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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중앙아시아 탐험가 (5) - 포타닌 부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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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중앙아시아 탐험가 (5) - 포타닌 부부

bravebird 2018. 9. 17. 21:37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의 탐사 범위는 거대한 중앙아시아 전체를 포함하진 못했다. 몽골, 중국 서부 및 티베트 영토에는 유럽인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영역이 많이 남아 있었다. 프르제발스키와 동시대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다른 유명 탐험가들이 이 범접하기 어려운 지역을 조사했다. 


중앙아시아 탐험

프르제발스키가 두 번째 탐사를 시작한 1876년에 지리학회는 또다른 중앙아시아 탐험대를 꾸렸다. 북서부 몽골 조사가 그 목적이었다. 세 탐험가가 자이산에서 출발하여 몽골 알타이 산맥을 넘고 콥도에 도착했다. 탐험 대장은 전직 장교인 그리고리 포타닌이었다. 그는 갓 30세에 징역과 추방 등 많은 일을 겪었다.

그리고리 포타닌


포타닌의 운명

그리고리 포타닌은 옴스크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군에서 복무했으며, 이후 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863-1864년에는 지리학회의 자이산 호수 탐사에 참가하여 식물 채집을 하였다. 그러나 포타닌은 시베리아를 러시아로부터 분리하려는 선동 조직에 참가한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거의 9년간 징역과 추방 생활을 한 다음 1874년에 러시아 지리학회의 청원에 의해 석방되었다. 지리학자들은 그리고리 포타닌의 학문적 업적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탐험대를 조직하는 임무를 맡겼다. 


몽골 알타이

몽골 알타이는 몽골과 중국 영토 수천 km를 가로지르는 산맥이다. 1870년대에는 이곳에 지도상 공백이 많았다. 포타닌 탐험대는 콥도에서 출발했는데, 그 중에는 지형학자 라파일로프와 포타닌의 부인 알렉산드라 포타니나가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몽골 알타이를 세 번 넘고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산맥을 발견했으며 빙하와 산골짜기를 연구했다. 이외에도 준가르 사막을 횡단하고 조사하여 몇몇 새로운 호수를 지도에 표시하고 다양한 동식물 샘플도 채취하였다. 민속학자이자 화가인 알렉산드라 포타니나는 여행 스케치를 남기는 것 이외에도 북서부 몽골에 거주하는 준가르, 호톤, 오이라트 등 여러 민족의 문화, 생활 및 역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생산했다. 당시 민속학자들은 이러한 민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포타니나가 수집한 정보는 학계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알렉산드라 포타니나 


몽골과 중국을 따라서

포타닌 부부는 세 차례의 탐사를 더 진행했다. 1879-1880년에는 몽골 중부를 조사하여 새로운 산맥을 발견하고 지도에 추가했다. 1884-1886년에는 그제까지 별로 연구된 바가 없었던 중국 서부와 티베트가 목적지였다. 탐험대는 바닷길을 통해 중국에 도착했다. 유럽을 돌아 수에즈 운하와 인도양의 홍해를 지나서 마침내 아시아 대륙을 둘러 중국 황해의 취푸 항(현재의 옌타이)에 닿았다. 러시아로 돌아갈 때는 고비 사막과 몽골 중부를 지나서 프르제발스키가 두 번 탐사 출발지로 삼았던 부리야트 마을 캬흐타에 도착했다. 


마지막 탐험

포타닌 부부의 연구 및 발견 성과는 지리학회가 출판한 보고서를 통해 학계에 알려졌다. 그런데 동티베트를 향한 1892-1893년 탐사에는 불운이 닥쳤다. 알렉산드라가 심하게 앓자 대원들은 그녀를 상하이에 이송하기 위해 재빨리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용감한 알렉산드라는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로부터 6년 후 포타닌은 중국 동북부의 화산 지형인 다싱안링 산맥으로 자신의 마지막 탐사를 떠났다.  




이상이 번역 내용이다. 

그리고리 포타닌은 간쑤의 위구족 언어를 연구해서 사전을 만들기도 했다. 알렉산드라 포타니나는 최근 출간된 도서에서 최초의 여성 실크로드 탐험가로 소개되었는데, 포타니나 이전에도 올가 페드첸코 등 여성 학자들이 이 지역을 탐험했던 것 같다. 러시아 여자들 역시 강인한 것.


포스팅을 보면 포타니나의 생애에 대해서 잘 나와있음. 이 내용을 바탕으로 《유라시아로의 시간 여행》 중 포타니나 관련 부분을 쓰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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