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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만네르하임 관련 도서 (1)

bravebird 2017. 5. 28. 22:25


핀란드 여행 준비 시작. 첫 번째 책은 Eric Enno Tamm의 The Horse that Leaps through Clouds

헬싱키에 가는 이유는 핀란드 전 대통령인 구스타프 만네르하임의 실크로드 탐험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 책은 만네르하임의 여행 루트를 그대로 따라 여행한 한 에스토니아계 캐나다인의 여행기다. 분량이 500쪽 이상이라 2주 동안이나 읽었는데 내용이 충실해서 새로 알게 된 게 꽤 많다.   

만네르하임은 독일 혈통의 스웨덴계 핀란드인으로, 제정 러시아 말기에 대공국(Grand Duchy)이었던 핀란드에서 태어나 러시아 군대에서 복무했다. 러일전쟁에 자원하여 대령으로 진급한 후 1906-1908년 사이에 중앙아시아와 북중국을 탐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당시는 그레이트 게임 후반기이자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이 만주 벌판을 넘어 뻗쳐가던 시기였다. 러시아 군대의 지원을 받은 만네르하임의 정탐 활동은 중국의 국력을 가늠하고 국경 지방의 민심과 생활상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여행 루트는 내가 가본 지역과 많이 겹친다. 헬싱키 - 상트페테르부르크 - 아제르바이잔 - 투르크메니스탄 - 우즈베키스탄 - 키르기스스탄 - 카쉬가르 - 호탄 - 천산 산맥 인근 - 우루무치 - 투르판, 투육, 하미둔황 - 하서주랑, 쑤난 위구족 자치현, 자위관 - 란저우 - 간난 티베트자치주 샤허 현 라브랑 사원 - 시안허난성 - 샨시성 타이위안 시 - 우타이 산 - 내몽골 - 베이징. 이 중에 굵은 글씨는 가보았거나 가까운 미래에 구체적인 방문 계획이 있는 곳이다. 표시 안 한 것도 대부분 언젠가는 모두 가보려고 하는 곳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펠리오와의 관계이다. 폴 펠리오는 이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프랑스 동양학자이자 언어 천재이다. 둔황 막고굴에서 왕오천축국전을 빼돌린 바로 그 사람이다. 펠리오와 만네르하임이 여행을 3주 정도 같이 했다고 한다. 펠리오가 매우 거만한 성격이라 상당히 미움을 샀다고 알고 있는데 만네르하임도 펠리오를 정말 싫어했다. 만네르하임은 스타인과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해서 신장 하미에서는 만난 적도 있다. 주로 학술 활동과 유물 수집 목적이 컸던 스타인이나 펠리오와는 달리 정탐 목적이 더 컸기 때문에 유물 빼돌리기 경쟁에는 그다지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피터 홉커크의 《실크로드의 악마들》에도 만네르하임 챕터는 따로 없다. 

또 기억할 만한 것은 위구족(Yugurs, 裕固族)에 대한 이야기다. 위구족은 이름이 비슷한 그 위구르족과 원래 한 뿌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위구르 칸국은 서기 840년경 키르기스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여 세 갈래로 쪼개어졌다. 이때 본거지인 몽골 스텝 지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간쑤 위구르 왕국을 세운 황색 위구르의 후손이 현재의 위구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한때 탕구트 계통인 서하 왕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현재 간쑤성 쑤난 위구족 자치현에 집주하고 있으며 인근의 몽골과 티베트의 문화적·종교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투르크 계통의 민족인데도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언어도 투르크 계통의 서위구어와 몽골 계통의 동위구어로 나누어진다. 내가 간쑤 여행을 갔을 때는 위구족의 존재를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야 알고 많이 궁금해서 꼭 다시 가보려고 노리고 있다. 만네르하임이 이 탐사 여행에서 위구족 마을을 답사하고 남긴 보고서는 피노-우그리안 소사이어티에서 출판도 되었다. 이 분야에서 꽤 권위있는 자료로 여겨진다고 한다. 

위구르 정체성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이다. 고대 위구르는 원래 몽골 초원에 살았던 돌궐 계통 유목부족 연맹체였다. 마니교를 믿었으며 당나라와 교류했고, 당나라가 안사의 난으로 휘청거릴 때 원군을 보내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한다. 이후에 키르기스에 멸망당하면서 세 부류로 찢어져 신장과 간쑤의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내 기억으로는 1. 간쑤의 황색 위구르 2. 투르판의 고창 위구르 3. 카쉬가르의 카라한 이렇게 세 줄기다. 이슬람교를 믿고 신장에 사는 투르크 계통 소수민족으로서의 위구르 정체성은 그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 이슬람화는 한 10세기쯤 카라한 왕조 때 시작되었고, 투르판 지역은 15세기쯤 되어서야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한다. 이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근대적인 위구르 정체성은 청나라 말기~근현대 쯤 떠오른 것 같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한족 위주의 중공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중공의 민족식별을 거치는 중에 민족 정체성이 강화된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주체는 타자의 인질이라고 하듯이.

위구르 사람들 본인도 각자가 속한 오아시스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투르판 사람, 호탄 사람, 카쉬가르 사람, 악수 사람 이런 식으로. 물론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의 '한국인(=조선족ㅋㅋ)' 정체성과 범주상 대칭이 되는 좀더 큰 개념인 '위구르족'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이렇게 신장은 애초에 워낙 많은 민족과 문화가 교차했던 지역이라 위구르족 연원 자체가 매우 복합적인 듯 하고, 중국 치하에서 비슷하게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티베트보다도 좀 더 복잡한 정체성을 지닌 것 같다. 당시 여행에서 이 점에 대한 굉장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위구르 정체성이나 중국 공산당의 민족식별 정책에 대한 단행본을 좀 모아둔 게 있다. 이젠 좀 봐야겠다. 아 정말 이 지역은 한번 건드리면 이렇게나 무궁무진한데 나의 시간은 24시간이며 노동자로 일하고 있고 몸뚱이는 하나뿐이다.

만네르하임이 우타이 산에서 제13대 달라이 라마를 만난 이야기도 재미있다. 달라이 라마는 당시 영국의 침략을 피해 우타이 산에 피신하면서 러시아의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 이때 우연히 방문한 만네르하임을 만나면서 티베트 이야기를 황제에게 전해달라고 하지만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제13대 달라이 라마를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와 중국의 이야기도 꽤 재미난 듯. 이야기가 긴데 아직 소화가 덜 됐으므로 옛날에 본 티베트사 책들도 다시 좀 빛을 볼 때가 된 것 같다. 중앙아시아사는 이런 개미지옥 무슨 다단계 같은 식이네. 사람을 끝없이 욕심나게 + 겸허하게 만든다.

만네르하임이 이후 핀란드 독립 전쟁에서 활약한 정황은 다른 자료를 참고할 예정이다. 《2차대전의 마이너리그》에 핀란드 겨울 전쟁이 소개되어 있길래 빌려왔다. 작년에 런던 Foyles 서점에서 봐두었던 Mannerheim: President, Soldier, Spy라는 전기도 킨들 버전으로 있길래 오늘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The Horse that Leaps through Clouds 이 책은 만네르하임의 탐사와 저자의 여행이 초점이기 때문에, 전 생애를 포괄하는 전기를 읽기 전에 내가 제일 관심있어 하는 실크로드 탐험 부분에 가볍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은 선택이었다. 저자가 사람까지 고용해가며 리서치를 열심히 한 흔적이 역력했다. 뒤에 붙어있는 참고문헌이나 acknowledgment 부분에 소개돼 있는 컨택트 내역이 굉장히 알찼다. 여행 내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정말 많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데 나도 그렇게 하면.. 만나 주나..? 언젠가 다시 제대로 여행을 하게 되면 이 저자한테 메일을 보내든지 해서 인터뷰 따내는 팁을 좀 얻어야겠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


※ 참고 자료 

http://egloos.zum.com/eagleoos/v/2325328 (이전 블로그에 위구르에 대해 쓴 잡담. 이글루스 편집기능이 엉망이라 티스토리로 이사왔지만 이글루스에는 굉장한 고퀄리티 역사블로그가 많았다. 역사밸리에 글을 쏘면 댓글 교류도 엄청 활발했다. 티스토리에는 역사 분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해외여행이나 국제 섹션에 글을 쏘는데 나는 해외여행 블로거가 아니다. 여행은 자료 얻는 수단일 뿐이지. 국제뉴스 블로거도 아니다. 홍콩은 몰라도 고대 실크로드는 국제뉴스는 좀 아니지 않냐. 사 섹션이 간절히 필요하다. 지금은 주로 자료수집/기억 목적으로 이것저것 잡다한 글을 쓰지만, 나중에 이걸 정리해서 남들에게 읽힐 목적의 글을 주로 쓰게 되면 이글루스로 돌아갈까 싶기도 하다.

http://m.blog.daum.net/ohjback/4579 (위구르족 관련)

http://horsethatleaps.com/ (이 책의 블로그. 각 챕터별 루트 정보, 멀티미디어 자료 등이 잘 나와있음.)

http://idp.bl.uk/pages/collections_other.a4d#4 (국제 둔황 프로젝트의 핀란드 컬렉션 페이지)

https://en.wikipedia.org/wiki/Yugur

http://members.home.nl/marcmarti/yugur/ (네덜란드 학자 Marti Roos의 위구족 언어 관련 홈페이지. 전사자료 같은 거 장난 아님.)

https://en.wikipedia.org/wiki/Grigory_Potanin (러시아 학자 그리고리 포타닌. 위구족 언어를 최초로 연구한 서양인 학자라고 함.)

https://en.wikipedia.org/wiki/13th_Dalai_L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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