에 호의적인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족도 아니다. 결국 어디가나 어중간하다. 그 점을 적극 활용해서 상황에 맞게 자신들을 포지셔닝하며 이득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 동티베트, 동녀국, Mosuo, Zhaba, 장족, 가융장족, 캄, 나시족, 강족, 주혼, 갑거장채, 간즈, 단바, Suopoxiang, Zhongluxi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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