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시킴의 지정학적 의미 본문
J. Ware Edgar의 탐사보고서 Sikhim and the Thibetan Frontier를 끝내고 시킴에 대한 두 번째 책으로 넘어갔다. 1960년대에 시킴과 부탄에 주재했던 인도 외교관 Preet Mohan Singh Malik이 쓴 Sikkim - A History of Intrigue and Alliance인데 이것부터 읽을걸 그랬다. 첫 책은 1800년대에 쓰인 탐사보고서인데 얇지만 지명이나 인명, 당시의 직책명 같은 것들이 너무 낯설고 표기도 현대와 달랐다. 지도를 많이 들여다보고 옛 지명을 현재 지명과 대조해야 했다. 지금 책은 더 넓은 시공간적 범위를 포괄해서 다루기 때문에 첫 번째 책이 그 중 어떤 시공간을 배경으로 쓰였는지 뒤늦게 이해되는 동시에 내가 이해를 못해서 놓친 디테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킴은 옛날부터 중국과 티베트와 인도를 잇는 차마고도가 지나가는 길목이었고 티베트와 문화적, 종교적, 민족적으로 가까웠다. 인도를 지배한 영국은 시킴을 티베트 진출을 위한 통로로 삼았다. 영국에게 있어 티베트와 시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은 투르키스탄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오는 제정 러시아와의 직접 충돌을 막아주는 중요한 완충지대였다. 이후 인도가 독립하고 티베트가 중국에 침공당하자 시킴은 중국과의 직접적인 국경 지대로서 커다란 전략적 가치를 갖게 되며 인도는 1975년 주민 투표에 의해 시킴을 병합한다. 최근까지도 시킴에서는 중국과 인도 간 간헐적인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Chumbi Valley, Doklam, Nathu La 개념도
Chumbi Valley는 중국 티베트 야둥 현이 위치한 곳으로 인도의 정수리를 찌르는 침에 비유할 수 있다. 옛날에 당 태종 때 중국이 인도 카나우지에 사신을 보냈다가 푸대접을 받고 복수하기 위해서 이곳을 통해 군사를 보내 인도를 위협한 적이 있다. 시킴 왕조가 이 춤비 계곡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당 기간 동안 갖고 있었으나, 당시의 영국 식민 당국과 인도 독립 이후에 자와할랄 네루 모두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을 적절히 평가하지 못하였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러한 나이브함 때문에 이 지역은 티베트에 속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고 결국 현재는 중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근데 궁금한 것이, 춤비 계곡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킴의 지배에서 이탈하여 티베트 영토가 되고 결국엔 중국 땅으로 확정된 것인지 확실치 않아서 이것은 나중에 다른 책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좀 찾아보겠다. 중국은 1965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춤비 계곡의 경계 지역인 Nathu La와 Jelep La에서 인도인들을 쫓아냈다. 뒤이어 1967년에는 Nathu La, Cho La에서 중국과 인도 간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Nathu La, Cho La, Jelep La는 춤비 계곡과 시킴의 주요 지역을 잇는 산길이다. Nathu La는 강톡, Cho La는 시킴 왕조의 세 번째 수도였던 텀롱, Jelep La는 칼림퐁과 이어지며 각자 거리가 가깝다. Doklam은 Chumbi Valley 끝부분에 인도, 부탄, 중국이 만나는 지역이다. 2017년에 이곳에서 중국-인도 간 군사 대치가 있었다.
실리구리 회랑 (Chicken's Neck) 개념도
네팔, 부탄, 중국, 방글라데시의 국경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실리구리 회랑은 폭이 2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매우 좁은 통로이다. 바로 이곳에 동북부로 가는 관문도시 실리구리가 있다. 인도 다른 지역으로부터 실리구리를 거쳐 시킴뿐 아니라 아루나찰 프라데시, 아쌈, 나갈랜드, 트리푸라, 미조람, 메갈라야, 마니푸르 등 동북부 주로 접근할 수 있다. 인도의 안보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길목이며 현재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춤비 계곡이 여기서 가깝다. 인도로서는 중국이 춤비 계곡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위협적이다.
시킴에 관한 주요 사건
1775~1815 구르카, 부탄의 시킴 지배
- 이 당시 상당수의 네팔인이 시킴으로 이주함
1788 구르카의 티베트 침공 (1차)
- 이때 청 정부는 파병하지 않음
- 네팔이 티스타 강 서쪽의 시킴 전역(테라이 지역)과 티베트 일부 지역을 차지함
1790 구르카의 티베트 침공 (2차)
- 구르카 군대의 타시룬포 사원 약탈, 시가체 점령
- 청군 출병 (건륭제)
- 이때 시킴은 청, 티베트 편에서 함께 구르카를 물리쳤으나 이전에 네팔에 빼앗긴 시킴 영토를 돌려받지 못함
- 이후 시킴은 영국과의 우호 관계를 통해 네팔에 맞서려고 함
1814~1816 영국-네팔 전쟁
- 이때 시킴이 영국 편에서 함께 싸움
1816 Treaty of Sugauli
- 네팔이 영국에게 시킴 지역을 넘김
1817 Anglo-Sikkim Treaty of Titalia
- 영국이 시킴의 안보를 책임짐
- 그 대가로 영국은 티베트 국경 지역까지 통행할 수 있게 됨
- 이전에 시킴이 네팔에 빼앗겼던 영토의 일부를 영국이 시킴에 반환함
1835 Cession of Darjeeling
- 영국은 Treaty of Titalia의 대가로 다르질링의 양도를 시킴에 요구함
- 다르질링이 영국 차지가 되어 이후부터 차 재배 시작, 티베트 접근을 위한 요충지로 활용됨
1861 Anglo-Sikkim Treaty of Tumlong
- 시킴을 통행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
- 자유 무역 보장
- 시킴은 실질적으로 영국의 보호국이 됨
1888 Sikkim Expedition
- 영국이 시킴으로부터 티베트군을 쫓아냄
1890 Sino-British Convention of Calcutta
- 중국은 시킴이 영국의 보호국임을 인정
- 시킴과 티베트 사이의 경계선이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존속
1903~1904 Younghusband Expedition to Tibet
- 투르키스탄과 티베트를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
1904 Anglo-Tibetan Convention of Lhasa
- 티베트 야둥, 간체, 가르톡 지방에서 영국인에게 교역 허용
- 티베트는 75만 루피의 채무를 변제하기 전까지 춤비 계곡을 영국에 할양
1906 Anglo-Chinese Convention
- 영국은 중국의 티베트 소유권을 재확인
-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대신 티베트를 합병하거나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함
- 중국은 여타 국가 역시 티베트의 영토나 행정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함
1950 India-Sikkim Treaty
- 시킴이 인도의 보호국화
- 중국의 티베트 침공 이후 인도는 시킴의 지정학적 가치를 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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