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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만네르하임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활동했던 서양인 탐험가들 트리비아 정리. The Horse that Leaps Through Clouds에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살을 붙였다. 다른 책도 읽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추가 예정. 스벤 헤딘: 평생 친구. 둘다 스웨덴어를 모어로 사용. 1906년도에 둘다 내륙아시아에서 탐험 중이었다. 세계대전 때부터 만네르하임이 1951년에 죽을 때까지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다. 만네르하임의 두 권짜리 기행문인 Across Asia에 대해서도 그 업적을 높이 샀다. 만네르하임 가계에 아돌프 에릭 노르덴시욀드(Adolf Erik Nordenskiöld)라는 유명한 북극해 탐험가가 있었다. 베가 호를 이끌어 북극항로를 처음으로 완주한 사람이다. 스벤 헤딘은 이 사람을 동경하여 ..
헤딘의 기행문에는 윤리적으로 문제있는 허구가 정말 많을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독일 탐험가 브루노 바우만의 《타클라마칸》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강인욱 교수의 블로그 글을 읽은 덕분에 끝을 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책이다. 스벤 헤딘에 대한 궁금함으로 올해 스톡홀름에 다녀오고 나서 헤딘 자서전을 읽었다. (2016/07/11 - [중점추진사업/유라시아사] - 이제서야 다 읽은 스벤 헤딘 자서전) 발간 당시에 베스트셀러일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저서다. 이 책에서 단연 잊을 수 없는 장면은 타클라마칸 횡단 부분. 헤딘이 부족한 물로 전진을 고집한 바람에 여러 사람이 주저앉았고, 헤딘 본인은 기적적으로 샘을 발견하여 살아남았다. 헤딘은 동료 대부분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자신의 장화를 벗어서 물을 가득 ..
11월 16-17일, 처음 해외 출장이자 처음 일본 방문이었다. 목적지는 도쿄. 도쿄국립박물관에 오타니 탐험대의 컬렉션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가려고 했던 중요 목적지였다. 시간이 나면 꼭 가보려고 리서치를 하고 지도도 뽑아두었다. 일하러 가는 출장이 아니라 행사 참석이 목적이고, 어르신들이 아니라 타부서 젊은 선배님들이 동행이어서 기회가 있어 보였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일본 최대 박물관이다. 1872년에 첫 전시를 시작해서 1882년에 현재 위치인 우에노 공원 내부로 터를 옮겼다. 근대의 산물인 박물관이 으레 그렇듯 도쿄국립박물관도 일본 안팎의 세계를 파악하고 다스리기 위한 국가주의와 제국주의 지식의 팡테옹이었다. 이곳의 오타니 컬렉션도 예외가 아니다. 오타니 탐험대는 스벤 헤딘과 오렐 스타인, 알베르..
로프 노르 호수에 처음 간 서양인은 프르제발스키도, 헤딘도 아니었다. 훨씬 앞에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Johan Gustaf Renat, 1682-1744)라는 스웨덴 사람이 있었다. 한국과 스웨덴 간의 실크로드 관련 교류사에 대해서 읽다가 이 사람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전에 어디선가 본 이름 같았다. 이 이야기가 나올 만한 책이 피터 퍼듀의 《중국의 서진》밖에 없는 것 같아서 색인을 펼쳐보니 역시 그랬다.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는 그 유명한 스웨덴과 러시아의 대북방전쟁 때 카를 12세의 군대에서 복무했다. 이후 1709년 폴타바 전투 때 러시아에 포로로 잡혀 토볼스크로 압송된 후 시베리아 지도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1716년에는 스웨덴 출신의 다른 포로들과 함께 금을 찾아나서는 탐사단에 참가했다가 ..
스벤 헤딘이 구한말 경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사실은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의 한국학자인 스테판 로젠이 정리하여 권영필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논총에 〈스벤 헤딘, 한국, 그리고 포착하기 어려운 중앙아시아〉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이 짧은 글은 《중앙아시아의 역사의 문화》라는 단행본에서 읽을 수 있다. 오늘 정독도서관에서 빌려왔고, 이 글 대부분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스테판 로젠 교수는 당시, 권영필 교수의 제자인 민병훈 국립청주박물관장과 함께 스웨덴 민족학 박물관에서 공동 자료 수집을 했다고 한다. 이번에 나는 못 만나뵌 Mr. Håkan을 이 분들은 이미 꽤 오래 전에 만난 것이야!!! 스벤 헤딘의 서재도 다 본 거야!!! 부럽다!!!! ▲ 하칸 발퀴스트 교수, 스테판 로젠 교..
한달 전 스톡홀름, 상트페테르부르크 갈 때 책을 몇 권 갖고 갔다. 나머지는 다 읽고 왔는데, 하필 제일 중요한 스벤 헤딘 자서전만 손을 못 댔다. 출발 며칠 전에 일부러 퇴근길에 집 근처 구립도서관까지 가서 빌려 갔는데 손도 못 댄 것이다. 한 달이 훨씬 넘었는데 반납도 안하고 있다가 오늘에야 다 읽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왜 계속 탐험을 하는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미지의 땅을 정복하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만큼 내게 매력적인 것은 없다." (스벤 헤딘) 읽은 소감!! 헤딘은 정말 지칠 줄 모르는 탐험가였다. 러시아령 중앙아시아, 동투르키스탄, 인도 북부, 파미르 고원, 티베트 등등 내가 관심 있는 지역들만 쏙쏙 골라서 다녔다. 특히 이곳에 근대 측량기술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았을..
스톡홀름의 민족학 박물관(Etnografiska Museet)에는 스벤 헤딘 재단이 함께 있다. 이곳에 중앙아시아 탐험가인 스벤 헤딘의 서재와 소지품들이 남아있다고 해서, 마지막 날인 6월 7일에 가서 대미를 장식하려고 남겨놨다. 출국하기 전에 홈페이지(www.svenhedinfoundation.org)를 구경해 봤더니 도서 목록이 정리돼 있었는데, 그 중 꼭 사고 싶은 것이 있었다. 군나르 야링 박사가 정리한 Central Asian Turkic Place-Names - Lop Nor and Tarim Area라는 책이다. 웹페이지에 담당자 Mr. Håkan Wahlquist에게 문의하라고 나와있어서 출국 전에 미리 메일을 보내두었다. 답장은 박물관에 갔다온 다음에야 받았다. 책은 뮤지엄 샵에 진열돼 ..
스톡홀름의 Adolf Fredrik's Church에 스벤 헤딘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숙소인 City Backpackers Hostel에서 아주 가까웠다. 도착한 이튿날인 6월 5일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가봤다. 마당이 이렇게 조그만 공동묘지가 만들어져 있다. 녹음에 젖어 있는 한가로운 곳이었다. 금방 찾은 스벤 헤딘 묘. 제일 아래의 헤딘 이름 부분에 햇빛이 비쳐서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교회 내부의 벽에도 스벤 헤딘 기념 명패가 걸려 있다. 깔끔한 교회 내부에서는 아이들이 합창 연습을 하고 있었다. 주요 랜드마크인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죽 걸어가면 있는 Norr Mälarstrand가. 이곳의 66번지가 스벤 헤딘이 1935년도부터 1952년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스벤..
스톡홀름에 가기 전에 스웨덴 출신의 유명한 탐험가이자 학자였던 스벤 헤딘과 군나르 야링의 흔적을 보기 위해서 국립문서고에 메일을 보냈다. 답장은 기대조차 않았는데 놀랍게도 아키비스트들이 자료 검색방법뿐만 아니라 추천 컬렉션까지 함께 친절히 회신해 주었다. 심지어 국립문서고가 개보수 작업 중인 관계로 요청한 모든 지도와 사진을 왕립 군사문서고로 임시 이관하여 열람하게 해주었다. 방문과 자료 열람을 위해서는 관련 기관의 추천서 같은 자격조건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학자도, 학생도, 스웨덴 시민도 아니고 일개 해외 여행객인데 요청한 모든 것을 공!짜!로! 그!냥! 보여줬다. 왕립 군사문서고의 입구. 군사문서고 내부. 여기서 잠깐 기다렸다가 열람실로 들어갔다. Marieb..
스벤 헤딘은 스웨덴 출신의 뛰어난 중앙아시아 탐험가다. 1900년대 초반에 오렐 스타인, 폴 펠리오, 알베르트 폰 르콕과 같은 서양인 고고학자와 문헌학자들이 대대적인 신장 탐사를 통해 진기한 서역 유물을 대량 반출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스벤 헤딘은 이들보다 앞서 중앙아시아에 가서 목숨을 건 지리 측량과 지도 제작을 통해 타클라마칸 사막, 티베트 등 당시의 지리상 공백을 메꾼 진정한 탐험가이다. 스벤 헤딘은 스톡홀름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지리학, 동물학, 광물학 및 어학 등의 전문 교육을 집중 이수하고 수차례에 걸친 실지 탐험을 단행했다. 1893-1897년에는 스톡홀름에서 시작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타슈켄트를 거쳐 파미르 산맥에 닿았다. 1899-1902년에는 타림 분지와 티베트, 카슈미르를 거쳐 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