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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시킴 차마고도

bravebird 2023. 1. 3. 22:45

 

12월 22일에 책과 차를 강톡에서 EMS 보냈는데 뜻밖에도 오늘 벌써 도착해서 기분이 좋다.

 

산 것 중에 J. Ware Edgar의 Sikhim and the Thibetan Frontier라는 1873년에 출간된 탐사보고서가 제일 얇아서 이것부터 시작했다. 옛날 책이라 지명이 표기도 다르고 이름 자체가 많이 바뀌어서 생소하다. 허겁지겁 컴퓨터를 켜서 구글 지도와 웹검색을 병행하다가 이 책이 언급된 차마고도 관련 문서(링크)를 같이 읽게 되어 한번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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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방문한 웨스트 벵갈 북부와 시킴은 저 지도에서 Siliguri(실리구리)라는 지명이 보이는 곳이다. 중국 티베트의 야동 현, 부탄, 네팔, 방글라데시 사이에 있다. 한 10여년 전 지도에 별표를 찍어놓은 것에 막연히 이끌려 이제서야 여행했는데 막상 가보니 이곳이 차마고도였다. 기존에 잘 몰랐다.

 

쏭고 호수와 나툴라 위치

 

중국 티베트 야동 현에서 시킴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바로 지도상의 Nathu La Pass(나툴라 패스)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곳은 현재 인도 국적자만 목요일에서 일요일 사이에 특별 퍼밋을 받은 후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외국인은 갈 수 없는 것 같다. 외국인은 나툴라 패스와 차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쏭고 호수(Tsomgo Lake라고 표기, 네팔어 화자들은 '창구' 호수라고 발음했음)까지는 갈 수 있다. 강톡에 방문한 많은 여행자들이 쏭고 호수에 일일 투어를 다녀오지만 나는 차타는 것이 지겨워서 패스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차타고 가게 될 그 길이 바로 차마고도인 줄 몰랐다.

 

시킴 실크 루트의 모습

 

시킴에 있는 여행사에 가면 Sikkim Silk Route라는 투어 상품을 흔히 볼 수 있다. 나툴라 패스에서 쏭고 호수 쪽으로 말고 아래쪽으로 뻗은 흰색 길 쪽을 자동차 투어하는 상품이다. 강톡의 중심가인 마하트마 간디 마그에서 시간을 때우던 중에 일일 투어를 알아나 볼까 싶어서 여행사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시킴 실크 루트가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주인 아저씨가 지도를 보여주시면서 내 국적을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인도와 중국은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를 사이에 두고 국경 분쟁이 현재 진행 중이고 시킴 근처도 그 중 한 곳이다.

 

시킴 실크 루트는 길이 매우 악랄한 형태이다. 난 시킴에서 셰어택시 이동을 하면서 동행 중에 토하는 사람들을 거의 매번 봤다. 그런데 그 길들은 그나마 똑바른 편이고 실크 루트 여기가 끝판왕처럼 생겼다. 여긴 차량 렌트를 해서 다닐 수 없을 것 같다. 드리프트 장인인 이 지역 택시기사들을 전적으로 믿어야 할 것이다.

 

시킴 실크 루트 근처 지도

 

옛 상인들은 차를 잔뜩 실은 노새들과 군용 말들을 데리고 이렇게 험하게 생긴 교역로를 이동해 다녔다. 당나라 중엽에 티베트 사람들은 보이차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티베트는 기후가 극단적인 곳이라 채소나 차가 잘 자라지가 않았다. 보이차는 훌륭한 비타민 공급원이었다. 다행히 근처의 윈난 지역에서는 차가 잘 자랐다. 반면 윈난에서는 군용 말이 부족했기에 두 지역 간에는 교역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워낙 험지라 이동이 간단치 않았다. 점차 리장, 다리, 중디엔(일명 '샹그릴라') 등 지역에도 무역 거점이 생겼다. 차마고도는 다양하게 분기했다. 윈난에서 쓰촨을 지나 라싸로 올라가는 길뿐 아니라, 버마와 인도 임팔을 지나 콜카타까지 이어지는 길도 있었다. 차마고도는 이러한 다양한 길들의 총칭이다. 

약 600년 전 라싸는 신장, 인도, 시킴, 중국 등 각 지역의 상인들이 이합집산하는 활발한 교역 도시였다. 차와 말뿐만 아니라 실크와 소금도 빈번히 거래되었다. 윈난의 차는 라싸에서 나툴라를 거쳐 인도까지도 닿았다. 그러나 이후 인도에서는 다르질링과 아쌈 등지에서 직접 차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윈난에서 버마와 인도의 임팔(대한독립을 앞당긴 그 유명한 무다구치 렌야 센세가 지휘한 임팔 작전의 그 열대우림 임팔 맞음), 나갈랜드, 벵갈 지역을 거치는 차마고도 루트도 있었다. 현재까지도 이 지방은 소수민족이 매우 다양하며 인프라가 덜 발달되어 있고 여행이 다소 위험한 지방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도 마찬가지여서 라싸를 거치는 북쪽 루트가 선호되었다고 한다.

 

대한독립의 숨은주역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에는 임팔 작전의 PTSD로 먼 훗날 인도에 속죄 여행을 온 아저씨가 나온다. 아주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잊을 법도 한데 그 아저씨 에피소드는 왠지 기억에 남았다.


차마고도는 송대에 번창하였으며 원대에는 조금 주춤하였으나 명대에 다시 교역이 활발해졌다. 이후 청대에 들어서는 쇠퇴하였으며 현재는 교역로로 쓰이기보다는 탐험을 좋아하는 여행가들이나 고고학자들이 좋아하는 지역이 되었다. 티베트가 아직 서양 세계에 공개되지 않았던 때, 그레이트 게임 무렵, 서양인들과 인도의 펀디트들이 티베트 침입을 위해 활발히 정탐 활동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차마 무역을 통해 상대적으로 일찍 개척이 된 육로여서 여러 차례의 티베트 진입 시도가 바로 이곳을 통해 이루어졌다.

 

청나라 때 차마무역이 쇠퇴하기는 했지만, 시킴에서 아래로 더 내려오면 있는 웨스트 벵갈 칼림퐁에서는 20세기까지도 무역이 꽤 빈번했다고 한다. 심지어 세계 각지로 송금이 가능한 은행도 칼림퐁 중심가에 있었다. 그 건물도 보고 왔다. 이번에 칼림퐁에 있었을 때 숙소 주인 아저씨가 칼림퐁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이어서 내가 전혀 모르고 지나쳤을 것들을 많이 이야기해 주시고 오래된 옛 건물 여러 곳에 직접 데리고 가주셨다.

 

칼림퐁에 있는 Geden Tharpa Choling Monastery 불교 사원에 갔더니 티베트뿐 아니라 중국 양식의 법당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것 역시 오랜 차마무역으로 인한 중국인들의 영향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칼림퐁은 매우 아름답고 흥미로운 곳이었어서 책을 아예 구해 왔는데, 읽고 나서 따로 글을 꼭 써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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