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독수리 요새

표트르 코즐로프의 카라 호토 탐험 본문

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표트르 코즐로프의 카라 호토 탐험

bravebird 2018.10.02 21:36

표트르 코즐로프는 러시아의 실크로드 탐험가 중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와 함께 제일 유명하다. 프르제발스키가 발탁한 제자이자 동행이었다. 심지어 둘은 비밀 연인(!)이었을 거라는 설이 프르제발스키 전기에 등장할 만큼 각별한 관계였다. 프르제발스키는 평소에 자기 부하가 결혼을 하면 실연당한 것처럼 질투하고 슬퍼하며 결혼을 매우 막았다고 한다. 덕분에 동성애자였다는 추측을 많이 받는다.



 

여하튼 코즐로프는 프르제발스키 사후에도 독자적인 탐험 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고비 사막의 버려진 도시 카라 호토(흑수성)를 발굴해 내어 서하 왕조(1038–1227)의 전모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카라 호토는 서하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서하는 티베트·강족 계통의 탕구트인이 북중국 고비 사막에 세운 국가다. 이후 징기스 칸이 서하 전투에서 사망할 만큼 몽골군 상대로 거세게 항쟁했다. 서하는 결국 몽골에 멸망당하고 대대적인 제노사이드를 당해 그 후손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쓰촨이나 간쑤 등지의 강족, 가융장족 계통이 서하의 후예와 관련 있을 거라는 설이 있다. 저기가 바로 올해 글쓴 적 있는 동녀국 그쪽 동네다. (2018/06/01 - 티베트 여인국 - 동녀국)


서하 범위


카라 호토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서하 문자로 쓰인 서하 문서와 불화, 조각 등을 포함한 카라 호토 유물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표트르 코즐로프의 발굴품이다. (2016/05/07 - 에르미타주 박물관 중앙아시아 전시실 소개글) 2014년 에르미타주에 처음 갔을 때 뜻밖의 서하 문서를 보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2012년 실크로드 여행 중에 서하 유적에 간 적이 있다. 닝샤 후이족자치구의 대표 도시인 인촨이다. 당시 간쑤 톈수이에서 밤기차를 타고 가서 낮에 서하왕릉 + 회족박물관을 본 다음, 그날 밤기차를 타고 돌아갔다. 이때만 해도 코즐로프의 존재는 전혀 몰랐음. 2년 후 에르미타주에서 서하 컬렉션을 보게 될 줄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앞뒤 여행이 연결이 되니 신기했다. 이 이후로 실크로드 탐험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하면서 여행 다니게 되었다. 


2012 닝샤 인촨 시 서하왕릉


2014년 에르미타주에서 찍어온 서하문 활자. 한자를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한자가 아니다.


2016 에르미타주에서 찍어온 서하 그림. 캡션은 흔들려서 안 보임.



표트르 코즐로프의 카라 호토 발굴에는 숨은 수훈자들이 있었다. 그리고리 포타닌과 블라디미르 오브루체프, 그리고 촉토 바드마자로프가 대표적이다. 포타닌과 오브루체프는 고비 사막의 에친 골(강 이름) 근처에 고대 도시가 있다는 소문을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시안 박물관(현재의 IOS)에 전했다. 이를 계기로 아시안 박물관은 코즐로프 탐험대를 조직한다. 또 바드마자로프라는 부리야트인이 코즐로프에 앞서 1907년에 카라 호토를 탐험하고 관련 사진과 정보를 러시아 지리학회에 보냈다. 코즐로프는 이를 참조하여 1908년 카라 호토에서 서하 문서, 불상 등을 발굴하고 1909년에도 추가 발굴을 했다.

 

영국의 오렐 스타인도 1914년에 8일간 카라 호토를 탐험했다. Innermost Asia 1권의 챕터 13이 그 내용이라고 한다. 미국의 랭던 워너도 1925년 방문했다. 이외 스웨덴인 폴케 베리히만(Folke Bergman)도 1927과 1929년에 카라 호토 근처에서 1년 반을 머무르며 지도를 만들고 망루와 성벽을 조사했다. 스웨덴의 스벤 헤딘은 중국의 쉬 쉬셩과 함께 1927-1931년 사이 카라 호토를 방문했다. 미국의 중국학자 존 드프랜시스는 1935년에 방문했다. 이후 1983-1984년에는 중국의 탐사가 있었다. NHK와 CCTV 합작의 80년대 유명 다큐 <실크로드>에도 카라 호토를 직접 찾아간 편이 포함돼 있다. 아래와 같이 유튜브에서 영어 버전으로도 볼 수 있다.




카라 호토는 원래 치롄 산맥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두 군데로 갈라진 사이에 위치한 요충지였다. 이후 14세기 무렵 강이 말라 버려, 현재는 생명체가 없는 검은 사막이 망망하게 펼쳐져 있다. 폐허가 된 괴기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마귀의 성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현지인들이 외국 탐험대의 길잡이는 되어 주어도 성에 들어가는 건 한사코 거부했다고 한다. 카라 호토 근처에는 토르구트(이들이 러시아 볼가 강 유역으로 이주해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칼미크인)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데 심각한 사막화로 많은 수가 이주했다.


카라 호토 근처의 사막화에 대한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어 자막 있음)



 

■ 표트르 코즐로프의 탐험 경력
1차 - 프르제발스키 4차 탐험 동행
2차(1889-1900) - 프르제발스키 사망(1888) 후 페브초프가 이끈 탐험대에 참여
3차(1893-1895) - 로보로프스키 대장 / 난샨, 티베트 남동부
4차(1899-1900) - 코즐로프 대장 / 몽골, 티베트 캄
5차(1907-1909) - 코즐로프 대장 / 몽골, 티베트 암도, 카라 호토
6차(1923-1923) - 코즐로프 대장 / 노인 울라

 

 

 

※ 참고 


서하(西夏)의 후예들은 어디로 갔는가?

http://www.jnu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0849

2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