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다 읽은 스벤 헤딘 자서전

한달 전 스톡홀름, 상트페테르부르크 갈 때 책을 몇 권 갖고 갔다. 나머지는 다 읽고 왔는데, 하필 제일 중요한 스벤 헤딘 자서전만 손을 못 댔다. 출발 며칠 전에 일부러 퇴근길에 집 근처 구립도서관까지 가서 빌려 갔는데 손도 못 댄 것이다. 한 달이 훨씬 넘었는데 반납도 안하고 있다가 오늘에야 다 읽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왜 계속 탐험을 하는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미지의 땅을 정복하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만큼 내게 매력적인 것은 없다."   (스벤 헤딘)

읽은 소감!! 

헤딘은 정말 지칠 줄 모르는 탐험가였다. 러시아령 중앙아시아, 동투르키스탄, 인도 북부, 파미르 고원, 티베트 등등 내가 관심 있는 지역들만 쏙쏙 골라서 다녔다. 특히 이곳에 근대 측량기술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았을 때 방문하여 직접 탐사하고 처음부터 지도를 그렸다.

탐구심도 대단했지만 공명심이 헤딘을 많이 움직인 것 같다. 스웨덴 황제, 러시아 황제, 미국 대통령 등등 쟁쟁한 인물들이 자기한테 얼마나 열광했는지 자주 언급돼 있다. 그 어떤 "서양인"도 와보지 못한 땅을 처음으로 밟는 흥분에 대해서도 자주 쓴 걸 보면 오리엔탈리스트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나는 그런 오리엔탈리스트 학자와 탐험가들의 뒤꽁무니를 참 열심히 좇아다니고 있구나.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직접 보지 못하고 유럽인의 눈에 굴절된 모습을 몇 년째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장과 간쑤에 갔을 때 문화재가 다 뜯겨가서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서양 각국의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뜯어간 조각들 맞추는 작업을 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의미있었다. 그렇지만 실크로드에 대해 뭔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으려면 하루 빨리 신장과 간쑤로 돌아가서,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을 찾아가서 1차 현장과 1차 자료를 직접 보고 그곳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헤딘이 무리한 탐험을 강행하다가 현지인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본인도 죽을 고비를 넘긴 일도 유명하다. 살아남고서도 서양인인 자기는 살아남았다는 식으로 썼는데 참 정 떨어졌다... 자기의 무모함은 인정했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을 잃은 것에 대한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여서 너무 잔인했다. 워커홀릭이 너무도 목적 지향적이면 이 지경까지 가는구나. 

700쪽이 넘어가는 두꺼운 책이었고 거의 전 생애를 다루다 보니 고른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긴 어려웠다. 낯선 지명도 많고 탐험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고. 예전에 친구가 읽다가 지겨워서 때려쳤다고 그랬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끝내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린 걸 보면 결코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

1880년도, 헤딘이 15살 때 탐험가 노르덴셸드가 바가 호를 타고 북동항로를 통해 태평양을 항해하고 스웨덴으로 무사 귀환했다. 이때 탐험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헤딘은 이후 1885년과 이듬해 사이에 러시아를 거쳐 카프카스와 바쿠까지 닿았고, 그 후에 혼자 페르시아와 오스만제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 1차 아시아 여행을 토대로 1887년에 첫 여행기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캅카스 지방》를 발간했다. 1889년에는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의 여행기를 축약한 번역서를 냈다. 이 해부터 그 다음 해까지는 베를린 대학에 가서, '실크로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에게 전문 지리학 교육을 받았다. 

25살이었던 1890년부터 그 이듬해까지는 스웨덴 공식 사절단의 일원으로 페르시아를 방문한 후, 독자적으로 러시아령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그해 겨울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카슈가르까지 여행했다. 이 2차 여행을 토대로는  《오스카르 국왕의 사절단》과 《호라산과 투르키스탄을 횡단하다》를 썼다. 딱 내 나이 때 벌써 거창한 탐험을 두 번 하고 책을 네 권 냈구나.   

28살이었던 1893년부터 1897년까지는 러시아와 파미르 고원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제3차 아시아 탐사 여행을 했다. 무스타그아타 산의 등정을 시도하고 타클라마칸 사막 서부를 건너서 호탄 강까지 여행하던 도중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그 유명한 고대 도시 누란을 바로 이때 발견했다. 로프노르 호수 주변 지역을 조사하고 북부 티베트를 거쳐 1897년에는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 탐사의 성과를  《아시아 대륙을 관통하여》로 정리해서 출판했다. 이듬해에는 그간의 탐사 성과를 널리 인정받아 영국 왕립 지리학회와 스웨덴 지리학회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지리학회로부터 수많은 메달을 받았다. 

34세였던 1899년부터 1902년까지는 제4차 아시아 탐사를 진행했다. 타림 강을 따라 내려가서 로프노르 호수 지역을 조사하고 누란을 다시 방문했다. 티베트를 탐사하고 지도를 작성했지만 라싸에 이르지 못하고 저지당한 후, 라다크와 카슈미르를 경유해 스웨덴으로 귀국하여 국왕 오스카르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 탐사 여행 성과를 《중앙아시아와 티베트》와 여러 권의 학술 저작으로 정리하였고, 영국 왕립 지리학회로부터 빅토리아 메달을 수여하였다. 

41세였던 1906년부터 1908년까지는 제5차 아시아 탐사를 했다. 페르시아를 횡단하여 인도로, 다시 인도에서 영국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티베트로 들어갔다. 그 결과 남서부 티베트에 대한 상세한 관찰 기록을 남겼고,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트랜스히말라야 산맥을 탐사하고 인도 주요 강들의 수원을 발견했다. 

43세였던 1908년에는 이토 히로부미의 초청으로 대한제국 경성에 와서 고종과 순종을 알현했다. 같은 달 19일 서울 종로 기독청년회(YMCA) 회관에서 강연을 했는데, 청중이 모두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강연장 밖에 있는 몇몇 조선인들을 들여보내야 강연을 하겠다고 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자 비로소 강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강연은 실크로드의 탐험 및 연구의 역사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첫 번째 계기였다. 순종을 알현하고 돌아간 뒤인 1909년 1월, 대한제국 왕실로부터 서훈 1등급인 팔괘장 훈장을 받았다. 

51세인 1916년에는 중동을 여행한 후 저서 두 권을 간행했으며, 58세인 1923년에는 미국을 여행한 후 베이징, 몽골, 모스크바를 경유해 귀국하였다. 이 여행 성과를 《그랜드캐니언》과 《베이징에서 모스크바까지》로 정리했다. 1926년부터 1935년까지는 독일과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여러 분야 전문가가 포함된 대규모 학술 조사단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중앙아시아 탐사 여행을 하였다. 몽골에서 상당 기간 체류한 이후 타림 분지로 가는 도중에 중국계 무슬림 소수민족인 둥간의 반군 지도자 마중잉의 군대에 억류되었다. 이 탐사 중에 로프노르 호수가 이전 위치로 이동한 현상을 조사하였고, 이 탐사에 대한 대중 젖가을 발간하였다. 

헤딘은 40대 후반부터 재무장을 옹호하고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 친독일 르포를 발표하는 등 친독일 행보를 견지했다. 이 때문에 영국 왕립 지리학회에서 제명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친독일 노선은 계속 이어져, 제2차 세계대전 전인 1936년에는 독일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나치 지도자들과 교분을 쌓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에 대한 여러 '사적인' 외교 임무들과 친나치 기고 및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국의 루즈벨트를 비난하는 《대륙 간 갈등 속의 미국》이 있다. 

1952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스톡홀름 왕립 과학원과 민족학 박물관에 스벤 헤딘 재단이 설립되었다. 말년의 전시 외교 활동에 대해 아무런 변명 없이 기술된 회고록, 자신이 만났던 위대한 인물들에 대한 두 권의 회상록, 아시아 탐험에 함께한 개들에 관한 책 한 권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