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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기메박물관 방문에 이어 - 간다라 미술 (1)

bravebird 2016. 11. 20. 23:01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에 갔더니 문헌학자 펠리오의 둔황 막고굴 컬렉션은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알프레드 푸세, 조셉 하킨 같은 고고학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져온 간다라 양식 조각상이 훨씬 많았다. 집에 돌아와서야 천천히 조사를 해보다가 생각보다 내용이 재미있길래 《간다라 미술》이라는 도해집을 빌려왔다. 1999년도에 예술의전당에서 파키스탄 정부의 후원을 받아 개최한 전시회의 도록이다. 도해집이라 기본적으로 사진이 많고, 앞에 붙어있는 이주형 교수의 소개글이 읽어볼 만하다. 그 내용을 간추리고 이미지를 추가해서 정리했다.


1.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간다라 미술을 이야기하려면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을 빼놓을 수 없다. 알렉산더 대왕은 지중해의 마케도니아에서 서아시아를 지나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 서북쪽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때가 BC 327년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대의 카불 분지, 스와트, 페샤와르 분지, 펀자브 지역이 모두 알렉산더 대왕의 수중에 떨어지고 이곳에는 그리스인의 식민 도시가 들어섰다. 대왕은 기세를 몰아 동방 원정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인도 몬순 기간의 지독한 더위와 습기에 병사들이 지쳐 나가떨어졌다. 더 이상의 원정을 포기하고 서방으로 돌아가는 도중,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에서 병사하면서 동방 원정은 미완성으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지중해-인도 사이의 교통로가 확립되고 아시아 각지에 그리스 식민도시가 생겨났다. 특히 간다라 지방에서는 그리스-로마의 헬레니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미술이 발전했다. 간다라는 대체 어디일까? 



2. 간다라의 지리적 범위


이번 출장 때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에서 보고 온 간다라 양식의 불상. 파키스탄 페샤와르 지방에서 발굴한 AD 2-3세기 쿠샨왕조 시기의 여래입상이다. 윤곽이 뚜렷한 얼굴, 파도 모양의 모발 표현, 양쪽 어깨를 덮는 의복의 흐르는 듯한 주름 등 사실적인 표현 기법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보여준다.


간다라는 파키스탄 서북변경주(Northwest Frontier Pronvince) 주도인 페샤와르 근처 지역이다. 문화사적 의미로서의 간다라는 이곳 말고도 그리스-로마 양식의 불상이 출토되는 카불 분지, 잘랄라바드, 스와트, 탁실라 등의 지역을 모두 포함한다. 페샤와르에서 서쪽의 카이베르 패스(Khyber Pass)를 넘으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을 거쳐 지중해 세계에 닿는다. 동남쪽으로 인더스 강을 넘어가면 인도의 본토다. 북쪽의 스와트나 치트랄을 넘어 산을 오르면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타클라마칸 사막에 이르고, 이곳에서 동진하면 곧 중국이다. 이처럼 간다라 지방은 예로부터 서아시아와 남아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 사이의 교통 요지였다. 이런 위치 덕분에 간다라 지방은 BC 1500년경 인도에 들어온 아리아인을 필두로 페르시아, 그리스, 인도, 중앙아시아, 사카족(스키티아), 쿠샨족, 훈족, 돌궐족 등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인도의 불교 신앙과 그리스-로마의 헬레니즘 조형 예술이 혼재하는 간다라 문화를 발전시켰다. 아래에서는 간다라 양식의 전제 조건인 불교의 발전과 그리스-박트리아 지방의 헬레니즘 문화에 대해서 차례로 살펴보겠다. 



3. 불교의 발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


불교는 BC 6세기 샤카족(아래에 나올 스키티아 계통의 사카족과 다름)의 성자 석가모니의 열반을 통해 종교로 형성되었다. BC 3세기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이 불교에 귀의하면서 주요 종교로 발전한다. 아쇼카 왕의 조부인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는 인도 역사상 최초로 거대 통일 왕조를 이룩한 장본인이다. 그의 제위기간 중에 인도 서북부까지 영토가 팽창하면서 셀레우코스 니카토와 충돌하게 된다. 그 결과 BC 304년, 셀레우코스는 힌두쿠시 이남 지역을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에게 양보하고 화의를 맺었다. 이후 박트리아의 그리스 왕들이 BC 2세기에 이곳으로 남하할 때까지 이 지역은 마우리아 왕조의 수중에 들어 있었다.



4.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과 헬레니즘 문화


위의 지도 정중앙에 작게 보이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간다라 문화의 거점이었다. 알렉산더가 사망한 후 그의 제국은 마케도니아, 이집트, 아시아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시리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지역은 셀레우코스 니카토(Seleucos Nicator)의 수중에 들어갔는데, BC 3세기경 셀레우코스 왕조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박트리아의 그리스인 태수 디오도토스(Diodotos)는 독립을 선언한다. 이때부터 박트리아 왕국은 약 200년간 인도 서북부를 지배하면서 그리스 문화를 유지했다. 이들은 BC 2세기 전반에 북쪽 초원 지대에서 내려온 스키티아계 유목 민족과 이란에서 흥기한 파르티아에게 박트리아를 넘겨주고 말지만, 그 후에도 약 1세기 동안 카불, 페샤와르, 펀자브, 스와트 일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했다. 


디오도토스 동전. ΒΑΣΙΛΕΩΣ ΔΙΟΔΟΤΟΥ(of King Diodotus)라는 희랍어가 새겨져 있다.월계관을 쓰고 활을 당기고 있는 그리스인 그대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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