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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파리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2) 여러 탐험가들

bravebird 2016. 10. 23. 23:28

기메 박물관 중앙아시아 전시품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고 펠리오가 직접 가져온 것도 일부분이어서 조금 김이 빠진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잘 몰랐던 다른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날라온 것이 많이 있었다. 워낙 생소한 이름들이라 글을 쓰다가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Maitreya. Pakistan, Gandhara region. 1st-3rd c. CE. Schist. 84 x 28 cm. Mission Alfred Foucher, 1895-1897.


알프레드 푸세(Alfred Foucher)는 프랑스의 유명한 불교미술 사학자였다. 푸세의 전문 연구 지역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카불, 젤랄라바드 인근이었지만 프랑스 정부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운 그리스 식민 도시국가의 터로 추정되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박트리아 지방(현재의 발흐)으로 푸세를 보내 버렸다. 이곳은 기후가 적당하지 않았으며 푸세 부부는 식수 오염으로 거의 죽을 위기까지 넘겼다고 한다.



빅토르 사리아니디

마르기아나와 박트리아의 위치


푸세의 박트리아 조사는 대실패였지만 이후 소련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가 이곳을 발굴해서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명(옥서스 문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박트리아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아무다리야 강 유역, 마르기아나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의 마르구시 주(주도는 메르브)의 그리스어 이름이다. 이 박트리아 지역은 조로아스터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 유물은 장 카를(Jean Carl)이 1937년 아프가니스탄 폰두키스탄 지방에서 가져온 것이다. 폰두키스탄은 파르완 주의 고르반드 밸리에 위치한 곳이다. 이 부근은 1936년에 조셉 하킨(Joseph Hackin) 원정대가 조사하기 전까지는 근대 고고 탐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조셉 하킨이라고 읽을지 프랑스어 발음을 존중해서 조셉 아캥? 악켕? 이라고 읽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한국 웹에는 하킨이라고 올라온 듯하니 하킨으로 쓰겠다. 하킨 탐사대의 일원이었던 장 카를이 1937년에 발굴하여 파리로 가져간 유물인데, 옷의 주름이 완연한 그리스 스타일이다.



Fragment of cupola. Kakrak Valley (SE of Bamiyan). 6th-7th c. CE. Wall painting. 1 x 3 m. Hackin expedition 1930.


조셉 하킨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프랑스 고고학계에서는 꽤 알려진 이름이다. 하킨은 룩셈부르크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을 얻은 고고학자이며, 기메 박물관의 학예사이자 관장으로도 일했다. 하킨은 아프가니스탄 고고 탐사대인 DAFA(French Archaeological Delegation in Afghanistan)의 디렉터로 임명되어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바미얀과 바그람(카불 북부)을 포함한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탐사했다. 하킨은 이 탐사의 성과를 통해 기메 박물관 컬렉션을 확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바미얀 석불 앞의 하킨 원정대


DAFA는 더 얘기해볼 만하다. 1922년에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프랑스 정부의 협의 하에 결성된 단체인데, 이 DAFA가 30년간 독점적으로 고고 탐사를 수행하고 그 결과물(금과 보석류 제외)을 두 나라 간에 균분하기로 했다. 1965년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유물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면서 분배 체제는 종료됐지만 협의 자체는 연장되었다. DAFA의 발굴품은 현재 기메 박물관과 카불 소재 아프가니스탄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선사시대, 석기 및 청동기 시대,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 그리스-박트리아 시대, 쿠샨 왕조, 사산-에프탈 시기, 힌두 샤히 그리고 이슬람 시기와 몽골 침략에 이르기까지 아프가니스탄 전 역사를 망라하는 성과를 자랑한다. 1922년 결성 후 2차대전 중에 잠시 활동을 멈추었다가 1946-47년 무렵에 부활하여 소비에트 침공 이후 몇 년이 지난 1982년까지 존속했다. 이후 지난 2002년에 프랑스, 아프가니스탄은 협의를 거쳐 DAFA의 활동을 재개하였다. 


하킨은 샤를 드골 전 대통령과도 특별한 연이 있었다. 2차대전 당시 드골의 망명 정부 '자유 프랑스'가 런던에 있었는데, 드골은 하킨을 자유 프랑스의 인도 대표로 지정했다. 하킨 부부는 조나단 홀트선을 타고 인도 뭄바이로 향해 가던 중, 페로 제도 부근에서 어뢰 공격을 받아 수장당했다. 하킨 부부를 따라 런던으로 이주할 정도로 긴밀한 친분을 맺고 있었던 장 카를은 이에 충격을 받아 자살하고 만다.



해방 훈장 웹사이트의 조셉 하킨 초상


전쟁 이후 샤를 드골 대통령은 하킨에게 프랑스 해방 훈장을 수여했다. 해방 훈장 사이트에서 하킨의 약력을 찾아볼 수 있다. 룩셈부르크에 하킨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으며(Rue Joseph Hackin), 파리 16구 샤를 드골 가 바로 근처에도 하킨 부부의 이름을 딴 작은 거리(Rue Joseph et Marie Hackin)가 남아있다.


이주형 교수가 쓴 아프가니스탄과 간다라 미술에 대한 책을 몇 권 빌려 왔다. 색인을 보니 프랑스 고고학자의 활약에 대한 내용도 등장한다. 이번 여름 스톡홀름에서는 대영박물관에서 발간한 아프가니스탄 역사책을 사왔고, 기메 박물관에서는 불어판이라 번역기로 읽어야 해서 매우 노가다가 요구되긴 하지만 '카불에서 사마르칸드까지' 라는 제목의 중앙아시아 고고학 서적 아담한 것을 사왔다. 생각보다 자료가 꽤 있으니 읽어보고 나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 보겠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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