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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가지 않은 파리 국립도서관

bravebird 2016. 10. 10. 23:42

올해 8월 중순 런던이랑 같이 갔던 파리에서는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가서 폴 펠리오(Paul Pelliot) 컬렉션을 볼 작정이었다. 기메 박물관에는 펠리오가 중앙아시아에서 가져온 미술품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리슐리외관에는 고문서가 있다. 폴 펠리오는 프랑스의 걸출한 문헌학자인데 상당한 천재였다. 중국어를 모르고 한문을 못 읽었던 오렐 스타인과는 다르게 중국어 구어나 고전 한문이나 가릴 것 없이 끝내주게 잘했다. 탐험 직전의 막간 몇 주를 이용해서 위구르어를 익힐 정도로 언어감각이 탁월했고 아시아 고문헌에도 통달했던 젊은 학자였다. 


폴 펠리오 기적의 레이스 @ 장경동


펠리오가 둔황 막고굴 장경동에 처음 갔을 때 하도 중국어를 잘해서 문을 지키고 선 왕원록 도사를 아주 기가 질리도록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장경동에 들어가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방대한 문헌을 죽 훑고는 즉시 척척 분류해서 가장 중요하고 희귀한 것만 쏙쏙 뽑아 파리로 가져갔다. 바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펠리오 컬렉션이다. 그 중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것이 바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다. 펠리오는 장경동에서 고문서 더미를 뒤지던 중 이 책을 발견하고서는, 예전에 어디선가 관련 언급을 본 걸 기억해 내고는 컬렉션에 넣었다. 왕오천축국전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라에서 출발해 당과 중앙아시아를 지나서 인도로 구도 여행을 떠난 신라 구법승 혜초의 견문록이다. 당승 현장의 대당서역기나 법현의 불국기도 비슷한 지역을 다루고 있는데, 대당서역기는 6~7세기 인도를,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 인도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런던, 파리 가기 전에 읽고 간 책. 왕오천축국전 드디어 읽어봤다!


이 유명한 왕오천축국전 실물이 궁금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온라인 양식을 제출해서 리더 패스 신청을 했고 이메일로 사서의 확인도 받아두었지만 결국 가지는 않았다. 런던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이느라 파리에 관심을 쏟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의 사진에 도록이 나와있는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이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는데, 왕오천축국전이 공개 전시에 나온 건 이때가 처음이다. 전시에도 잘 나오지 않는 보물을 준비도 하지 않은 나한테 보여줄 리가 없지. 물론 마이크로필름은 열람 가능하기 때문에 한번 가봐도 되었겠지만 국제 둔황 프로젝트 사이트에서 스캔본을 볼 수도 있으므로 굳이 갈 필요는 없었다. 도서관 사이트에서도 펠리오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유로스타 표까지 바꿔가며 파리를 하루 줄이고 런던 일정을 늘리느라 파리에선 풀데이 기준 2.5일 뿐이었다. 프랑스어도 모르고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고문헌 해독도 못하는 내게 도서관 방문은 소요 시간만큼의 효용까지는 못 뽑을 활동이었다. 필요한 자료가 혹시 있으면 인터넷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언젠가 파리를 또 갈 일이 있다면 그때 좋은 기회를 노려보기로 했다. 대신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로 찾아갔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유로스타를 타고 와서 숙소에 짐을 두고 잠깐 빈둥거리다가 기메 박물관에 도착하니 이미 3-4시쯤 되었던 것 같다. 기메 박물관 구경한 얘기는 다음 글에 이어서 써야겠다. 


+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리더 패스를 받으려면 인터넷 사이트에서 미리 간단한 양식을 제출한다. 사서가 이내 확인하고 프랑스어로 안내 메일을 보내주는데 구글 번역기 돌리면 쉽게 읽어볼 수 있다. 여권 등 유효 신분증, 필요 시 학생증이나 연구 계획서 및 사유서 등등을 지참해서 도서관을 방문하면 3일권/15일권/1년권 중 한 종류를 받을 수 있다. 가격, 방법 등 상세 내용은 링크된 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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