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기메박물관 방문에 이어 - 간다라 미술 (2) 본문
5.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아이 하눔 유적
1960년대 이전에는 그리스계 왕들의 화폐 같은 소수 유물만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었다. 1964년에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북부 아이 하눔 유적의 발굴을 통해서 드디어 이 왕국의 전모가 드러난다. 아이 하눔에서는 아크로폴리스가 갖춰진 그리스풍 도시, 코린트식 열주가 있는 석조 건축물, 그리고 고전 양식의 신상과 인물상이 발견되어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실증해 주었다.
6. 사카-파르티아 시기의 탁실라 유적
인더스강 동안에 있는 탁실라에서도 그리스인의 도시가 발견됐다. 이 지역에는 Bhir Mound, Sirkap, Sirsukh등의 도시 유적이 남아있는데, 사카-파르티아 세력이 그리스-박트리아인의 뒤를 이어 지배한 시기의 유적이다. 사카족은 중국 사서에서 새족(塞族)으로 알려져 있는 스키타이 계통의 북방 유목민으로, BC 2세기에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리스-박트리아 인들과 충돌했다. 파르티아는 이란 북부의 카스피해 동쪽 지방에 위치했는데 BC 2세기에 이란 전역을 차지할 정도로 강성해져서 박트리아 지방의 그리스인을 몰아내고 만다. BC 1세기 중엽부터 사카족과 파르티아인은 서북 인도에 진출해서 AD 1세기에 쿠샨족이 흥기할 때까지 탁실라 근처에서 사카-파르티아 시대를 이끌었다. 파르티아는 이란계 종족이지만 그리스어를 행정어로 사용했을 만큼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7. 쿠샨 왕조의 발전과 간다라 미술의 본격화
간다라 미술이 본격화된 것은 AD 1세기에 흥기하여 페샤와르 분지에 도읍을 세운 쿠샨 왕조 시기이다. 쿠샨족은 중국 돈황과 기련산맥 사이에 살던 월지라는 유목민족 출신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흉노와 오손에게 쫓겨 이 지역으로 들어와 사카-파르티아인을 격파하고 AD 2세기에는 인도로 본격 진출했다. 카니슈카 왕 때는 아프가니스탄, 북인도, 서역,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대제국으로 거듭난다. 쿠샨인들은 불교를 신봉하며 그리스-이란 계통의 선진 미술 양식을 수용해서 간다라 양식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바로 이때 석가모니 입적 후 약 500년 간의 무불상(無佛象) 관행을 깨고 처음으로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무불상 시대에는 석가모니의 구체적인 모습 대신에 보리수 나무 아래의 빈 자리, 법륜, 부처의 발자국 같은 추상적인 방식으로 석가모니를 나타냈다.
간다라 양식의 불상은 커다란 천을 몸에 감싸 두르고 아무런 장신구도 걸치지 않은 차림이다. 이것은 당시 해당 지역에서 유행하던 불교 승려의 복장을 본뜬 것이다. 그러나 머리는 승려의 삭발과는 달리, 긴 머리를 위로 올려서 상투처럼 묶는 형상이다. 머리 뒤에는 몸에서 나오는 광채를 상징하는 원형의 두광이 있고 미간에는 석가모니의 32가지 신체적 특징(삼십이상) 중 하나인 하얀 터럭이 표시돼 있다. 이런 형상은 이후 불교미술에서 가장 전형적이고 보편적인 불상 형식으로 널리 계승되었으며,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동아시아 전역에 전파되었다.
파리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에서 본 간다라 양식의 불상
기원전 2세기의 석가모니 고행상.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재의 간다라 미술 대표작. 바로 위의 정례적인 불상과는 조금 다른 특수한 주제를 담고 있다.
2세기 쿠샨 왕조 시기에 제작된 보살 입상. 이번 출장 중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보고 온 작품. 이미 해탈한 부처와는 달리 보살은 현세에서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구도 중인 세속인이다. 장신구를 전혀 걸치지 않은 위의 부처상과는 달리 터번을 쓰고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을 걸친 왕공이나 귀족, 브라만의 모습이다.
8. 간다라 미술의 쇠퇴
간다라 미술은 AD 1세기 쿠샨 왕조 때 발전을 거듭하여 AD 2세기 카니슈카 대왕의 즉위 후 1세기 동안 전성기를 누렸다. 3세기 전반에는 쿠샨 왕조가 쇠락하면서 이란의 사산 왕조가 침입하면서 불교 미술 역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350년경에는 월지의 일족으로 추정되는 키다라족이 남하하여 간다라 지방을 지배하면서 키다라-쿠샨 시기가 시작되었고, 한편 인도에서는 굽타 왕조가 발흥하여 북인도와 중인도 일대를 장악했다. 460년경에는 북방 유목민족인 에프탈이 침입하여 또 한번 불교미술에 타격을 가한다.
630년대에는 당의 구법승인 현장이 이 지역을 방문하였는데, 페샤와르의 불교 사원은 이미 폐허가 되었으며 지역민들은 힌두교를 신봉한다고 기록하였다. 간다라 지방은 독자적 왕국이 없이 카불의 카피시국 치하에 있었으며, 스와트는 독립을 유지하고 사원은 황폐화되었으나 대승불교를 믿었다고 적혀 있다. 탁실라 역시 카피시국에 예속되었으나, 현장의 방문 당시에는 카슈미르국 치하에 있었다고 한다.
가즈니 왕조의 판도
8세기 전반에는 신라의 구도승 혜초가 간다라 지방을 방문하였다. 이때는 돌궐의 왕이 이미 카피시국을 물리치고 페샤와르를 통치하는 중이었다. 9세기는 힌두 샤히 왕조가 간다라 지방을 통치하면서 불교가 위축되었다. 10세기에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가즈니에서 이슬람 왕조가 흥기하여 힌두 샤히 왕조를 복속시키고 아프가니스탄과 서북 인도 지역을 장악하였다. 이슬람 왕조 치하에서 간다라 미술은 자취를 감춘다.
9. 근대 제국주의 시기 유럽인 연구자들
18세기 중반에 무굴 제국이 지배력을 상실하면서 유럽 제국주의 열강이 인도 지역에 진출하여 각축을 벌인다. 1757년도에 영국은 프랑스와의 플라시 전투에서 승리하여 인도 식민지배를 본격화하게 되고, 1858년에는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미얀마를 아우르는 지역을 영국이 직접 통치하기에 이른다. 아프가니스탄은 이 와중에 독립을 유지하였다. 페샤와르와 스와트 등지의 간다라 지방은 인도령 펀자브주에 속했다가 1901년도에 파키스탄 서북변경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제국주의 시기에 군인, 행정가, 고고학자 등 여러 서양인들이 간다라 지방에 대한 조사와 발굴에 착수한다.
그 첫 번째가 영국의 알렉산더 커닝햄(Alexander Cunningham, 1814-1893)이었다. 그는 간다라 지역에서 불교 사원과 조각을 본격 조사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커닝햄은 무분별한 발굴과 수집 활동 때문에 제대로 된 고고 탐사를 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여러 발굴품은 1860년대에 개관한 페샤와르 임시박물관에 소장되거나 유럽으로 반출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배가 침몰하여 수장된 유물도 있었다.
인도 총독 조지 커즌 경. 한국, 인도 및 파미르 일대, 페르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등지를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러시아의 남하로 인해 인도에 대한 영국의 이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조지 커즌 경(Lord George Curzon, 1859-1925)이 1899년 인도 총독으로 취임하면서 간다라 미술에 관한 학술 조사가 체계적으로 확립되었다. 인도 문화재 보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고전고고학을 전공한 존 마셜(John Marshall, 1876-1958)을 인도 고고학 조사국(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의 책임자로 기용하여 간다라 지역에서 활발한 조사를 실시하게 했다. 스푸너(D. B. Spooner), 스타인(M. A. Stein), 하그리브스(H. Hargreaves) 등에 의해서 주요 유적이 본격 발굴되고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프랑스에서 산스크리트학과 고고학을 전공한 알프레드 푸세(Alfred Foucher)도 19세기말 간다라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간다라 미술의 탄생에 미친 영향을 해명하기 위해 유적 탐사에 주력하고 방대한 저작을 출간했다. 푸세는 국립 동양 기메 박물관 편에서도 소개했는데, DAFA(French Archaeological Delegation in Afghanistan)에 관여하여 프랑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독점적으로 고고 탐사를 수행할 수 있는 권리를 따냈다. 이후 1979년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일어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의 고고학 조사는 프랑스의 주도 하에 이뤄진다.
파키스탄은 1947년도에 인도로부터 독립하면서 간다라 유적 조사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Department of Archaeology and Museums라는 기관과 페샤와르 대학의 고고학과를 중심으로 해당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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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오의 실크로드 컬렉션을 보려고 파리에 갔다가 예상에도 없었던 간다라 미술품을 푸지게 봤다. 이번 주 출장 때도 오타니의 실크로드 컬렉션 때문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갔다가 또 간다라 미술품을 실컷 봤다. 간다라 미술의 이모저모를 한번 꼼꼼히 살펴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나저나 서역 실크로드 역사에 관심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인도까지 시야를 넓힐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커즌 경 같은 그레이트 게임 참여자들이 아직 생소하기 때문에 앞으로 틈 나면 파볼 것이다. 범위가 광대해서 빡세지만 또 재밌다. 바로 다음 글에서는 따끈따끈한 도쿄국립박물관이랑 오타니 고즈이 원정 얘기를 좀 정리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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