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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스벤 헤딘의 대한제국 방문

bravebird 2016. 7. 17. 20:48

스벤 헤딘이 구한말 경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사실은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의 한국학자인 스테판 로젠이 정리하여 권영필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논총에 〈스벤 헤딘, 한국, 그리고 포착하기 어려운 중앙아시아〉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이 짧은 글은 《중앙아시아의 역사의 문화》라는 단행본에서 읽을 수 있다. 오늘 정독도서관에서 빌려왔고, 이 글 대부분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스테판 로젠 교수는 당시, 권영필 교수의 제자인 민병훈 국립청주박물관장과 함께 스웨덴 민족학 박물관에서 공동 자료 수집을 했다고 한다. 이번에 나는 못 만나뵌 Mr. Håkan을 이 분들은 이미 꽤 오래 전에 만난 것이야!!! 스벤 헤딘의 서재도 다 본 거야!!! 부럽다!!!!


▲ 하칸 발퀴스트 교수, 스테판 로젠 교수 


▲ 민병훈 박물관장, 스테판 로젠 교수




헤딘은 티베트와 신장 남쪽 지방을 대상으로 세 번째 중앙아시아 탐사를 마치고 종착지인 베이징에 도착하여, 귀국 전에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1908년의 일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친선 교류가 목적이었지만 스웨덴 측에서는 헤딘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일본에서 상업적, 정치적 이익을 꾀했다. 마침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으며, 한일 합병을 눈앞에 두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헤딘은 일본의 실크로드 탐험가인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와 아는 사이였는데, 이 1908년의 일본과 한국 방문 당시 교토에서 오타니도 만났던 것 같다. 참고로 오타니 컬렉션 중 상당한 규모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전시관에 남아 있다. 오타니는 투르판의 베제클리크 석굴, 둔황의 막고굴 등지에서 유물과 문서를 많이 반출해 갔는데, 귀국 후에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다른 일본인들에게 많이 팔아넘기거나 해서 각지로 분산이 되어버렸다. 그 중 한 사람이 이권 침탈기에 광산 채굴권을 얻으려고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기증한 것이 일본 패망 후 한국에 고스란히 남게 되어 한국의 실크로드 컬렉션이 된 것이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의 투르판 컬렉션은 세계적 규모이다. 투르판 베제클리크 석굴에 직접 갔을 때 거의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데, 귀국 후에 별 생각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베제클리크 벽화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이 2013년. 그게 세계로 흩어진 실크로드 문화재들을 계속 보러 다녀야겠다는 결심의 계기가 된 것 같다.  


 1908년 교토 니시혼간지, 오타니 고즈이 가족과 스벤 헤딘.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헤딘, 네 번째가 오타니. 

(스웨덴 국립 민족학 박물관 소장)




다시 헤딘 얘기로 돌아가자면, 헤딘은 1908년에 경성을 방문해서 YMCA 회관에서 실크로드 탐험에 대한 강연을 했다. 헤딘은 당시 강연장에 일본인 청중밖에 없는 것을 보고, 밖에 있는 조선인을 데려오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헤딘이 한국과 이런 인연이 있었다니 신기했다. 헤딘은 이렇게 약소 민족에 대한 동정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승승장구하는 일본제국에 대한 경외감을 함께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유명인과 거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메이지 황제나 이토 히로부미 같은 정치 지도자나 군인을 만난 것에 대해 존경심을 담아 수기를 남겼다고 한다. 


그 해 12월 21일, 헤딘은 순종 황제를 알현했다. 이 만남은 이토 히로부미가 마련을 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식으로 진행되었다. 헤딘은 모든 힘을 잃은 그림자 군주 같은 순종의 모습에 동정심을 느낀 것 같다. 그 기록이 헤딘의 저서 중 하나에 남아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이전의 위대함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퇴색한 스타로 보이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부하들에 의해 보호되는 우리 안의 한 마리 사자와 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외모에서는 이러한 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의연하고 동정심이 많아 보였으며, 그의 행동은 예의 바르고, 나의 대답을 관심을 갖고 경청하는 것으로 보였다. (중략) 그의 차분하고 단정한 얼굴은 우울한 기운으로 젖어 있었다. 나는 그가 천천히, 그리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일어서면서 이별의 악수를 청했을 때 나를 향하던 슬픔과 외로움의 시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그 역시 나의 시선과 악수에 직감적으로 담았던 따뜻함과 깊은 동감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그에게는 무겁고 치욕스러운 나날들이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18년 동안 그는 조국의 그림자로 살아야 했고, 죽음이 마침내 그의 문을 두드렸을 때 드디어 해방이 되었을 것이다. 죽음은 일본의 황제보다 훨씬 강력한 권력자였으며, 그가 내세에 있는 그의 조상들에게 가는 여행을 동반해줄 구조자였다."


순종 알현 후 헤딘은 1급 훈장인 팔괘장을 수여하였는데, 스톡홀름 궁전의 왕실 군무 컬렉션에 실물이 남아 있다고 한다.





헤딘은 방문 당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대해 알지 못했다. 헤딘이 서울을 방문하기 바로 얼마 전인 1908년 3월에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폴 펠리오(Paul Pelliot)가 둔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이 한문 문서는 이후 독일의 중국학자인 월터 훅스(Walter Fuchs)에 의해 출판이 되었다. 만약 헤딘이 혜초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한국에서 강연할 때 틀림없이 최대한 활용을 했을 것이다.


2010-2011년 사이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크로드와 둔황'이라는 기획전을 했고, 이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왕오천축국전》 실물을 대여해 와서 전시했다고 한다. 이때는 교환학생도, 신장도 간쑤도 가보기 전이라 전혀 관심이 없어서 알지도 못했고 알았더라도 가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 정독도서관에서 찾아보니 이 기획전 도록이 있길래 빌려왔다. 왕오천축국전도 빌려왔다. 이번에 파리에 가면 프랑스 국립도서관도 당연히 가보려고 하는데, 과연 이런 국보급 고문헌을 나한테 보여줄까? 빨리 사서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 1908년 경성을 방문한 헤딘과 일본 고관들이 찍은 기념사진. 앞줄 가운데가 헤딘. 왼쪽 첫 번째 조선주둔군 헌병사령관이자 합병 뒤 경무국장인 아카시 모토지로와 그 옆의 일본군 장성 무라바는 스웨덴 십자형 무공 훈장을 달고 있다. (스웨덴 국립 민족학 박물관 소장)


▲ 미국 총영사 토머스 새몬스의 저녁만찬장에 온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헤딘. 왼쪽 끝에서 세 번째 옆얼굴을 보인 이가 헤딘, 다섯 번째는 새몬스 영사. 오른쪽 끝에서 다섯 번째는 수염을 기른 이토 히로부미, 세 번째는 2대통감인 소네 자작. (스웨덴 국립 민족학 박물관 소장)


▲ 한국 방문 당시 헤딘이 서울 정동 러시아 영사관 정문 앞에서 실크햇을 쓰고 찍은 기념사진. (스웨덴 국립 민족학 박물관 소장, 민병훈 촬영)


 스웨덴 국립 민족학 박물관의 스벤 헤딘 재단에 보관돼 있는 나침반 등의 측량 장비들. (민병훈 촬영)

이게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 다음 번에 갈 땐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참고자료

《중앙아시아의 역사의 문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3/26/0200000000AKR20150326140200005.HTML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7/02/021003000200702150648029.html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7/02/021003000200702150648074.html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46000/2007/08/021046000200708300675048.html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46000/2007/08/0210460002007083006750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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