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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중앙아시아 탐험가 (6) - 미하일 페브초프 본문

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탐험가 (6) - 미하일 페브초프

bravebird 2018.09.19 21:27
1888년에 프르제발스키의 5차 탐험대는 카라콜 이식 쿨 근처에서 출발 준비를 마쳤으나 프르제발스키가 갑자기 사망했다. 탐험대는 이듬해 봄에 출발했다. 지리학회는 새로운 탐험대장으로 미하일 페브초브를 선임했다.

미하일 페브초프


준가르 사막에서
페브초프를 탐험대장으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두 차례의 중앙아시아 탐험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프르제발스키처럼 그 역시 군인이었으며 합동군사참모대학을 졸업했고 어렸을 때부터 탐험을 꿈꿨다. 기분 좋은 행운이 젊은 대장을 도왔다. 1876년에 그는 자이산에서 중국 신장 치타이 현으로 가는 카라반을 지키는 카자크 100명을 이끌어줄 것을 제안받았다. 그 길은 준가르 사막의 스텝 지역에 있었는데, 페브초프는 정확한 좌표가 표시된 이 지역 상세 지도를 최초 제작했으며 동식물 샘플도 수집했다.
 
페브초프 방식
페브초프는 1878-1879년 몽골과 북중국에서 두 번째 탐사를 했다. 루트는 기본적으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고비 사막 상 장소들을 가로질렀다. 이 여행을 통해 상세 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이외에도 페브초프는 두 번의 여행을 통해 그가 발명한 위도 측량 방법(같은 높이에 있는 두 별을 관찰하여 위도 측정)을 시험해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이 측량법은 페브초프 방식으로 불린다. 지리학회는 페브초프 두 번째 탐험을 지리학자 리트케의 이름을 딴 금메달로 표창하였다.
 
카쉬가르와 쿤룬
페브초프가 프르제발스키 사후에 이끈 탐험대는 1889년 봄에 카라콜에서 출발했다. 탐험대는 티베트 북부로 둘러싸인 쿤룬 산맥으로 향했다. 이들은 톈산을 넘어 카쉬가르에 도착했다. 카쉬가르는 실크로드의 상업 거점인 고대 도시다. 카쉬가르 서쪽으로는 높은 산들이 있고 동쪽으로는 모래 사막인 타클라마칸이 있다. 카쉬가르 오아시스에는 다른 고대 도시들도 있는데 그 중 페브초프 탐험대는 사막 변두리의 야르칸드에 도달하여 타클라마칸 사막의 서쪽 경계를 확정하였다. 탐험 루트는 톈산 남로의 고대 카라반 도시들을 따라 이어졌으며, 그 앞에는 쿤룬 산맥이 있었다. 페브초브는 탐험대를 새로 조직했다. 그는 이전에 프르제발스키 탐험에 참여했던 조수들에게 별도 루트를 할당해 주고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이런 방법을 구획 연구(исследование площади)라고 이름붙였다. 탐험가들은 주요 루트로부터 벗어나 평소보다 더 넓은 구역을 조사할 수 있었다. 1890년에 종료된 이 탐험의 결과는 학계를 놀라게 했다.

쿤룬 산맥

 
콘스탄틴 메달
페브초프는 쿤룬 산맥에서 새로운 산등성이를 발견하여 쿤룬 산맥의 전체 지도를 완성했다. 쿤룬 산맥 남쪽에서 티베트의 고산 사막을 발견했는데,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불모지였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크기가 밝혀졌다. 이 업적 덕분에 페브초프는 지리학회의 콘스탄틴 메달을 수여했다.


이상이 책 번역 내용이다. 프르제발스키와 같이 탐험했으며 프르제발스키와 심상치 않은(연인) 관계였던 걸로 보이는 또다른 탐험가 표트르 코즐로프가 저 카쉬가르·쿤룬 탐험에 동행했다고 한다. 코즐로프는 몽골의 카라호토(흑수성)을 탐험했고, 서하문으로 된 고문서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많이 가지고 갔는데 이건 에르미타주에 가면 많이 있다. (관련 이전글

나 2016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표트르 코즐로프 박물관도 찾아갔었는데... 택시까지 타고 먼 거리를 간 건데 홈페이지에 안내된 것과는 다르게 개방을 안했고, 러시아어 못하는 죄로 직원들한테 거의 문전박대를 당했었지만 그래도 가긴 갔다. 의외로 표트르 코즐로프가 이 백과사전에 안 실려 있었으니 다음에 2012년 서하왕릉 방문 + 2016년 코즐로프 박물관 방문 기억을 더듬어 따로 글 써봐야지. 러시아 탐험가 하면 코즐로프가 빠질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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