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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실크로드 탐험가 트리비아 (1)

bravebird 2017. 6. 11. 00:06

만네르하임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활동했던 서양인 탐험가들 트리비아 정리. The Horse that Leaps Through Clouds에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살을 붙였다. 다른 책도 읽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추가 예정.


스벤 헤딘: 평생 친구. 둘다 스웨덴어를 모어로 사용. 1906년도에 둘다 내륙아시아에서 탐험 중이었다. 세계대전 때부터 만네르하임이 1951년에 죽을 때까지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다. 만네르하임의 두 권짜리 기행문인 Across Asia에 대해서도 그 업적을 높이 샀다. 만네르하임 가계에 아돌프 에릭 노르덴시욀드(Adolf Erik Nordenskiöld)라는 유명한 북극해 탐험가가 있었다. 베가 호를 이끌어 북극항로를 처음으로 완주한 사람이다. 스벤 헤딘은 이 사람을 동경하여 탐험가가 되기를 꿈꿨으며(이거 스벤 헤딘 자서전에서 읽은 기억도 남), 후에 Adolf Erik Nordenskiöld: en levnadsbeskrivning라는 전기도 썼다.

폴 펠리오: 제정 러시아 참모본부(General Staff)가 만네르하임을 내륙아시아에 보낼 때 펠리오 탐험대에 끼워서 보냈다. 만네르하임은 폴 펠리오가 엄청 인색하고 탐욕스러우며 까다롭고 젠체하는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펠리오는 엄청난 언어 구사력으로 가는 곳마다 현지인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바람에 대화를 독점해서 만네르하임을 무안하게 했다. 현지 풍습을 잘 안다는 고집과 우월감도 상당하여, 음식도 가리는 편인데다 그냥 그럭저럭 장단 맞추는 만네르하임한테 잔소리가 심했다. 게다가 펠리오는 스웨덴 인류학자 신분으로 위장해서 언더커버 정탐 활동을 해야 하는 만네르하임의 처지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부지불식간에 중국 관헌한테 핀란드 출신이라고 흘린 듯. 둘이 서로 엄청 싫어함. 

페트로프스키: 카쉬가르 주재 러시아 영사로 재직했으며(1882-1902) 호전적인 반영주의자. 지배욕이 강하고 무례하며 야심이 넘치고 매우 자기중심적이었다. 카쉬가르를 쥐었다 놨다 한 듯. 조지 매카트니의 경쟁자.

세르게이 콜로콜로프(Sergei Kolokolov): 페트로프스키의 후임. 진보적 성향이었으며 헌법에 기반한 정부 체제를 지지했다. 만네르하임은 카쉬가르에서 콜로콜로프를 방문했으며 그의 쾌활한 성품을 좋아했다. 

조지 매카트니: 난징 태생. 스코틀랜드 출신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부가 이홍장이었다고 함. ㄷㄷㄷㄷ 중국에서 10년 산 후 영국과 프랑스로 건너가서 교육을 받았다. 차분하고 학구적인 성품으로 중국에 대한 조예도 깊었음. 중국에서는 매카트니에게 치니 바그라는 건물을 제공했는데 이곳은 영국 영사관일 뿐만 아니라 내륙아시아에 대한 대영제국의 정탐 활동 중심지였으며, 스벤 헤딘, 오렐 스타인, 폴 펠리오, 알베르트 폰 르콕, 오타니 고즈이 등 신장을 여행하는 탐험가들이 꼭 들렀다 가는 곳이었다. 카쉬가르 소재. 지금은 호텔로 개조되었음. 만네르하임은 매카트니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매카트니는 폴 펠리오 탐험대에 만네르하임 남작이라는 핀란드인 한 명이 동행하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그가 러시아 군 관계자인 줄은 까맣게 몰랐다. 매카트니는 스타인이 호탄에서 발굴 작업을 할 때 펠리오가 카쉬가르에 도착했음을 알려서 스타인이 동진을 서두르도록 했다. 당시 스타인이랑 펠리오는 서로를 엄청 의식하면서 레이싱 중이었음. 만네르하임은 스타인이 호탄을 떠나 동쪽으로 가서 누란과 미란 유적지를 발굴한 사실을 펠리오한테 알렸다. 싫어하긴 했지만 나름 의리를 지킨 듯. 

베레조프스키 형제: 러시아 건축가. 만네르하임은 쿠차 근처 이르케슈탐 패스에서 이들을 마주쳤다. 당시 독일의 알베르트 그륀베델도 제3차 신장 탐험을 거의 마무리짓는 중이었고, 영국의 오렐 스타인은 카쉬가르를 떠나 호탄으로 가는 중이었다. 베레조프스키 형제는 1906년 초에 독일 탐험대가 쿠차 근처에서 자신들의 탐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두 팀은 거의 맞짱을 떴는데 독일 쪽이 물러섰다. 

알베르트 그륀베델: 베제클리크 석굴, 아스타나 고분군, 카라호토(고창 고성) 등 투르판 일대의 유적지를 발굴한 독일 학자. 찾아보니 티베트학자이기도 해서 시킴, 부탄, 서부 벵골 다르질링 등 히말라야 산맥 동부에서 사용하는 티베토-버마계통 언어인 렙차어 연구했다고 함. 여기 진짜 딱 여행가보고 싶은 지역인데 ㅋㅋ 알베르트 폰 르콕과 같이 활동함. 독일 탐험대는 석굴의 프레스코를 톱으로 슥슥 도려 내서 잔뜩 실어가는 악랄한 방식으로 유명했다. 만네르하임도 현장에 가보고는 혀를 내둘렀다고 함. 그륀베델은 유물을 가급적 건드리지 말고 스케치나 해가라고 했지만 르콕은 도려내는 방식을 선호함. 폰 르콕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물 도적질 방식이 제일 악랄했는데도 인간적인 매력은 상당했다고 한다. 독일 탐험대가 투르판과 쿠차 일대에서 절취한 프레스코는 현재 베를린의 달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달렘 박물관 컬렉션이 상당히 풍부하고 고퀄리티인데, 2차대전 때 폭격을 맞아서 엄청나게 파괴되고 남은 게 그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가져간 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투르판 베제클리크 석굴에 실제 갔을 때 내용물이 남아있는 게 없다시피 했다. 독일 탐험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곳 참조.

오렐 스타인: 만네르하임이 하미를 떠난 지 이틀 후에 하미에 도착한 걸 보면 루트가 꽤 비슷하게 겹쳤다. 만네르하임이 악수에서 Muzart Pass로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둔황에 도착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막고굴 장경동에서 왕원록 도사를 구워삶아 상당한 재미를 봄. 현재 영국도서관의 보물 중 보물인 금강경도 이때 가져가고. 만네르하임도 둔황에 가긴 했지만 막고굴엔 별 관심 없어서 별 개가를 올리지 못했다. 훗날 회고록에서 관련 능력이 모자란데다 그 분야 전문가인 펠리오에게 길을 터주려고 양보했다는 식으로 변명했는데 궁색해 보임. 펠리오한테 그런 보물을 양보하기는 죽어도 싫었을 텐데? ㅋㅋㅋ 스타인과 펠리오가 둔황에서 막고굴에 틀어박혀 20세기 최고의 고고학, 문헌학 성과를 가로챈 반면, 만네르하임은 사냥에 열중했다. 워낙 사냥을 좋아한데다(군인이다!) 미식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ㅋㅋ

구스타프 라케트(Gustaf Raquette): 스웨덴 Mission Covenant Church 소속 선교사. 의사. 야르칸드에서 만네르하임과 만났다. 작년 딱 지금쯤, 정말 정확히 딱 지금쯤 스웨덴 왕립 군사문서고에 가서 동투르키스탄 컬렉션을 열람하면서 개인소장용 사진을 많이 찍어왔는데 여기 구스타프 라케트 관련 자료도 꽤 많다. 이 사진 자료는 개인 소장만 되고 배포가 불가능해서 아쉬움. 스웨덴의 중앙아시아 탐험은 헤딘의 지리 탐사가 대표적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들의 활동도 상당했던 것 같다. 관련된 읽을거리가 없을까? 했더니 위키에 링크돼있네. 다음 주 땔감은 너로 정했다.


이미지는 스톡홀름 방문 1주년을 맞아 스톡홀름 시청사 앞에서 리다홀멘 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으로 넣어본다. 하 정말 시원하고 조용하고 심심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늘 밤도 딱 저렇게 어스름이 내릴 것이다. 백야의 스톡홀름 그립다. 아 정말 너무 너무 사무치게 그립다. 진짜 아름다운 곳이다. 꼭 다시 가볼 것이다. 아래는 군사문서고 방문 당시 열람했던 스벤 헤딘의 지도와 사전 준비 자료를 넣어간 봉투. 자료열람도 정말 쉽고 아키비스트들 답장도 신속하고 문서 정리도 정말 잘돼있음. 효율적인 공공서비스에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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