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육솜 - 시킴 왕국이 세워진 곳 본문

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육솜 - 시킴 왕국이 세워진 곳

bravebird 2023. 1. 12. 16:59

시킴 왕조는 1642년에 건국되었다. 춤비 계곡을 통해 동부 티베트에서 시킴으로 이주해온 부티아인의 왕국이다. 시킴 땅에 원래 살던 원주민은 렙차인이며 1641년까지 이 지역을 지배했지만 당시의 문헌 기록은 없고 구전으로만 전한다. 1642년도의 건국 역시 설화처럼 남아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 전설의 고향에 다녀왔다. 펠링에서부터 일일 투어 택시를 수배해서 육솜으로 이동하면 코스를 돌고 올 수 있다.

 

강톡에서 펠링으로 가는 셰어 택시를 아침 일찍 탄 날 옆자리에 다운증후군 남자아이가 있었다. 정말 천사처럼 활짝 웃으면서 내 팔을 잡고 차에 타도록 도와줬다. 난 즉시 무장해제가 되었다. 덕분에 동행한 보호자와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또래여서 바로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는 셰르파였는데 역시나 내가 셰르파인 줄 알았다. ㅋㅋㅋ 남자아이는 열세 살이라고 했는데 만약 보통 열세 살짜리였다면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미소를 지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는 남자아이의 삼촌이었다. 아이 어머니가 일찍이 집을 떠나고 아버지는 연초에 돌아가셔서 자신과 누나가 함께 조카를 돌본다고 했다. 자기는 형이 셋이고 누나가 하나인데 첫째 둘째 형이 2022년 초에 몇 개월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명절을 앞두고 조카의 장래에 대해 고견을 여쭙기 위해 룸텍 사원을 방문한 다음 귀가하는 길이었다. 나도 같은 날 룸텍에 다녀왔기 때문에 이야기가 수월했다. 

 

이 친구는 몇 마디만 나눠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격이 높은 영혼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부모님 두 분이 어릴 때 돌아가셔서 고아로 자랐지만 술담배를 문자 그대로 입에 댄 적이 없으며 독실한 불교 신자이다. 고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12학년까지 마쳤는데 대학은 진학했지만 지원이 끊겨서 계속 다닐 수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자기 앞길을 알아서 개척하며 남겨진 가족들을 책임지고 고생하는 누나를 도우며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다. 인간 자체가 강하고 고귀해서 존경심을 느꼈다. 

 

안 해본 일이 없어서 영어는 너무 잘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너무 얻고 싶어서 공무원 면접을 보았고, 다행히 합격해서 몇 개월 전부터 관공서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첫 월급은 자신이 졸업한 학교에 전부 기부했다. 자신의 형 역시 그 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날 때 수많은 학생들의 배웅을 받았다고 한다. 누나는 결혼하지 않고 형제들을 위해 한평생 희생하며 조카까지 맡아 기르다 매일 젖을 억지로 짜야 했고 그러다 유방암이 발견되었는데 이제는 5년 이상 지나서 괜찮다고 한다. 조카는 자기한테 축복이라고 했다. 조카를 맡게 되면서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렸다고 했다.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정말 잘해 드렸을 텐데 하는 것만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듣는 이 모든 내력이 잘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날 펠링 바로 근처인 게이징에 내려서 친구의 누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정말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았다.

 

너무 맛있었다

 

식후에 펠링으로 이동해서 짐을 두고 랍덴체 유적을 본 다음 저녁을 먹고 일찍 잤다. 다음날 친구가 택시를 알아봐 주고 동행을 해준 덕분에 편리하게 육솜을 다녀왔다. 친구는 펠링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할 때 시킴의 전설에 대해서 어른들께 묻고 인터넷도 찾아보는 등 조사를 많이 해둔 터라 많은 얘길 들려주었다. 당시에 그 귀중한 이야기를 녹음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 시킴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때 들은 이야기들을 되살려본다. 그날 육솜에서 간 곳들이다. 

케체팔리 호수 - 덥디 사원 - 노르부강 - 카톡 호수 - 칸첸중가 폭포

 

석가모니는 자신이 죽은 후 '파드마삼바바'라는 이름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드마삼바바는 '연꽃에서 태어난 자'라는 의미이다. 히말라야 문화권에서는 석가모니에 버금가는 존경을 받고 있으며 불법의 수호자로 추앙된다. 파드마삼바바는 8~9세기경 시킴을 통과하여 티베트를 방문했다. 이때 시킴 땅에 축복을 내렸고 불교를 전파하면서 몇 세기 후 왕조의 출현을 예고했다. 참고로 이때 파드마삼바바는 티베트에 탄트라 불교를 전파하였고 치송데짼 왕의 후원 하에 티베트 최초의 사원인 삼예 사원을 세웠으며 이곳은 티베트 불교 닝마파의 뿌리가 된다. 이후 티베트 내에서 달라이 라마를 수장으로 하는 겔룩파가 세력을 장악하면서 닝마파 및 카규파 승려들은 시킴 지역으로 대거 이동하였다. 현재까지도 시킴의 불교는 닝마파가 우세하며 그 다음으로는 카규파이다. 

 

티베트에 밀교를 전파한 구루 린포체(파드마삼바바)


13세기에 미냑(서하를 건국한 탕구트인)의 왕자인 구루 타시는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라는 계시를 받아 춤비 계곡 지역에 정착했다. 그때 그곳에는 렙차, 림부, 마가르인이 살았으며 이후에 동부 티베트로부터 이주해온 부티아인들도 함께 거주하게 된다. 이후 1642년에 구루 타시의 5대손인 푼촉 남걀(Phuntsok Namgyal)이 시킴의 왕인 '초걀'로 추대된다. 각각 북쪽, 서쪽, 남쪽에서 온 라춘(Lhatsun Namkha Jigme), 아닥(Ngadak Sempa Chempo), 카톡(Kartok Kunto Zangpo)이라는 세 명의 닝마파 승려가 시킴 서부의 육솜에 있는 노르부강에서 푼촉 남걀을 초대 왕으로 추대한 것이다.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는 '육솜'이라는 지명은 '세 명의 승려가 만난 곳'이라는 의미이며 노르부강이 그 현장이다. 이 사건을 Naljor Chezhi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을 구루 린포체(파드마삼바바)가 약 800년 전에 예고하였다고 한다. 푼촉 남걀은 이 세 명의 승려와 함께 원주민인 렙차인들을 불교로 개종시켰으며 현재의 시킴 지역을 장악해 나갔다. 

 

육솜의 노르부 강, 바로 이 나무 밑에서 시킴 왕조가 개창되었다. 세 명의 승려와 푼촉 남걀의 그림이 놓여 있다.
맞은편 불탑. 이 불탑에는 시킴 전역의 물과 흙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승려 라춘(Lhatsun Namkha Jigme)의 발자국

 

2대 초걀 텐숭 남걀(Tensung Namgyal) 재위 중 육솜에서 랍덴체로 천도했다. 이후 네팔의 구르카가 시킴을 침략하면서 초걀 텐징 남걀(Tenzing Namgyal)은 티베트로 피난한다. 제8대 달라이 라마는 현재의 중국 티베트 야둥 현 쪽으로 초걀을 보내어 살게 했다. 1793년에 그의 아들 추푸 남걀(Tshudpud Namgyal)은 시킴으로 복귀하였는데 이때 네팔과 거리가 가까운 랍덴체로부터 텀롱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텀롱은 못 가봤지만 랍덴체 유적은 이 전날 다녀왔다.

 

랍덴체 유적
랍덴체 유적

 

노르부강보다 앞서서 갔던 케체팔리 호수는 타라 보살 혹은 시바 신의 발자국으로 알려진 호수이다. 구루 린포체(파드마삼바바) 역시 이곳을 축복했다고 한다. 이곳 호수에는 나뭇잎이 떨어져 있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나뭇잎이 떨어지면 새들이 물고 간다고 한다. 또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하여 물고기밥 같은 것들을 던질 수 없도록 금줄로 막아두었다. 이곳은 축복이 깃든 호수로서 현지 사람들이 소원을 빌러 오는 성지이다. 원래는 카톡 호수가 케체팔리 호수의 역할을 했지만 오염이 되면서 현재의 케체팔리 호수로 대체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케체팔리 호수에서도 기도했다. 일일 가이드를 자처해준 친구 가족을 위해. 친구는 바라는 것 없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카톡 호수. 푼촉 남걀은 즉위 당시 이곳의 성수로 축복받았다.

 

이날 아침에 일찍 시작해서 오후 한 3~4시까지 돌아보고 일찍 들어가서 짐 싸고 잤다. 살다가 업데이트가 있으면 서로서로 해주기로 하고 best wishes 빌어주었다. 친구는 다행히 부모님이 남기고 가신 부동산이 조금 있어서 그곳에 살고 있는데 현재 직장에서 우선 정착한 다음 은행 대출을 받아 더 확장하고 싶다고 했다. 세입자도 더 받고 에어비앤비도 해보고. 조금 더 기반을 다진 다음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조카는 스님이 되고 싶어하는데 사원으로 바로 가는 것보다는 강톡에 있는 괜찮은 특수 학교를 알아봐 놓았으니 그곳을 먼저 한번 보내보고 나서 다음 단계를 모색해볼 것 같다고 했다. 이 가족들의 소식이 너무 궁금할 것 같고 항상 응원할 것이다.

 

친구가 나에게 차분하고 즐거워 보인다고 했는데 나는 사실 여기 오기 직전까지 좀 앵그리영맨이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침저녁으로 5분 정도씩만 오직 숨쉬는 데만 집중하는 명상을 해볼 것을 추천해 주었다. 그날로 바로 시작해서 하고 있다. 하다 보면 다른 생각이 날 텐데 다시 숨쉬는 것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오면서 시간을 늘려보라고 했다. 까먹을 때도 있지만 취침 앞뒤에 5분씩만 일단 해보고 있다. 명상을 하다 보면 그 짧은 시간 중에도 참 이곳저곳으로 생각이 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잠에 다시 빠져들려고 할 때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떤 엉뚱한 생각의 흐름이 꿈처럼 몰려드는 것을 느낀다. 그때 다시 의식을 붙잡으면서 코끝에만 집중하는 노력을 한다. 물론 다시 잠은 온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하면 되지???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바로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친구에게 다시 한번 감사. 2023년 목표는 별 거 없고 취침 앞뒤로 짧은 명상 습관 붙이기. 

 

노르부강과 랍덴체 유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서 읽어볼 수 있음.

더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