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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출장길의 오타니 컬렉션 (1) 본문

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도쿄 출장길의 오타니 컬렉션 (1)

bravebird 2016. 11. 30. 14:17
11월 16-17일, 처음 해외 출장이자 처음 일본 방문이었다. 목적지는 도쿄. 도쿄국립박물관에 오타니 탐험대의 컬렉션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가려고 했던 중요 목적지였다. 시간이 나면 꼭 가보려고 리서치를 하고 지도도 뽑아두었다. 일하러 가는 출장이 아니라 행사 참석이 목적이고, 어르신들이 아니라 타부서 젊은 선배님들이 동행이어서 기회가 있어 보였다. 


도쿄국립박물관 전경


도쿄국립박물관은 일본 최대 박물관이다. 1872년에 첫 전시를 시작해서 1882년에 현재 위치인 우에노 공원 내부로 터를 옮겼다. 근대의 산물인 박물관이 으레 그렇듯 도쿄국립박물관도 일본 안팎의 세계를 파악하고 다스리기 위한 국가주의와 제국주의 지식의 팡테옹이었다. 이곳의 오타니 컬렉션도 예외가 아니다. 오타니 탐험대는 스벤 헤딘과 오렐 스타인, 알베르트 폰 르콕, 폴 펠리오, 러시아 영사 페트로프스키 등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쟁쟁한 탐험가, 학자, 외교관이 중앙아시아에서 세력권 확대를 위해 각축을 벌이던 바로 그때 실크로드 탐험을 했다.  


오타니 고즈이 (1876-1948)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는 일본 불교 종파인 정토진종(浄土真宗)에 속한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세습 주지였다. 영국 런던에서 유학했으며 스벤 헤딘이나 알베르트 폰 르콕과 함께 영국 황립지리학회 회원이었고, 헤딘 등 탐험가들과 일정한 친분도 있었다. (2016/07/17 - [중점추진사업/유라시아사] - 스벤 헤딘의 대한제국 방문) 그는 1902년 영국에서 귀국하는 길에 중앙아시아 탐험대를 조직했다. 이들은 불교 신앙과 문화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아시아 일등국가를 이끌고 있는 일본인이야말로 실크로드 지역의 오래된 경전과 예술품을 발굴할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당대의 유명 작가 마츠오카 유즈루가 소설 형식으로 쓴 《돈황 이야기》에서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이런 제국주의적 관점을 엿볼 수 있다.


  


한 잔 따라 주시구려. 그리고 젊은 일본의 탐험대를 위해 미리 축배를 듭시다. 놀랍지 않소? 신흥 일본을 상징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특히 동자승을 파견했던 장본인이 이전의 괴물 법왕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바로 그 사람이니까 말이오. 

당시 오타니 고즈이 씨는 런던에서 계속 체류중이었는데 원래 종교인치고는 이상하리만큼 큰 뜻을 품고 있었지요. 그는 일본이 이 탐험에 깊이 관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요지는 이렇습니다. 유럽 중앙아시아 탐험연맹 사업이라 하는 것도 그 지리학적인 연구와는 별도로 해도 고고학적 방면으로 보면 90퍼센트, 아니 그 이상이 불교 영역인데도 그저 문화사적으로만 이곳을 취급했다, (...)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에 걸친 광대한 지역의 헤아릴 수 없는 성역을, 서양인의 신앙심 없는 삽질에 함부로 맡기면 안된다, 그 은택을 지금도 입고, 지금도 신앙으로 삼고 있고, 또 그 방면에 학문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업적이 있는 일본 불도가 그것을 해야 한다, (...) 라고 그는 강하게 믿고 있었지요. (pp.188-190)

이런 오타니 탐험의 결과물 일부가 도쿄국립박물관의 동양관(Asian Gallery, Toyokan)에 전시돼 있다. 일본 탐험대는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컬렉션 자체가 조잡하다. 게다가 오타니가 세 차례의 탐험으로 가산을 탕진해서 유물을 팔아 넘기다 보니 일본과 한국, 중국 각지에 정신없이 분산돼 버렸다. 대표적으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의 중앙아시아실에 있는 유물도 오타니 컬렉션의 일부다. 파산한 오타니가 일본 재벌에게 팔아넘긴 것을 다시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한테 기증하면서 일본 패망 후에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국제 둔황 프로젝트 홈페이지를 보면 중국 뤼순 박물관에도 오타니 컬렉션 일부가 있고 이 중 대부분이 베이징의 중국국가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이외 다른 것은 류코쿠 대학, 니시혼간지, 교토국립박물관, 고토박물관, 호류지, 큐슈대학, 오타니 대학 등 정말 갖은 곳에 흩어져 있다.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에서 본 전시실


도쿄국립박물관은 정말 큰 박물관인데 출장길에 시간이 짧으니 우선순위를 미리 정해둬야 했다. 이 페이지에서 Chinese Buddhist Sculpture, Sculptures from India and Gandhara, Art of the Western Regions 세 가지 전시를 골라 메모해 두었다. 오타니 컬렉션만 보려고 했는데 간다라 불상도 많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파리의 기메 박물관에서 뜻하지 않게 간다라 미술품을 많이 봤고, 귀국한 다음에 조사하다가 프랑스 고고학자들의 아프가니스탄 독점 발굴에 대해서 알게 됐다. 최근에 아프가니스탄 특별전도 봤고 그때 갔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간다라 불상을 봤었는데 이렇게 일본에서도 관련된 걸 계속 보게 되니 반가웠다. 또 지금 홈페이지를 보니까 업데이트된 내용이 있는데, 내년 봄에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립박물관 특별전도 연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순회전시가 도쿄까지도 가는 것이다. 


***


이런저런 야심을 품고 16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공항에 가서 도쿄에 도착했다. 첫째 날은 도쿄 인근의 치바 현에서 협력사 행사와 회식으로 시간이 다 갔다. 한국 아재들의 영업이란 것은 뻔하다. 특히 여자 고객들 앞에서는. 미모가 출중하다, 와이프 다음으로 최고다, 두 여자분을 비교해 보면 매력이 서로 어떠어떠하다 하는 이야기로 2-3시간이 갔다. 발닦고 잠을 자면 100%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 한번뿐일 자리니까 싹싹하고 술 잘 마시는 손님 역할을 묵묵히 했다. 1차 미션은 완수! 

회식은 2차로 이어졌다. 여기서 역대급 완전체 또라이를 맞닥뜨렸다. 나처럼 손님으로 초대받은 다른 회사의 나이 지긋한 아재였다. 3시간 정도 맞은편 자리에 붙잡혀 있었는데 영겁과도 같은 아재칼립스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Ajaecalypse now! 멀리서 눈여겨 봤는데 눈빛이 맘에 들어 이러면서 오더니 자기 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는 둘째아들 며느릿감을 찾고 있다면서 본격적인 호구조사에 들어갔다. 



아 젠장... 제대로 잘못 걸렸다... 하지만 역시나 한번 보고 말 사이니까 그냥 친절하게 있기로 했다. 내가 운동도 열심히 하고 첫째아들 부부는 제사 때 여행도 보내주고 좀 감각이 젊어~ 하면 우와! 너무 젊으세요, 대단하세요! 자동응답기 가동. 우리 아들이 면접에서 말이야, 아버지를 제일 존경한다고 그랬대, 그래서 그 회사 대표가 나한테 전화를 했어! 에는 우와, 제일 성공한 삶을 사셨네요! 같은 메쏘드 연기. 


이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하하호호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는데도 무슨 학교 무슨 전공인지 호구조사가 재개되었다. 뭔 상황이 펼쳐질지 뻔했지만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없어서 간단히 대답했다. 갑자기 안색이 싹 변하더니 분노에 찬 훈계조로 바뀌었다. 이후 3시간 내내 니네 학교 나온 애들 내가 많이 봤는데 어!? 아주 흥하거나 아주 망하거나 둘 중 하나야! 조심해! 내가 지켜본다! 으른 말씀 새겨 들어야 돼! 무조건 겸손하게 숙이고 살아야 돼! 앞으로 누가 물으면 그 학교 나왔다고 하지 마! 겨우 문과 나온 주제에! 



... 따위의 맥락없는 말로 레알 끝이 없었다고 한다. (언데드 몹)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자정에 잠도 못 자고 이게 뭐람. 하지만 그냥 본인이 만든 허상에 외치는 한탄 + 스쳐가는사람1이 뭐라고 하든말든 + 자리옮김 불가 등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감지되었으므로 그냥 듣고 있기로 했다. 남은 게 은퇴 뿐인 낯선 이를 위해서, 우주의 좋은 기운을 위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화 내용을 모르고 멀리서만 흘끗 본 사람들은 내가 쏘울메이트를 만나 그 회사에 스카웃되는 실황인 줄 알았다는 후문이... 

이렇게 첫째 날은 우주에 좋은 일은 하였고 메쏘드 연기력 인정도 받았으나 MP 소모는 꽤나 막대했고 때마침 메시지를 보내신 애꿎은 아버지께 화를 풀고 말았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얄짤이 없다. 다음날은 반드시 보상을 받겠다고 다짐했고 도쿄국립박물관에 가서 충분히 그렇게 했다. 다음 글에는 박물관에 간 이야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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