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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Oasis Identities

bravebird 2019. 8. 19. 01:03

이 책은 1997년에 출간되었으며 현지 조사는 1980년대에 이뤄졌으니 책 속 내용은 거의 30년이 지난 이야기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장에 대한 관심이 뜸하고 연구가 드물었던 시절의 인류학 현지 조사 결과이기에 나름 신장 관련 필독서일 것으로 예상이 된다.

 

Identities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신장 내에서 경합하는 여러 정체성에 대한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위구르 농민 계층은 지리적 이동이 거의 없기에 자신이 속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스스로의 집단 정체성을 규정한다. 반면 상인 계층은 중국 내지의 대도시와도 교류하므로 신장의 범주를 넘어 중국 공민이라는 의식 역시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와는 달리 지식 계층은 주로 한족과의 대비를 통해 위구르라는 민족 의식을 강조하며 세속적 범투르크주의 성향도 있어 다소 이념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위구르인 내부의 다양한 자기 의식이 위구르를 단일 민족으로 보는 지식 계층의 관념과 다소 배치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신장에는 여러 오아시스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네 가지로 카쉬가르, 호탄, 이리, 투르판이 있는데, 각자 다른 역사와 특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농민 계층에게는 특히 카쉬가르 사람, 이리 사람 같은 오아시스 정체성이 '위구르'라는 정식 민족 범주보다 우선한다고 한다.

 

우선 카쉬가르는 카라한 왕조 당시인 950년경 이슬람화되었는데, 이때부터 주변 지역에서 이슬람 중심지로 손꼽혀 왔다. 1500년대 이후에는 인근의 코칸드 칸국과 갈등 관계였으나, 청은 코칸드 칸국 출신 상인들(Andijanis)이 카쉬가르에서 거주하도록 허용해 주었기에 코칸드 칸국의 영향도 많이 받은 지역이다. 1860년대 야쿱 벡 반란 이후로는 그레이트 게임의 무대가 되어 영국과 러시아 공사관이 지어졌다.

 

호탄은 천산남로 상의 오래된 문화 도시로, 인도 및 티베트 문화권과 인접해 있다. 고대 불교가 남아시아로부터 중국으로 전래될 때 이 호탄을 거쳤다. 따라서 호탄은 불교 국가였는데 지리적으로도 상당히 고립된 위치여서 이슬람화도 다소 늦게 진행된 편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31년도에 이슬람 공화국(Turkish Islamic Republic of East Turkestan, TIRET)이 이곳에 세워졌다.  

 

이리는 예로부터 농경, 목축, 무역이 활발했던 부유한 지역이다. 청-준가르 전쟁 이후 빈 땅을 채우기 위해 신장 기타 지역 주민들을 이리로 대거 이주시켰는데 이 사람들을 Taranchis라고 불렀다. 이들은 위구르인과는 다른 별도의 민족 집단으로 인식되다가 1949년 위구르족으로 최종 식별되었다. 소련과 인접한 이 지역에서는 1944-1949 기간 동안 소련의 지원 하에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이 설립되었으며, 대약진 운동 당시에는 약 6만~12만 명의 위구르, 카자흐족이 이곳에서 소련으로 이주했다. 

 

투르판은 몽골 지역에서 당나라를 놀라게 했던 고대 위구르 제국의 후예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위구르 제국은 몽골 제국 당시에 학자, 서기, 행정가, 고문 등 지식계급을 배출하였을 만큼 문화가 융성하였으며 고대 투르크 문자를 사용했고 실크로드 교류를 통해 불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를 받아들였다. 지리적으로 중국 내지와 가까웠으므로 중국 지향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조 당시에도 신장의 기타 지역은 무슬림 지도자를 지도자 '벡'으로 임명하여 통치하였다면, 투르판과 그 인근의 하미는 세습 통치권을 인정받은 자치 지역이었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격절된 각 오아시스의 역사와 풍습이 여러 세기에 걸쳐 오아시스 정체성을 발달시켰다. 근현대적인 의미의 위구르는 상당히 최근에 해당하는 1930년대 민족 식별 정책의 산물이다. 위구르는 이 시기 비로소 '신장 타림 분지의 오아시스에 거주하는 투르크 계통의 무슬림 민족'으로 정의되었으며, 이것은 둥간(투르크 계통이 아닌 중국 무슬림) 및 한인과의 구별짓기를 통한 것이었다. 

 

위구르라는 집단이 내포하는 뜻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 변해왔다. 744-840년 위구르 제국 당시의 위구르인은 몽골의 스텝 지역에 거주하는 투르크 계통의 유목 민족이었으며, 샤머니즘이나 마니교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위구르 제국이 키르기스인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유민이 흩어진 844-932년경에는 투르판 오아시스 지역의 정주민이자 불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을 뜻했다. 932-1450년경에는 주로 투르판 지역에서 불교를 믿는 투르크 계통의 엘리트 민족을 가리켰으며 이 때까지만 해도 '위구르'는 이슬람과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투르판보다 서쪽에 있는 지역에 살며 이미 이슬람을 받아들인 투르크인들과 구별하기 위한 용어였다. 투르판의 위구르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인 것은 15세기가 되어서였다. 이들이 타림 분지의 다른 오아시스 집단과 다함께 '위구르'로 묶인 것은 1930년대 중국공산당의 민족 식별 당시다. 

 

현재는 철도가 부설되고 신장으로 한족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오아시스 간의 차이보다는 한족과의 대비가 더욱 주요한 구도가 되었을 것이다. 한족 학교와 민족 학교를 나누는 제도권 교육도 '위구르'라는 집단 의식을 강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크고 작은 위구르족 반란 및 탄압 사건 역시 위구르 민족 의식에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책이 조사되고 출판된 당시보다는 위구르를 한 민족으로 여기는 경향이 훨씬 짙어졌을 듯. 

 

책에 의하면 위구르인 안에도 Dolans, Lopliks, Abdals, Keriyaliks, Kashgarliks, Eastern Uyghurs, Kuldjaliks(Taranchis)라는 일곱 가지 하위 분류가 있다고 한다. 이 분류가 요즘도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예전보다는 그 분류가 모호하고 의미도 적을 것이다.

 

Dolans - 카쉬가르 근처의 메르키트 지역 거주. 맨발로 걷는 습성이 있어서 가난하고 원시적인 사람들로 폄하되곤 함.

Lopliks - 로프 노르 근처의 어로 집단. Dolans와 Lopliks를 위구르와는 별도의 민족으로 보기도 한다. 알베르트 폰 르콕도 이런 견해를 접했었다고 한다. 위구르인 범주에 포함시키긴 하지만 좀 다른 집단이라고 인식되는 경향. 

Abdals - 신장 남부의 이단 무슬림 집단. 정주하지 않고 이동해 다님. 할례 풍습이 있다고 함. 가난한 사람들이라 위구르인들은 거지를 두고 Abdals라 부른다고. 

Keriyaliks - 호탄 동부, 타클라마칸 남쪽에 사는 사람들. 북인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코카서스 인종의 특성이 강하다고 여겨짐. 케리야에서만 여자들이 하얀색 머리 두건을 두르고 찻잔 사이즈의 작은 모자를 그 두건 위에 핀으로 꽂아 둔다고 하는데, 그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인도 문화의 영향으로 추측하는 경향. 

Kashgarliks - 이슬람 영향을 많이 받음. 

Eastern Uyghurs - 투르판, 하미 지역 사람들. 8-9세기 위구르 제국과 연관 깊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과 밀접하기 때문에 다른 위구르인들은 이 투르판, 하미 사람들이 위구르 특성이 제일 약하다고 생각함. 

Taranchis - 청의 준가르 정벌(1759) 이후 타림 분지에서 이리 지역으로 이주한 농경 집단. 1949년까지는 별도의 민족으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위구르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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