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메갈로매니아 스벤 헤딘 본문
헤딘의 기행문에는 윤리적으로 문제있는 허구가 정말 많을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독일 탐험가 브루노 바우만의 《타클라마칸》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강인욱 교수의 블로그 글을 읽은 덕분에 끝을 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책이다.
스벤 헤딘에 대한 궁금함으로 올해 스톡홀름에 다녀오고 나서 헤딘 자서전을 읽었다. (2016/07/11 - [중점추진사업/유라시아사] - 이제서야 다 읽은 스벤 헤딘 자서전) 발간 당시에 베스트셀러일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저서다. 이 책에서 단연 잊을 수 없는 장면은 타클라마칸 횡단 부분. 헤딘이 부족한 물로 전진을 고집한 바람에 여러 사람이 주저앉았고, 헤딘 본인은 기적적으로 샘을 발견하여 살아남았다. 헤딘은 동료 대부분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자신의 장화를 벗어서 물을 가득 채워다가 죽어가던 한 동료에게 가져다 주는 장면, 말라붙어가던 두 사람의 몸에 물이 돌기 시작하는 순간에 대한 드라마틱한 묘사는 특히 유명하다.
헤딘은 이런 죽음의 모험을 자신의 자랑스런 업적으로 서술하는 데 그친다. 극단적인 목마름 속에 객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지인 동료들에 대한 괴로운 심정 따위는 거의 생략했다... -_- 특히 헤딘은, 욜치(카심)라는 간악한 동행자가 물을 적게 챙겨와서 몰래 훔쳐먹기까지 하는 바람에 물부족 사태가 벌어졌고 카심은 결국 사막에서 죽은 것 같다고 썼다.
브루노 바우만은 헤딘의 이 탐사기록을 그대로 따라 타클라마칸 횡단을 계획한다. 탐험 시작 전에 헤딘과 동행한 현지인들의 자손을 열심히 수소문한 끝에, 욜치의 손자임이 확실한 사람을 만난다. 바우만은 여기서 놀라운 소식에 입이 딱 벌어진다. 서양인을 따라 사막 횡단에 나섰던 욜치가 그 사막에서 살아 돌아왔고, 심지어 마을 원로로 추대되어 평생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헤딘이 힘이 모자라 하나씩 버리고 갔던 물건들이 이후 고스란히 카쉬가르에서 유통되는 일까지 있었다. 강인한 서양인으로서 마치 자기 혼자 죽음의 사막에서 살아나온 것 같이 써놓은 헤딘의 무용담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욜치의 손자에 대한 페이지
헤딘은 이 횡단에서 구조된 후에 바로 편지 한 통을 썼다. 바우만은 헤딘이 구조 직후 아직 충격에 빠져 있을 때 쓴 것이며, 스승인 페르디낭 폰 리히트호펜이 수신인이라는 점에서 스스로를 돋보이게 만들기보다는 전문가에게 사실을 전하기 위한 편지로 판단하였다. 이 편지에서 헤딘은 구조된 후, 떨궈놓고 온 장비를 되찾아오기 위해 사막으로 돌아갔는데 장비를 넣어둔 텐트와 나무 옆에 남겨둔 낙타가 없어진 대신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욜치의 것이 틀림없다고 적었다. 헤딘은 이때까지만 해도 욜치의 생존을 확신했지만, 훗날 자서전을 쓸 때는 교활한 자가 천벌을 받아 횡사한 것처럼 쓴 것이다.
헤딘은 평소에 권력자와의 친분이라든가 광대한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는 것에 무한한 동경을 품었다. 훗날 나치의 부역자로 적극 활동했을 만큼 거대한 권위와 화려한 영광에 심취하였던 마음의 역사를 보았을 때, 타클라마칸 여행담 역시 현지인들의 추후 사정에 대한 억측과 자기중심적 사건 해석을 듬뿍 담았을 공산이 다분하다.
바우만의 타클라마칸 횡단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헤딘과 마찬가지로 지리 탐사를 위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숙련된 여행가다. 헤딘의 재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식수와 현대 장비도 넉넉하게 챙겼고, 그의 지도를 꼼꼼하게 따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타를 세 마리나 떠나보내고 동료 하나가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기적적으로 나무를 발견하고 우물을 파낸 끝에 횡단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헤딘이 아무리 대단한 탐험가였다지만 혼자 잘나서 해낸 모험이 아니다. 브루노 바우만의 목숨 건 여행과 낙타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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